일요일에 등산을 가느냐 마느냐로 전날부터 고민을 했다. 금요일에 나 홀로 등산을 다녀왔으니 하루쯤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지, 시간 될 때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오자. 피곤하면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일찍 자고 당일 컨디션을보고 결정하기로했다. 고민의 이유는 일요일 오후에 불교 모임이 있기 때문. 한 달에 한 번 모임이라 가능하면 참석할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든 한번 빠지면 자꾸 빠지게 되니까. 시간상으로 아침에 서두르면 오후까지 충분히 다녀올 것 같았다. 그런데한 가지가 더 걸렸다. 카타리나 어머니. 슈탄베르크에 한 번 다녀올타이밍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의 컨디션은 괜찮았다. 잘 자고 일어난 덕분이었다. 날씨가 좋아 밀린 빨래도 하고, 모처럼 일요일 오전을느긋하게 보내고 싶어서집에 남기로 했다. 등산은 또 가면 되지. 남편도 일이 많은지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주말엔 보통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데. 집에 있는 검은 빵으로 아침을 해결. 발코니에 둔 토마토와 냉장고 안의 계란과 버터로간단한 한 끼 식사를 준비했다. 커피 한 잔과 두텁게 썬 검은 빵에 토마토와 계란 프라이를얹어 토스트를 만들었다. 하나는 남편을위해 하나는 시원한 발코니에서 내가 먹으려고. (주말엔 간헐적 단식을 잊기로 한다) 이날 발코니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특별히 초대된 게스트는 윤찬과 베토벤.
2023. 6. 19 월요일. 일하고 돌아온 오후 3시. 뮌헨 32도.
동쪽으로난 발코니와 부엌으로 비쳐들던 아침 햇살은 이웃집 벽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등받이가 높은 가든 의자 바닥과 등에 두꺼운 방석을 직각으로 놓고 기댔다. 작고 둥근 테이블 위에는 쿠션을 여러 개 포개놓고 다리까지 올린다고 생각해 보시라. 등산을 못 간 아쉬움은 단박에 사라지고 가슴 한 견에 차오르는 평온함. 독일의 유월 햇살이 물러나는 오전 발코니의 그늘엔 서늘함이 가득(다음날부터본격 더위가 시작되자 발코니조차 초저녁까지 열기로 가득했다). 바람까지 살랑 불어오니 손바닥만 한 공간을꽉 채운 텅 빈 충만. 여기에 뭐가 더 필요한가.공연 시간 38분 45초. 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일요일 아침 나를 위한 공연이되었다.
아이가 전날 친구집에가서 자고 돌아오는 날이라 더욱 한가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얼마만의 휴식인가. 얼마만의 뜨거운 아메리카노인가. 마리아힐프 성당의 지붕 십자가와 아메리카노와 베토벤이 꽤 잘 어울린다는 것도새로운 발견이었다. 처음은 핸드폰으로보며 들었다. 베토벤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이나 부담감은 없었다. 베토벤의 음악이 이렇게나 젊구나 오히려 놀랐다. 1악장과 2악장과 3악장에서 되풀이되는 주선율은 두 귀에 착착 감기고. 숱한 이들이 경탄하던 2악장은 가슴이 아리다가 저리다가 했다. 3악장은 지휘자를 춤추게 할 만큼 경쾌하게 시작. 베토벤이라는 이름을 안 지가 언제인가. 이 거장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것 같은 벅찬 기분 이해 되실는지. 음악의 고귀함. 마음의 평화. 여기가 산중인지 속세인지 구분이 안 갔다. 베토벤공연이 끝난 시간은 일요일 오전 10시 23분.
앙코르로 다시 들어보고싶어서 발코니에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빨래를 널고 한번 더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남편은 카타리나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한번 다녀가라는 전갈. 외출 준비하랴, 두 번째 빨래 널랴, 노트북으로 앙코르 공연을 보는 시간까지 생각하니 출발은 정오가 적당했다. 베토벤과의 두 번째 만남이 끝난 시간은 오전 11시 49분. 곧바로 일어날 수가 없어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쳐다보고, 한창 크는 아이들처럼 키가 부쩍 자란 바즐과 옹기종기 사이좋게 자라는 깻잎 모종과 아이가 학교에서 씨를 뿌린 후 집으로 데려온 이름 모를 꽃씨 모종을 바라보았다. 허브향과 깨와 꽃을 품은 초록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나는 베토벤의 음악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식물도 허브도 과일도 같이 듣는 베토벤.
