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느라 뒤늦게 소식을 들은 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흰 카네이션 꽃다발을 사들고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 도착한 건 저녁 무렵이었다. 할아버지의 돌아가신 모습이 아이에게 정서적인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믿던 남편은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오후에 장의사에서 다녀갔는지 아버님이 검정 양복을 입으신 채 당신의 침대에 누워계셨다.살아계실 때처럼 댄디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언제고 떠나기 맞춤한 때란 없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한 달 가까이 마음의 준비를 시키셨는데도 그랬다. 급작스럽고 황망하지 않은 이별이란 없었다.
아이와 함께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뵌 건 돌아가시기 나흘 전이었다. 목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남편이 카타리나 어머니 댁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 불현듯 아이를 데리고 나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병원에 1주일간 계시던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온 후였다. 입원 1주일 만에 아버님은 기력을 다하셨는지 온종일 잠만주무셨다. 예전처럼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었다. 우리가 갔을 때도 그랬다. 시누이 바바라는 의식이 없으신 아버님을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했지만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이를 데리고 아버님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비록 정신을 놓으셨다 해도 귀는 들으실 수 있을 것이다. 주저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방으로 가서 아버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버님, 저희 왔어요. 알리시아도 같이 왔어요. 저희 얘기 다 듣고 계시죠, 그렇죠?"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 인사드려. 감사했다고, 할아버지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씀드려. 좋아하실 거야." 나도 작별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저희 한국 잘 다녀올게요. 저희가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려 주실 거죠?"
그때였다. 아버님이 눈을 뜨신 것이. 벌어졌던 입은 다물어졌고, 거친 호흡도 잠잠해졌다. 말씀은 없었다. 그래도 나와 시선을 맞추시는 아버님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의 작별 인사를 들으시고 답하려 하신다는 것을. 잠시 후 아버님이 다시 눈을 감고 의식을 놓으셨을 때 우리는 따스한 아버님의 손을 놓고 방을 나왔다. 아이는 울었다. 문 앞에 서 계시던 카타리나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방을 나오기 전 아버님의 뺨에 마지막으로 세 번 볼키스를 하며 말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가세요, 아버님.아무래도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을 것 같은 예감때문에. 그날밤 집에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다음날 학교를 하루 쉬고 싶다고. 당연하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지도 모르는데 멀쩡한 게 정상인가. 다음날 아이는 학교도 안 가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카타리나 어머니 정원 연못의 연꽃.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신 것은 7월 초였다. 한 주가 넘도록 식사도 물도 안 드신다고 했다. 우리는 입원과 퇴원에 맞춰 두 번 병원에 갔다. 입원하시던 날은 상태가 나쁘지 않으셔서 기력은 없으셔도 우리와 농담도 하셨다. 1주일 만에 집으로 모시기로 했을 때는 의식이 거의 없으셨다. 어머니도 아버님의 친딸도 댁에서 편히 가시기를 바랐다. 결국 그 바람대로 집으로 모신 지 보름 만에 가셨다. 마지막까지 병이나 통증 없이 편안하셨고, 올해로 만 95세시니 천수를 누리셨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아버님과의 이별은 슬픔이었다. 재혼 후 45년을 함께 하신 카타리나 어머니의 마르지 않던 눈물. 두 분의 추억이 35년간 차곡차곡 쌓인 부헨벡 7번지를 떠나는 장의차를 바라보는 모든 순간들이.
나도 눈물이 났다. 영혼은 먼 길 떠나시고 육체만 남은 아버님을 보면서. 인생이 무상했다. 편안히 가시라 인사를 드리고 이해와 용서를 구했다. 부족한 게 많던 며느리였다. 마음에 안 차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떠나시길 바랐다. 그리고 아버님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아버님의 오른쪽 눈이 반쯤 떠져있었다. 놀라고 무섭기도 했지만 금방 그런 감정을 떨쳐냈다. 사랑하고 사랑하신 카타리나 어머니를 두고 떠나시는 마음이 오죽하시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두 눈을 감지 못하시는 게 아닐까. 어머니께 여쭤보니 오후 내내 한쪽 눈을 계속 뜨고 계셨다한다.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내가 두 분의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날밤 장의사에서 아버님을 모시러 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 두 명이 큰 나무관을 들고 온 건 밤 10시였다. 날이 무덥기도 하고 어머니가 아버님의 시신을 모시고 밤새 혼자 계시길 바라지도 않아서 남편도 시누이도 그날밤 아버님을 모시고 가길 바랐다. 친딸인 미하엘라는 관이 도착하기 전 밤 9시쯤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이보다 한 살 어린 딸을 다음날 학교에 보내려면 일찍 재워야 해서라고 했지만 관에 누우신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기 힘들어서가 아니었을까. 어머니도 차마 못 보겠다 하셨다. 나는 아버님이 침대 시트로 싸여 관으로 모셔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절차는 조용하고 신속했다. 관을 현관 앞으로 옮기고 관 뚜껑을 닫기 전에 한번 더 인사를 하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런 경우에 작별 인사란 몇 번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버님의 차가운 손을 잡고 나는 인사를 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아버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좋은 여행 되세요. 당케슌 Danke schön. 츄스 Tschuß. 구테 라이제 Gute Re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