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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6. 2023

삶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네*

등은 재수술, 5차 항암은 연기

재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 나흘 만에 해가 나왔다.



삶은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병도 그렇다. 11월부터 항암을 시작했는데 암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2년 전 첫 항암 때와는 완전히 다른 돌발 상황이 계속 생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라는 복병 올가을에 두 번이나 만났다. 통증은 피할 수도 피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었다. 


2023.12.13(수) 오전 8시에 리 재수술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 쪽이었다. 10월 초에 뼈전이로 척추에 종양을 제거하는 등 수술을 받았다. 첫 수술을 받기 전 엉덩이 쪽에 2주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칼로 저미는 듯한 아픔이었다. 원인을 짐작할 수 없던 통증은 수술 마무리 되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그랬어야 했는데.


11월 말에 두 번째 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허리. 전기 감전이라도  듯 허리부터 발끝까지 저릿하면서 숨이 멎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아픔이었다. 2주지나자 엉덩이 쪽에 마비 증상도 찾아왔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게 되었다. 내 피부가 내 것 아닌 듯 상하  좋았. 이건 아닌데. 5차 항암 전날인 월요일에 피검사를 하러 가서 암센터에 말하자 당장  수술을 했던 외과 담당의와 연결해 주었다.


한 주 전에 예고는 있었다. 암센터에서 CT를 찍어 보니 결과가 다 좋은데 수술 후 나사를 박은 척추뼈 3개 쪽에서 액체 같은 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월요일외과 담당의에게 말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응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그런데 외과의가 내 등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수술 부위를 누르자 허리가 찌릿하며 깜짝 놀랄 만큼 아팠다. 정작 의사는 내 말 크게 신경는 것 같 않았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 그날 MRT를 찍을 줄 알았으나 MRT 검사는 다음날인 화요일이었다. 5차 항암은 수요일. 그날 모처럼 피검사 결 백혈구 수치도 좋게 나왔.



한인슈퍼 J언니가 보내주신 간식 1.



드디어 화요일. MRT 검사 결과는 CT와 같았다. 사진을 보니 수술받은 척추뼈 옆이 하얬다. 저게 뭘까. 의사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 미안하다며 당장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진료실의 진료대에 우라고 했다. 지금부터 다음날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침대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 그 길로 입원을 했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금지였다. 아이고 참. 하지만 밤사이 두 번몰래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침대에서 누워서는 안 나오는 걸 어떡하나.  방광은 소중하니까.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니까. 잘못되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두 주 동안 두 번째 통증이 혹시라도 뼈전이 때문은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수영과 아쿠아 운동 후 생긴 근육통일 수 있는지 암센터와 외과 수술 담당의에게 물었으나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른 원인으로는 암센터 간호사에게 들은 대로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가 원인이 아닐까도 생각했으나 엉덩이 마비가 오면서 가능성을 접었다. 남편도 마비는 심각한 증상이니 위의 두 가지 가능성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그 액이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외과 의사도 몰랐다. 다만 신경 다발 사이 어딘가에 흠이 생겨 액이 빠져나온 게 아닐까 다.


내 담당 외과의는 내게 MRT 결과에 대해 미안해했지만 난 사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원인은 모르지만 문제는 찾았으니까. 나는 병원에 있고, 수술만 잘 받으면 더 이상의 통증은 없을 것이다. 살 것 같았다. 오히려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두 번째 수술은 다른 의사가 했다. (내 담당의는 다음날 휴가를 가셔야 한다고. 헐!) 그러나 나는 한국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의사들의 실력을 믿었다. 누가 하든 수술은 잘 될 것이다. 내가 걱정 건 내 엉덩이 마비와 방광이었다. 소변이 꽉 찼는데도 밤새 못 느낀다면? 그렇게 수술실로 들어간다면? 그러다 방광이 터지거나 기능을 상실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만약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면 책임은 누가? 누 책임가가 요한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평생 소변줄을 꽂고 산다? 암보다 무서운 상상이었다.


