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시어머니 vs 허리 수술한 며느리의 등산기

이태리 남티롤 3

by 뮌헨의 마리
우리가 묵고 있는 남티롤의 푈츠.



남티롤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밤새 내렸다고 해야 맞겠다. 폭우가 쏟아질 때처럼 우레와 같은 빗소리를 들으니 바람이 꽤 거센 것 같았다. 가끔 천둥도 울렸다. 아이고 이러다 번개까지? 내게는 이 소리들이 모두 겨울의 등장을 알리는 예고 같았다. 이 호텔도 독일 바이에른의 가을 방학이 끝나는 11월 초 즉 이번주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다. 1년 중 한 번 호텔 주인도 종업원들도 긴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 기간에 호텔은 늘 리노베이션을 했다고. 지난 20년간 실내 수영장과 야외 수영장을 만들고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고 사우나실을 만들고.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휴가가 끝나고 재오픈은 12월 22일이다. 유럽 최대의 명절 크리스마스를 휴양지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도 명절 분위기가 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 짧은 사흘 동안 이리저리 다니느라 지치지 말고 휴가를 가든 혹은 휴가를 안 가더라도 조용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 때가 니면 언제 재충전을 하나? 한국은 너무 못 쉬 게 문제다. 온 국민이, 전 세대가 만성 피로 상태. 명절 휴가가 1주일은 되어야 가 들렀다 본인들도 쉬지. 그런데 남티롤 휴가를 왔다가 갑자기 한국은 왜 나오지.



위는 호텔 룸 발코니로 보이는 안개/저 바위의 이름은 슐레른 Schlern. 아래는 남티롤의 운무.



아침을 먹고 로비 휴게실에서 책을 보다가 룸에서 쉬었다. 비는 오후에 그친다고 했다. 비가 그치면 다시 산책을 나가겠지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출발하재!" 오잉, 시계를 보자 오후 12시 반. 생각보다 비가 빨리 그쳤다. 오늘은 어디를 간다? 차로 작은 호수까지 올라가서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1시간이 걸리는 투프 알름 Tuff-Alm 즉 투프 산장까지 걷자고 했다. 바위산 슈레른 Schlern 바로 아래였다. 갈 때는 내가 넓고 평평한 길을 골랐는데 어머니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이었다. 너무 돌아가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왜?우리에겐 차고 넘치는 게 시간데? 그래도 독일 할머니들껜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시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아껴야 할 물이나 전기 같은 건지도.) 그런데 힘들다 힘들다 하시면서 왜 한 번도 안 쉬고 끝까지 가셨을까. 남편 손을 잡고 두 번이나 쉬었는데. 아이에겐 할머니와 계속 동행하라고 먼저 보내고. 내려갈 땐 폭이 좁고 가파른 계곡 길을 택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그 길이 빠르다며. 빠르긴 해도 돌길이라 많이 험하던데. 그래도 어머니는 만족해하셨다. 신기하다. 넓고 완만한 길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대화도 나누면 위험하지도 않고 좋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 가파른 길로 내려왔다. 내리막이라 조심조심 걸야 했다. 오르막이었다면 힘에 부을 것 같았다. 밤새 비가 많이 왔는데도 다행히 미끄럽지는 않았다. 15년 동안 다니신 길이니 어머니께는 익숙하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연세를 생각하시면 조심하는 게 나을 텐데. , 일 할머니들의 저력이라고 해 두자. 도 허리 수술한 지 3주 차에 등산을 감행했으니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해야 하나. 투프 산장까지는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각각 1시간 왕복 2시간이 걸다.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



1,270m 투프 산장 Tuff-Alm과 마지막 사진은 바위산 슐레른.



투프 산장엔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았다. 빗속에 출발했다는 건데 이럴 때 보면 독일 사람들도 참 어지간하다. 비가 오면 좀 쉬어도 될 텐데 도무지 게으른 걸 못 참는다. 리스펙트! 그건 그렇고, 이런 산장들 음식이 또 괜찮다. 우리 호텔에 묵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기까지 산책 겸 등산을 서 대부분이 카이저 슈만을 먹 내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전처럼 밀가루 부침개를 얇게 부쳐서 먹기 좋게 자르고 그 위에 슈가 파우더를 눈처럼 뿌리고 오미차잼과 사과잼을 같이 내준다. 별 맛은 없는데 따뜻할 때 먹으면 괜찮다. 양이 많은 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 하긴 우리도 파전이나 부침개 하나 시키면 쟁반 만하게 나오긴 하지. 우리는 머니랑 넷이 나눠먹었다. 땀이 식으니 조금 추워서 점심 겸 주문한 건 수프. 나는 보리 수프를, 어머니는 야채수프, 아이는 신선한 플레인 요구르트에 과일을 넣은 걸 주문했다. 아이의 요구르트는 훌륭했다. 어머니의 야채수프도 괜찮았고, 내 보리 수프는 뜨겁고 좋았는데 햄이 들어가서 조금 짰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독일의 보리 수프가 국민 수프로 불릴 정도라고. 그걸 난 왜 여태 몰랐지? 보리를 독일어로는 게르스테 Gerste라고 부른다. 보리 수프는 게르스턴 주페 Gerstensuppe. 앞으로 눈에 띄는 대로 먹어보기로 결심. 덜 짜기만 하면 건강식으로 훌륭할 거 같은데.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챙겨가서 부어 마시나? 휘테 Hütte 혹은 알름 Alm으로 불리는 독일나 오스트리아 독일어권 스위스의 산장에 가시거든 꼭 드셔보길 바란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생각보다 비싸다. (우리는 메뉴 4개와 큰 병으로 물 한 병을 시켰는데 총가격이 47.50유로였다.) 이런 산장에서 먹는 토속 음식은 안 맛있기가 어렵고, 산에서 먹는 따뜻한 음식의 추억은 오래 기억에 남 법이니까. 그날 저녁의 호텔 메인 요리는 생선 요리였는데 기대보다 별로였다. 양배추 소스라나 뭐라나 이상한 소스만 잔뜩 있고 그 위에 작은 생선이 두 토막. 개인적으로 생선을 소스에 뒤범벅해서 먹는 걸 싫어한다. 역시 생선구이는 우리 식이 최고다. 그런데 이날은 왜 글이 한국으로 시작해서 한국으로 끝나지?



카이저 슈만과 과일 요구르트와 야채 수프(위). 보리 수프(아래).
셋째날 저녁. 샐러드는 언제나 옳다. 마지막 생선은 별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티롤의 로스터리 카페와 호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