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너 Messner를 아시는지? 난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아침을 먹을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 누님 딸이 그 뮤지엄을 추천할 때도 그냥 지역명인가 생각했다. 메스너는 산악인으로 한때 그 업계를 주름잡은 인물인 모양이다. 에베레스트 8,000 미터 이상 봉우리 14개를 처음으로 다 오른 전설의 등반가라고 한다. 아직도 살아계시다고. 이분이 이태리 남티롤에만 무려 6개의 산악 뮤지엄을 열었다. 그것도 고성을 사서. (직접 샀는지 안 샀는지 혹은 임대인지는 확인 불가지만.) 우리는 푈츠에서 가까운 볼자노의 메스너 뮤지엄 Messner Mountain Museum을 방문했다. 볼자노 시내를 지나 산 위였다. 성이니까 당연히 산 위에 있겠지. 성의 각 코너마다 탑들이 있는데 각 탑을 전시실로 꾸며놓았다. 산악 뮤지엄답게 등산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정보와 사진과 그림과 인물과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 있었다.
신기한 건 이분이 불교에 관심이 있으셨는지는 티베트 불상과 티베트 불교에 관한 전시실이 따로 있었다. 거기다 인도 힌두교 관련 조형물도 많았다. 일반 뮤지엄이 실내 전시가 주라면 메스너 뮤지엄은 성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잘 살려 야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곳곳에 부처상과 인도 신들과 코끼리상이 있었다. 야외 카페도 분위기에 한몫했다.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화창했는데 햇살 아래 야외 카페에 앉으니 오길 잘했다 싶었다. 탑들을 다 도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만족도는 높았다. 시간이 되면 다른 성의 뮤지엄들도 돌아보고 싶을 만큼. 등반 마니아들이 보시면 엄청 좋아하실 것 같다. 기념품숍에서는 작고 푸른 부처님을 한 분 샀고, 산책 때 들고 다니다 아무데나 펴고 앉기 좋은 1인용 휴대용 매트를 샀다.
(입장료는 성인 15유로, 어린이/청소년 6유로, 노약자나 장애인 13유로. 패밀리 패키지도 있다. 성인 2명, 어린이/청소년 1명 또는 성인 1명, 어린이/청소년 2명에 34유로.)
메스너 산악 뮤지엄 정원의 부처님들.
맨 처음 내 관심을 끈 것은 와불이었다. 성을 들어오자 마당에 야외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와 길 사이 나무 아래 살포시 드러누우신 와불을 보았을 때의 기쁨과 놀라움이라니. 몸집이 작지도 않으셨다. 그런데도 입구 길에서는 잘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질 않았다. 저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시다니, 와불님이. 해가 비치는 야외 카페에서는 다시 보리죽을 먹었다. 전날 투프 산장에서 먹을 때랑 가격(9유로)은 동일한데 짜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는 햄&치즈 샌드위치를, 어머니도 보리죽, 남편은 오랜만에 카푸치노를 시켰다. 야외 카페를 나올 때 다시 보았다. 와불님의 둥근 몸매를. 참 아름다웠다. 첫 매스너 뮤지엄 방문은 첫눈에 반한 와불님으로 만족도 200% 달성. 거기다 성을 한 바퀴 돌 때 누군가 살포시 성의 높디높은 담 위에 올려놓은 부처님 머리가 바위산 슐레른과 나란히 키를 맞췄을 때도 감격.이유는 모른다. 그냥 울컥.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메스너 관련 에피소드도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긴 한데 메스너가 형인지 남동생인지 남자 형제 한 명과 같이 등반을 하다가 갈림길에서 이유는 모르겠으나 메스너는 한쪽 길로, 그의 형제는 다른 길로 갔다가 메스너만 살아서 돌아오고 그의 형제는 실종이 되었다고. 아직도 그의 생사는 불분명하지 않겠냐고 어머니가 덧붙이셨다. 또 하나 에피소드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메스너의 팬이셨던 모양이다. 한 번은 뮌헨의 문화 공간 가슈타이크에 매스너가 와서 새 책 홍보 행사가 있었단다. 두 분이 갔을 때 마침 메스너는 혼자 서 있더라고. 그런데 시아버지가 말을 못 붙이셨다고. 시어머니가 등을 떠밀었는데도 말이다.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셨다고. 엥? 설마요! 그럴 분이 아니시잖아요. 지나가는 모든 행인들에게도 말을 거시는 분이 도대체 왜? 부끄러워서 그러셨단다. 정말 미스터리였다. 정말요? 어머니 왈, 찐 팬이라 부끄러워하셨다고. 왜 그러셨나요 아버님? 정말 여쭙고 싶었다. 그런 면이 있으셨구나. 돌아가신 그분께. 생전에는 몰랐던.