밤에 두 번 화장실을 간 건 한 것 같았. 간호사는 침대에 통을 받쳐주고 소변을 보라 했지만 내 엉덩이는 이미 반쯤 마비 상태라 느낌도 없고 힘도 안 들어가고 무엇보다 도저히 누운 상태로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간 건 중력의 법칙! 내가 힘을 주지 않아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변기에 앉을 수만 있다면 소변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지니까.  예상은 맞았다. 방광이 걱정되어서 수술 전날 한숨도 못 잤지만 내 방광 안전하다, 비어 있다는 생각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잠은 수술실에 들어가서 자고  나와서 자면 되니까!



J언니가 보내주신 정겨운 간식 2



수요일 아침 7시 30분에 수술실로 옮겨졌다. 아이가 학교로 갈 시간이었다. 아침에 메시지라도 보낼걸. 수술실로 가기 직전에 한국의 가족에게도 수술을 알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지! 급히 톡으로 언니에게 수술 소식을 알렸다. 그래도 외과 담당의가 아침에 제일 빠른 시간으로 수술을 잡아주고 휴가를 떠나서 다행이었다. 술 예정 시간은 100분. (나중에 수술한 의사에게 들으니 실제 수술한 시간은 60분 정도였다고 한다.) 수술 시작은 아침 8시였다. 아이가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 못하고 수술실로 내려온 게 후회되눈물이 났다. 아니지, 수술 잘하고 나가서 눈 뜨자마자 전화로 말해주면 되지. 그러니까 꼭 돌아오자. 하나, 둘, 셋.. 산소 호흡기를 씌워준 간호사가 숫자를 세며 이제 곧 잠이 듭니다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곧 잠이 들었다.


회복실에서 눈을 뜬 건 오전 10시 30분. 수술 시작한 지 2시간 반 후였다. 수술 부위에 통증이 있어서 간호사에게  통증 강도를 계속 떨어뜨렸다. 기가 7-8 정도이던 통증이 2-3 정도로 내려온 시각이 오후 1시 반.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 수술은 끝났다! 마음은 안심, 컨디션도 좋았는데 마음과는 달리 입 안과 입술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에게 전화하기 전에 일단 할 일이 있었다. 마비 확인. 허리 통증은 사라짐. 엉덩이 쪽 피부를 만져보니 아주 조금 마비가 풀린 느낌이었다. 소변줄이 달려있지 않아서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통을 받치고 오래 걸렸으나 소변도 조금 보았다. 미션 클리어! 누구보다 남편이 크게 기뻐했다. 아이와도 통화했다. 수술 전날 병원에 와서 면서 돌아간 아이였다. 이번 수술은 저번보다 어렵지 않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어 말로도 굳은 얼굴을 펴지 않고 그런  듣기 싫어, 하던 아이였다. 엄마 수술 잘했어! 그 한 마디에 아이 목소리가  녹듯 다. 다행이야 엄마..


그로부터 만 사흘. 꼼짝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중이다. 수술 후 48시간 동안 꼼짝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벌써 72시간 째다. 지난 수술과는 결이 다르다. 그때는 수술 다음날부터 일어나 앉고 걷고 움직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고 일어나 앉지도 말라고 다. 같은 곳을 두 번이나 수술했으니 당연하지. 양쪽으로 번갈아 돌아눕는 건 괜찮다고 했다. 등에 피주머니를 꽂고 있어서 불편하기는 해도 피부가 약해지지 않도록 자주 돌아누우려 노력다. 그사이 또 친구 하나가 음식을 가져다주고, 병원 가까이 사시는 언니가 과일을 썰어다 주시고, 자주 병문안을 와 주시고, 오늘은 한국슈퍼의 J언니가 음식을 보내셨다. 계속 누워있는데도 다행히 입맛을 잃지는 않아서 감사히 먹고 있다. 현재 나의 목표는 잘 먹어서 기운을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병원에 오래 버티는 것이다. 이 상태로 집에 가면 끝이다. 집에 가면 어쩔수 없이 움직이게 되니까. 그래서 곰곰 생각한 결과 마비가 풀릴 때까지,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볼까 다. 비록 마비는 조금씩 풀려가고 있지만 말이다. 



병원에 있어도, 병원이니까 더, 두꺼운 책이 있어 든든하다.



*<나는 메크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 조현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3)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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