일요일 오후는 슈탄베르크의 카타리나 어머니 방문 그리고 다시 뮌헨에서 불교 모임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하는 일은언제나 옳다.다만 그것만큼 소중한 다른시간도 꼭 챙겨야 한다. 나만의 시간. 책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와 함께. 이런 균형은 중요해 보인다. 아직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바쁜 50까지는. 나처럼 시작이 늦으면 50이 넘어도 이 숙제를 못 끝내고 60이 되어야 자유로워질것 같다(그때까지 건강하다고 가정했을때 말이다). 산다는 게 이렇다. 혼자 살면 어떨까. 글쎄다. 혼자 산에서산다 한들 삼시 세끼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적적함이 쉽게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이렇게정리해 보자. 삶은 괴롭다. 누구에게나공평하게. 어디에 살든 누구와 살든.
쉬운 결론을 하나 덧붙이자면 마음이 편하면 최고라는 것. 우리 엄마의 삶의 모토인데, 한 때 엄마의 인생관에 불만이 많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날들을 반성한다. 뜬금없이 갑자기? 그렇다. 이 무더위에 갑자기 지난날이 떠올라 나 역시 곤혹스럽다. 비단 엄마뿐이랴.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나와 인연이 멀어진 벗 셋에게도 미안한 마음. 또 있다. 절친 딸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외면한 일도 두고두고 나를 부끄럽게만든다. 그 일로 절연 안 당하고 아직까지 나를 만나주는 친구와 친구의 딸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마음. 거기다 전후 사정을 듣고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모른 척해준 다른 두 벗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무더위 탓인지도모르겠다. 나흘간 평온하게 베토벤을 듣다가 갑자기 지난 시절이 떠올라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마음이란 게 이렇다. 인과 관계도 없고 종종 종잡을 수가 없다.
2023. 6. 20 화요일. 일하고 돌아온 저녁 8시. 뮌헨 32도(왼쪽). 6. 21 수요일 밤. 전날 내린 소나기로 뮌헨 29도. 목요일은 33도(오른쪽).
그러다 정말로 산에 다녀왔다는 말도 해야겠다. 유월의 무더위와 베토벤. 한 평짜리 발코니에서의 피서. 후회와아쉬움이 남는 추억들. 베토벤에기대어 마음을 쉬어보려다 소중한 벗들을 떠나보낸 기억이 소환되어 의기소침해져서 산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닷새째 이어진 이번주 목요일은 올해 최고의 더위로 기록될 만했다. 유월의 낮 기온이 34도라니. 그것도 뮌헨에서. 목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의 점심을 준비해 놓고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테게른제 호수역으로 갔다. 전날 산책길에서 서울의 J언니와 통화한 것도기운을 얻는데 힘을 보탰다.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언니들이 있다는 것. 그런 언니들이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있다는 것. 서울에 둘, 부산에 둘. 친언니와 육촌 언니와 서울의 J언니와 부산의 Y언니. 서울과 수원과 부산과 김해에 포진해 있는 친구들. 울적한 날엔 손가락을 꼽으며헤아려본다. 아직도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남아있구나, 물건은 새것이 낫지만 사람은 골동품이 낫다는 내 사수 J언니의 말씀이 맞는구나, 경탄하고 감탄하면서.
산도 그랬다. 언제 가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간다. 같은 풍경인데 매번 봐도 질리지 않는다. 자연스러워서겠지. 골동품처럼. 장독 빛깔처럼. 카프카의<변신>처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돌아보면 인간관계에서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기는커녕 속이 좁아질 것 같기 때문. 젊을 땐 나이와 지혜가 비례하는 줄 알았는데 오십이 지나면서 알게 된 인생의 비밀 중 하나가 그게 아니란 거다. 안타깝지만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비례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칠십이 가까운 어느 분을 만났는데 그분으로부터 남은 시간을 '깨달음'을 위해 불교 공부에 매진하겠노란 말씀을 들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경구가 있다. 내겐 이 말씀이 곧 깨달음과 동일어인데, 그만큼 쉽지 않단 의미에서다. 저런 날이 오기는 올까.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2023. 6. 22 목요일 저녁 7시. 드디어 천둥을 동반한 비! 금요일 기온은 전날보다 10도가 떨어진 24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