메스너 산악 뮤지엄의 카페에서 우리가 주문한 샌드위치와 보리죽과 카푸치노.
그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원해서는 아니고 남편이 전화 콘퍼런스를 한다고 부산을 떨어서. 뭐 부산을 떤 정도는 아니고 옷 입고 노트북 챙겨서 룸을 나가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급히 남편을 불러서 방에서 회의를 하라고 했는데 더 자라며 나가주셨다. 그렇게 잠이 깨면 난 다시 잠들기 어려운데. 7시에 돌아온 남편은 9시까지 자더라. 난 계속 안 자고 글을 씀. 창밖으로 밝은 햇살 가득한데 넓고 아늑한 호텔 침대에 누워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은 시아버지 누님의 두 딸과 가족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하루 일찍 왔다가 하루 일찍 떠났다. 그들도 우리도 4박 5일을 머물렀다. 작별 인사를 하러 로비에 모였다가 호텔 정원으로 불려 나가 둘째 딸 남편한테 단체 사진도 찍었다. 그들과 함께 한 며칠 동안 아무도 내 투병에 대해 공개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마다 남편과 어머니가 바 bar에서 그들을 만났으니 자세하게 들었겠지. 모두들 내가 잘 해내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불현듯 마음이 따듯해졌다.
오후에는 두 번째림프 마사지를 받았다. 새로운 마사지사였다. 이름은 요안나. 폴란드에서 왔고, 이 호텔에는 2년 전부터 일하고 있다고. 자기는 독일어를 못하니 영어만 해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하지요, 내가 대답하자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옛날에 배우던 요가 선생님도 한국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주 아주 훌륭한 샘이었다고,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고. 그런데 나를 많이 닮았다고. 가만.. 우리 언니도 볼자노에서 10년을 살았고, 거기서 요가를 가르쳤는데 그래도 설마 우리 언니는 아니겠지?
"요안나, 한국 요가 선생님을 어디서 만났어요? 혹시 볼자노?"
"네 맞아요. 볼자노예요."
"선생님 이름이 뭐였어요? 혹시 '유리'?" (당시 우리 언니는 유리라는 예명을 썼다. 그런데 우리 이태리 형부가 왜 그 예쁜 한국 이름을 안 쓰냐며 본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언니가 부르기 어렵고 촌스럽다고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것도 모르고..)
"맞아요!!!"
"제 쌍둥이 언니예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크게 뜨고서) 오 마이 갓! 제가 그래서 아까 처음 봤을 때 유리 선생님인 줄 알았다니까요!!!"
세상 정말 좁다. 마사지가 시작되고 그녀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요안나의 마사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50분 동안 가수면 상태에 있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언니의 안부를 묻는 요안나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요안나, 우리 언니는 아직도 서울에서 요가와 명상을 가르친답니다. 학생들이 언니를 많이 좋아해요."
"당연히 그럴 거예요! 우리도 그녀를 많이 사랑했거든요! 제 친구 페데리카랑 저는 주 2회 아침 수업을 다녔어요. 친구가 저를 '조'라고 불러서 아마도 그 이름으로 기억할 지도 몰라요. 저를 기억하거든 꼭 안부 전해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건강해지기를 바랄게요."
오후 4시 반에 부종 마사지를 받고 룸으로 올라오니 오후 5시 반이었다. 마사지를 받으러 내려가기 전에는 창밖이 밝았는데 그사이 캄캄한 저녁이 되어있었다. 산에는 밤이 더 일찍 찾아온다던 남편의 말이 맞았다. 메스너 산악 뮤지엄을 다녀온 후 호텔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카페에서 쿠헨을 먹자고 하셨다. 우리 셋은 묵묵부답. 우리 식구는 쿠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 아이가 우선 가방이라도 룸에 두고 가자고 분위기를 전환했다. 15분 후에 로비에서 만나는 걸로 하고 각자 룸으로 헤어졌다. 우리 셋은 침대에 몸을 던져 쉬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는데. 윗층인 우리 방으로 향하며 남편이 불쑥 말했다. "다음엔 할머니 빼고 우리끼리 한 번 오자!" 아들도 때론 피곤할 때가 있나 보다. 글쎄, 용기는 가상하다만 과연 가능할까. 난 내 항암이 끝날 즈음인 내년 부활절 때 어머니와 다시 여기로 올 휴가를 꿈꾸고 있는데.
위/아래는 메스너 산악 뮤지엄. 가운데는 메스너와 티베트의 산. 우리가 간 곳은 6곳 중 첫 사진인 Firmian(볼자노 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