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왔다. 한국의 팔월 초가 덥다는 걸 깜박한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숨을 쉴 수 없었다.뮌헨을 떠나올 때 독일의 칠월 말 선선해진 날씨 때문에 더더욱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떠난 후 독일엔 계속 비가 내렸고, 아침저녁으론 추울 정도라고 했다. 남편이 우리 집 애완쥐들이 추울까 봐 판판한 보온용 돌에 전기를 꽂아주니 쥐들이 자신들의 따뜻해진 돌침대에 올라가 자더라는 얘길 전해주었을 정도. 팔월 초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매서운 교훈을 초반부터 뼈에 새긴 고국 방문이었다고 해야겠다.
엄마의 집밥을 매일 얻어먹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도 미세한 금이 갔다. 그 더위에 그 연세(팔순)로 장 보고 음식을 하신다? 안 될 말씀. 엄마에 비하면 팔팔해야 할 언니와 나도 더위에 지쳐 떨어질 판인데. 도착한 첫날은 당연히 얻어먹었다. 따뜻한 집밥.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뮌헨에서 인천까지 직항을 타고 인천에 도착한 건 출발 후 다음날 아침. 비행기 연착과 입국 수속, 짐까지 찾고 공항버스 대신 일반 택시로 서울에 입성한 시간은 정오 무렵이었다. 언니 집까지 바로 오는 공항버스가 없기도 하고 첫날부터 더위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언니가 신신당부를 해서 택시를 탔다. 가격은 일반 택시로 56,000원(인천공항 통행세 6,000원 포함).아이와 둘이 공항버스를 타는 가격의 두 배였다. 출발하며 기사님께 예상 가격을 물었는데 거의 정확했다.
짐은 언니집에 풀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자 살 것 같았다. 한국은 에어컨이 있잖나. 독일은 가정에도 가게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찾기 힘들다. 엄마한테 주문한 건 갈치구이였다. 독일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건 엄마의 생선구이(아이는 할머니밥보다 알밥이 먼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다. 먹고 나자 생각이났다. 첫 귀국 밥상을 안 찍다니. 사진은 엄마가 다른 날 차려주신 고등어와 갈치 모둠구이로 대체했다. 아이의 최애 할머니표 메뉴는 할머니의 잔멸치와 오징어 진미채 그리고 계란찜과 계란말이. 두부 듬뿍 넣은 된장과 뽀얀 미역국과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도 빠질 수 없다. 태풍 '카눈' 영향으로 서울에 비가 오던 날은 할머니표 김치전과 부추전도 먹었다.엄마는 매일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미안하다 하시지만 이런 집밥을 나는 매일 먹고 싶다.
친정 엄마의 집밥 2.
한국에 온 지 열흘. 시간은 빨리도 흐른다. 하는 것도 없이. 올여름 경험으로 무더위에는 집콕과 카페콕이 최고라는 걸 알았다. 카페에서는 주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무더위 탓인지 몸도 마음도 글쓰기도 축축 늘어져 진도가 느리다. 그래도 어떤가. 나는 지금 한국이고, 날마다 한국말을 원 없이 듣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도 애 앞에서 너무 풀어지면 곤란할 거 같아서 되도록 반나절은 같이 카페에 마주 앉기로 한다. 아이는 딱 하루 한글책 읽기에 도전하고 두 번 펴지는 않았다. 라틴어 책도 이틀쯤 호기롭게 펼쳐서 문법 정리를 하던데 그만하면 양호하지. 매일 라틴어 공부나 한글책을 읽을 수야 없지 않나. 한국에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니고.
아이는 한글책을 읽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한글책을 사겠다고 이모부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두 권 직접 골라왔다(라틴어 공부 전에는 또 노트를 사러 가시고. 옛날에 우리도 많이 하던 루틴, 공부하기 전 의식 아닌가!). 한 권은 글만 있고, 한 권은 한 페이지에 세 칸짜리 카툰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만화 에세이. 나는 안다. 우리 아이의 한국어 수준은 뮌헨의 주말 한글학교에서도 꽤 높은 편이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가 골고루 유창한 편이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가늠하려고 주기적으로 K드라마도 같이 보는데 나쁘지 않다. 내 생각에 가장 어려운 건 한자어. 당연하지. 한국어의 어휘는 절반 이상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를 모르고서는 풍부한 표현과 완전한 독해가 어렵다. 비속어나 신생어 등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아래는 통통 팥 스무디와 첫날의 뜨거운 아메리카노 그리고 루이보스 차.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 풍선이 '후지다'가 뭐야? 올드하다란 뜻이지. 부정적인 말이야. 이번엔 '신뢰'가 도마에 올랐다. 흠흠.. 신뢰라.. 참 어려운 단어다. 사람 간에 가장 중요하지만 지키기도 쉽지 않은. 서로 믿는다는 뜻이야. '자존감'은 센가 강한가. 사촌지간인 '자존심'도 데리고 나와야 했다. 대체로 자존감은 긍정적인 의미로 자기애나 자기 존중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자존심'은 부정적으로 쓰일 데가 많은데 자존심이 상하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자존감은 강하다, 자존심은 세다로 구분한다는 것도. 이어진 질문은 '무기력'. 기운이 없다 혹은 의욕이 없다. '과도하다'는? 지나치다. '어김없이'란? 반드시. '네 편'은? '내 편'과 발음이 같아서 구어체에서는 '니 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등등..
아이의 한국어 질문에 답하다가 다시 깨달은 건 한국말이 참 어렵다는 거다. 쉽지 않다란 말도 얼마나 여러 가지인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녹록하지 않다. 만만하지 않다. 뇌에 피로가 쌓일 참에 다행히 아이도 힘든지 책을 덮었다. 오늘 공부 끝! 카페에서 아이는 주로 스무디를 먹는데 우리가 가는 카페엔 <통통 팥 스무디>라는 이름만 들어도 통통 튀는 메뉴가 있다. 얼린 팥을 갈아서 그 위에 빙수용 팥을 한 숟갈 얹는다. 가격은 5,500원. 나는 주로 차를 마신다. 한국에 왔는데 한국 카페에 한국 녹차가 없어서 울 뻔했다. 독일 카페엔 어디나 녹차가 있는데. 비록 중국 녹차지만. 찻값은 4,500원. 둘이 반나절을 있는 비용은 10,000원. 적절한 가격이다.
한국에 와서 어이없는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서야 했던 2년 전 봄날도 생각난다. 그땐 이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포도알이 몇 개 든 뮤슬리 요거트를 자주 먹었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그 맛. 다시 먹으니 그때 먹던 맛이 아니었다. 그땐 또 매일같이 점심으로 샤부샤부를 먹었다. 그걸 먹고 기운을 내서 다시 공원을 걸었다. 매일 먹기엔 싼 가격이 아니었는데 살아서 나를 보는 게 마지막인 줄 알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먹고 힘내라고 샤부샤부를 사주었다. 그들 덕분에 살아서 독일로 갔고, 또 살아서 2년 만에 한국에 왔다.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그런데 올여름 나를 사로잡은 메뉴는 따로 있다. 샤부샤부는 생각도 안 날 정도다. 사랑하는 친구들, Y와 E와 언니와 다함께 먹은 보리밥. 귀국 첫날에 무더위도 아랑곳없이 한달음에 달려와 준 그들과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그 밥이 보리밥과 청국장과 나물이었다. 올여름 나의 최애 밥상. 친구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우정과 애정으로 가득했던 그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