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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06. 2023

12월 뮌헨엔 폭설이 내 허리엔 통증이

항암 4주 차

2023.12.2 토요일 아침 우리 집 발코니와 창 밖 풍경.



12월 첫날 뮌헨에 폭설이 내렸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룻밤 사이 적설량이 30-40cm라니! 내가 처음 뮌헨에 오던 2018년에도 눈이 꽤 왔는데 올해 12월과 비교하니 귀여운 편이었다. 12월 지난 금요일부터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 항암을 한 주 쉬고 그 주 금요일에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는데 전날 내린 눈으로 병원으로 가는 길이 축축하고 험했다. 주말 이틀 동안 예정된 행사도 많은데 어떡하지. 날씨도 흐리고 눈 소식도 계속 있던데. 평소 10분도 안 걸리던 병원 길을 20분 넘게 조심조심 걸어서 트람과 지하철 U반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길로 주말 이틀 동안 집콕. 행사고 뭐고 다 취소하고 못 간다고 말했다.


토요일 글학교 방문과 일요일엔 아이 가라테 행사가 있었다. 글학교엔 하루 전날 담임 샘과 행사에 적극 협조해 주시는 학부모께 가기 힘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무리하다가 빙판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끝장 아닌가. 허리 수술한 지는 두 달이 안 되었고, 허리에 원인 모를 통증이 생긴 지도 1주일째였다. 가라테 행사는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파파만 따라가기로 했다. 주말엔 양쪽 시어머니 방문도 겹쳐있었다. 남편과 미리 상의 후 두 쪽 다 남편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도 말씀은 내가 직접 드려야 예의지. 두 분 시어머니께 설명드렸다. 눈 오는 게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고. 허리에 통증이 생겨 집에서 쉬고 싶다고. 죄송하다고.



2023.12.3 일요일 아침 우리 집 부엌 발코니 풍경.



토요일 아침이었다. 아침 07:46분 학교에서 소식이 왔다. 폭설로 한글학교 휴교한다고. 학교는 10시에 시작이지만 뮌헨 외곽에서 S반을 타고 오시는 분들이 많기에 마음이 급했다. 아이를 깨워서 나는 학부모 단톡방에, 아이는 반친구들 단톡방에 교차 연락을 했다. 댓글로 확인을 하고 못 읽은 분들께는 개인톡과 전화로 연결을 시도했다. 아이도 연락이 안 닿는 학부모를 대신해서 반 아이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08:26 모든 가정에 휴교 소식 전달 완료. 휴! 그런 날 혹시라도 소식을 못 듣고 산 같이 쌓인 눈을 헤치고 아이 손 잡고 집을 나섰다고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토요일인 그날 뮌헨은 공항 폐쇄. 열차와 장거리 지상철인 S반도 운행 금지. 따라서 양쪽 시어머니 방문도 불가. 차로 가려면 갈 수도 있겠지만 무리는 안 하는 게 좋겠지? 어머니들도 아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이해해 주셨다. 일요일 가라테 행사도 취소 이메일을 받았다. 자연재해에 관한 내 촉이 이렇게 잘 들어맞은 적 언제였더라. 요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토요일 계속 내린 싸락눈으로 일요일 해가 났는데도 눈은 하나도 녹지 않았고, 길은 빙판, 날씨는 싸늘했다. 아이와 나는 집콕. 남편만 이틀 동안 눈 왔다고 좋아하며 수시로 밖으로 들락거렸다. 장을 봐오고, 나가서 눈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단골 빵집과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빵과 뮤슬리를 공수해 오고, 기타 등등.. 그럴 때는 진심으로 감탄하다 못해 남편을 존경하게 된다. 그 건강함, 성실함, 부지런함에.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그의 사전에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2023.12.4 월요일 아침 우리 집 앞.



