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티롤의 로스터리 카페와 호수들

이태리 남티롤 2

by 뮌헨의 마리
남티롤의 로스터리 카페, 카로마 Caroma.



남티롤에서 커피 성지를 만났다. 이런 곳은 또 처음 봤네. 나도 한 때 바리스타를 꿈꾸며 출산 후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페셜티 카페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우리 시어머니가 10년도 넘게 원두를 사가시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남티롤의 호텔 호이바트 Heubad 아랫동네의 로스터리 카페, 카로마 Caroma. 카페 규모가 크고 로스터리 공장이 같은 건물 안에 있고, 2층에는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물론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카페는 아니고, 원두를 사가거나 원두를 갈아가는 카페다. 가장 인상적인 건 벽면을 장식한 커피 분쇄기 커피밀이었다. 천장이 높은 카페 벽면에 가득한 커피밀 도구들. 엔틱도 있었는데 장관이었다. 이태리가 커피의 전당 맞는구나, 커피도 안 마셔보고 인정! 우리 시어머니는 한 번에 3킬로씩 사가신다. 킬로당 25유로. 1년에 보통 10킬로를 주문하신다고. 기한 건 나의 시어머니 두 분이 모두 커피를 즐기신다는 거다. 다른 독일 할머니들처럼. 매일 두세 잔은 드시는 것 같다. 잠 하고는 상관없나? 궁금해서 여쭤보면 신경도 안 쓰시는 눈치다. 얼마 전부터 우리 남편도 커피를 딱 끊고 휴가 와서는 차만 마시고 있는데. 결론은 독일 할머니들 정말 강하시다.



카페 Caroma의 커피와 커피 밀들.



둘째 날은 아침 8시 반에 식사를 했다. 시어머니와 휴가를 가면 아침에 늦잠을 자는 건 포기해야 한다. 아이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새벽 5시쯤에 일어나셨고 아침 7시 전에 호텔에 딸린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오셨다. 아이고, 그렇게 이른 시간에. 나? 아침 7시에 눈을 떴으나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글만 썼지. 남편은 아침에 전화 콘퍼런스가 있다고 나름 바빴고. 아침을 먹자마자 어머니가 로스터리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사고 산 위로 산책을 가자고 제안하셨다. (독일 할머니들이 제일 못하는 게 빈둥거리고 뒹굴거리는 게 아닐까 싶다. 게으름을 못 참는 민족 같다.) 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이곳 산을 꿰뚫고 계신다. 이럴 때는 재빨리 따라나서는 게 상책이다. 훌륭한 가이드는 여행의 질을 높여주니까. 기온은 10도. 안개가 끼고 흐렸다가 우리가 호텔을 나서자 비가 내렸다. 그럴 줄 알고 접는 우산을 세 개 챙겨 왔다. 어머니 차에도 접는 우산이 있어서 비가 아무리 와도 걱정이 없었다.


다음은 호수. 첫 번째 호수는 '푈츠 봐이어 Völs Weiher'라는 작은 호수였다. 독일어로 호수는 '제 See'라고 부르는데 규모가 작은 호수는 '봐이어 Weiher'라고 부른다고. 수영이 가능한 호수였다. 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다. 작은 호수라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호수는 '후버 봐이어 Huber Weiher '. 넓지는 않지만 길이가 길었다. 수영 불가.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호숫물에 비친 숲이 장관이었다. 두 번째 호수도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두 번째 호숫가를 걷는 동안 비가 그쳤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산책이든 뭐든 숙제는 일찍 해치우는 게 낫다. 오후에는 빗줄기가 거세졌다. 점심을 건너뛰고 오후 2시에 호텔 카페에서 어머니와 아이는 쿠헨을, 남편과 나는 비엔나 슈니츨을 둘이 나눠먹었다. 오후에는 룸에 돌아와 쉬었다. 어머니는 사우나를 가시고, 아이는 할머니가 안 계신 틈을 타서 한껏 게으름을 피웠을 것이다. 남편은 오후 내내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회의와 일을 번갈아 했다. 나는 발코니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 쉬었다. 휴가란 이런 거지! 흐뭇해하면서.


저녁을 먹기 전 늦은 오후에는 남편이 예약해 둔 호텔 웰니스 센터에서 림프 마사지를 받았다. 몸집이 작고 가냘픈 여성 마사지사였다. 그녀의 손이 너무 차서 처음엔 힘들었지만 마사지를 하면서 차츰 따뜻해졌다. 말이 없는 마사지사였다.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목과 가슴과 아랫배 단전을 마사지한 후 두 다리 쪽으로 넘어갔다. 수술 후 왼쪽 다리는 제법 부어 있었다. 흘 동안 입원하면서 압박 스타킹을 신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원해서도 사흘 만에 신었다. 열심히 걷는 수밖에 없다. 50분 동안 조명이 편안하고 낮은 명상 음악이 흐르는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마사지를 받는 일은 꽤 힐링이 되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림프 마사지를 예약해 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기댈 곳은 남편뿐?



첫 번째 호수 푈츠 봐이어.
두 번째 호수 후버 봐이어.



저녁 식사 전날과 비슷했다. 다섯 가지 메뉴 중 아이는 세 가지만, 나는 후식만 빼고 네 가지를 먹었다. 배가 좀 불렀다. 식탁은 언제나 같은 지정석. 우리가 식사를 하는 곳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멤버들도 매일 같았다. 창문 가에 앉은 젊은 친구들이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카드놀이를 시작하자 어머니께서 놀랍다는 듯이 자꾸 쳐다보며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정말 신기하구나. 밥상 머리에서 카드놀이를 하다니!" 어머니 세대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출입구 쪽의 젊은 커플도 8시가 다 되어서야 등장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은 저녁을 정말 늦게 먹는구나." 내가 말했다. "휴가잖아요, 어머니. 젊은 친구들은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늦게 먹고 점심도 늦게 먹을 테니 저녁도 늦겠죠. 그리고 잠도 늦게 자고요. 휴가니까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시던 어머니. 우리도 어머니만 안 계셨다면 아침을 오전 10시에 먹었을지도 모른다. 녁을 먹은 후에는 다 같이 로비 쪽 휴게실로 가서 아이는 책을 읽고 어머니와 남편과 나는 등받이가 높은 1인용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풍광 좋은 남티롤에 와서 풍광이 더 빼어난 스위스의 산악 열차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다니. 세상은 넓고 볼 곳은 많구나. 9시 반쯤 피곤해진 아이와 나는 각자 룸으로 돌아가고 남편이 어머니를 케어할 차례. 두 사람은 저녁에는 바 bar로 운영되는 카페로 향했다. 아마도 시아버지 누님의 딸들 가족을 만나 대화를 나누시겠지. 오후부터 시작된 비는 밤새 내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내렸다. 티롤의 산과 마을은 짙은 안개로 휩싸이겠다.



위는 세 가지 전채. 가운데는 우리 식탁 지정석과 벽화. 아래는 메인 메뉴 두 가지. 나와 아이는 야채 뒤김을, 어머니와 남편은 양고기를 먹었다. 나와 아이는 후식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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