월요일 피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조금 올랐다고 했다. 오랜만에 마리오글루 샘이 근무날이라서 허리 통증 얘기를 했더니 당장 방사선과로 연결 주셨다. 서서 찍는 방사선이라 어려움은 없었다. MRT는 2주 후에 찍기로 했다. 그전에라도 통증이 크면 무조건 달려오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마리오글루 샘이 물리치료과 샘도 암센터로 부르셔서 등과 허리 다리를 체크하도록 해주셨는데 이 샘이 자기 소견을 얘기 안 했음. 자세한 건 MRT를 찍어봐야 안다면서.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명히 물리치료 샘이 내 등 수술 옆쪽을 누르니까 한참 아래쪽인 내 허리가 전기에 감염이라도 된 듯 찌릿찌릿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지난주 금요일 내 다리 부종 테라피스트는 고개를 들고 하는 개구리헤엄인 평형은 허리에 무리가 크다고 했는데. 나처럼 오래 수영을 안 했고 허리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환자에겐 아쿠아 운동과 수영 1시간은 무리였다며 지금은 허리 강화보다 복부 근육을 키우는 동작부터 시작해야 한다 몇 가지 쉬운 동작도 알려줬는데.

 

화요일 4차 항암 했다. 이틀 동안 병원에는 남편이 차로 데려다주었다. 원래는 택시로 가려고 했는데 택시를 검색해도 없었다. 사흘 만에 집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온통 새하얀 눈의 왕국으로 변해 있었다. 신기신기. 그래도 밖은 미끄러웠다. 빨리 정신을 수습. 차에 타니 허리는 또 얼마나 아픈지. 허리를 받칠 쿠션을 하나 준비했어야 했는데. 항암 전에 또 피검사. 척추 CT도 찍고. 피검사 결과가 괜찮은지 항암 4차 진행(09:30-13:10). 총 3시간 40분 소요. 거의 대부분 잤다. 암 때도 친절한 간호사 분이 담당이었는데 이 분이 내게 말했다. 내 허리 통증은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호중구 주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검색해 보니 그런 사례가 차고 넘쳤다. 유레카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말은 내 등 수술이나 척추뼈 전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니까. 항암만 끝나면 물러날 통증이란 뜻 아닌가! 4차 항암이 끝나고 다시 호중구 주사를 맞고 왔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고 했다. 간호사들의 공통된 소견은 호중구 주사 말고는 백혈구 수치를 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그러면서 간호사 샘이 말했다. 주사 후 통증이 조금 심해질 수 있다고. 그러면 어떤가. 전날 마리오글루 샘께 이부프로펜 600보다 효과가 큰 진통제도 받아왔는데.


항암 후 집에 와서는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부엌 식탁 벤치 의자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K드라마 <직장의 신>보았다. 책도 드라마 재미 최고다. 저녁은 국수를 삶아 친구가 만들어준 백김치 국물에 말아먹었다. 남편과 아이는 남편이 사 온 스시와 피자를 먹고. 오후 내내 빨래를 두 번 돌리고 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은 기분에 죽고 사는 것이다.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의 원인이 뭘까 내내 불안하고 걱정됐는데, 호중구 주사로 백혈구가 활성화되면서 통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편해서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해 이른 저녁을 먹고 2시간 다. 어나서는 기 백배해서 눈밤의 체조도 잊지 않았다. 부종 테라피스트에게 배운 복부 강화 동작을 쓰리 세트로 했더니 아이가 너무 달리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아이는 엄마가 뭘 해도 걱정이다. 이 눈에 엄마 좀 오버하는 스타일가 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저녁 무렵 자고 일어난  허리 통증이 싹 사라졌다. 이건 또 뭐지? 몸이 오버해도 좀 불안한데. 일단 자고 일어나 보면 알겠지. 이 찬스는 글쓰기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통증에 시달리느라 글을 제대로 못 올렸다. 통증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즈음이다. 12시간에 한 번 먹으라고 마리오글루 샘이 주신 강력한 한 방 진통제는 침대 옆에 두고 아직 먹지 않다. 통증이 와야 먹지. 예방차 먹을 수 없. 먹을 일이 없다면 더 좋겠지. 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한국에서 언니가 보냈다는 작은 가마솥도 폭설을 뚫고 오고 있고, 잘츠부르크 근처에서 보냈다는 장조림도 눈길을 헤치고 오고 있다. 난 운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 눈처럼 고운 마음씨를 가진 이들이 이토록 많은 걸 보니.



2023.12.1 금요일 병원 암센터 창 밖과 휴게실 풍경.
2023.12.4 월요일 병원 암센터 휴게실과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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