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아쿠아 운동을 한 번 했는데 그 후 허리 통증으로 고생 중이다. 일요일에 허리 아랫부분이 불편하더니 일요일 밤부터 무척 아팠다. 이 통증은 어디서 왔을까. 아쿠아 운동은 몸에 큰 무리가 없다고 들었는데. 무료 아쿠아 운동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항암 동기인 독일 할머니 이어리스에게 들었다. 20분 아쿠아 운동 전후로 수영을 20분씩 하니 총 1시간. 개구리 수영인 평영을 했는데 그게 문제였나. 검색해 보니 허리 통증이 있을 경우 자유형이나 배영을 추천했다. 평영과 접영은 허리에 부담이 된다고. 아쿠아 운동 때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상체를 위로 향하는 동작이 있었는데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상체를 앞뒤로 굽히는 건 금지이기 때문이다. 좌우로 비트는 동작도.
월요일 아침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당일 근무여의사에게 말했더니 대뜸 근육통이 아닐까요, 하고 말했다. 오, 그럴 수도 있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원인을 모르는 통증만큼 불안한 것도 없으니까. 의사와 상의해서 아쿠아 운동은 그만두기로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 2차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다고. 피검사 결과도 썩 좋지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3주 연속 떨어져서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또 맞았다. 다행인 건 병원에 가니 허리 통증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 병원에 천천히 걸어간 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의사는 허리 통증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녀는 지난번 등 수술 때처럼 뼈전이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날밤 다시 허리가 아팠다. 통증은 밤에 심한 것 같다. 신기하다. 밤인 줄 어떻게 알고? 다음날 아침 4주 차항암을 하러 병원에 도착하자 통증은 또 약해졌다. 제발 근육통이었으면!이틀 동안 허리 통증으로 잠을 충분히 못 잔 것도 백혈구 수치에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
눈은 내리고 눈은 쌓이고.
이번주 4차 항암은 연기되었다. 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판단한 의사들이 3주를 한 사이클로 묶고 한 사이클이 끝날 때마다 한 주씩 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3주 항암, 1주 휴식. 총 항암은 18회다. 지금까지 3회를 했으니 여섯 사이클 중 한 번을 마친 셈이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항암 주기가 길어진다는 생각에 한숨부터 났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 면역력을 고려한 결정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등 수술 후 한 달 만에 항암을 시작했으니 면역력이 떨어질 만도 하다. 내 몸이 AI도 아니겠고. 그렇다면 허리 통증부터 잡고 볼 일이다. 근육통이라면 시간이 약일 테니까. 항암과 허리 통증 두 가지를 안고 가기는 버겁다. 이번 허리 통증은 지난번 등 수술 때와는 다른 것 같다. 뭐라고 할까. 수술 전 통증은 한 곳을 칼로 저미듯 예리하고 날카롭고 쨍했는데, 이번 통증은 둔중했다.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누워서 방향을 바꿀 때 주로 생겼다. 허리가 박하사탕처럼 화하게 아팠다. 통증이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과 통증이 발생하는 타이밍이 예측 불허라는 건 같았고. (등 쪽 수술한 부위가 아픈 건 아니다.)
항암을 못한 화요일 밤 다시 통증이 심해져 진통제를 한 알 먹고 나서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두세 번 깼는데 그 후로도 계속 잤다. 다음날인 수요일도 허리 통증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침대에서 무릎을 세우고 허리를 드는 브리지 자세를 했더니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무생채를 만들고 된장국과 북엇국을 끓이고 콩죽을 끓인다고 부엌에 오래 서 있다가 부엌 의자에 앉았더니 허리가 꽤 불편했다. 이거 진짜 뭐지? 근육통이라면 슬슬 약해질 때도 되어가는데. 저녁이 되자 다시 통증이 심해져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목요일까지 상태는 고만고만했다.
우리집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이웃집들의 따듯한 불빛.
머리카락은 지난주 3차 항암이 끝나자마자 바로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는데 빠지는 양이 달랐다. 뭉터기로 빠졌고, 손으로 머리를 훑기만 해도 쑥쑥 빠졌다. 이렇게 일찍? 이것도 면역력과 상관이 있나 보다. 예전과 달리 머리 밑 피부도 당기듯 아플 때가 있었다. 누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허리 통증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끝도 없이 빠져서 욕조 바닥에 쌓이는 머리를 보면 마음이 심란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난 후로는 이까짓 머리칼쯤이야, 라며 대범해졌다. 머리는 빠지면 다시 나겠지. 예전에 쓰던 가발도 찾아놨고. 써보니 그럭저럭 쓸만했고. 허리만 아프지 않다면 다 괜찮다 싶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한국에 잠시 다녀온 조카가 집된장과 묵은 김치를 들고 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귀국 전날은 서울로 가서 우리 친정 엄마를 만나 아이가 좋아하는 할머니표 멸치볶음과 진미채볶음까지 받아왔다. 조카가 들고 온 묵은지 김치와 볶음들을 풀고 밥을 무생채와 된장에 비벼 북엇국과 먹었다. 같이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 우리 남편은 비빔밥이 맵다며 못 먹었다. 처음엔 뭐가 맵다는 건지 이해를 못 했는데 된장에 독일 마트에서 산 땡초를 썰어 넣어서 그런가 보았다. 학교에서 늦게 온 아이는 파파가 남긴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이런 걸 보면 역시 피는 못 속인다. 우리 한국인의 핏속엔 매운 땡초와 고춧가루가 흐르는 게 틀림없다.
밥을 먹고 조카와 같이 마신 건 솜씨 좋은 친구가 진하게 우려 준 대추 생강 계피차였다. 계피 덕분인지 대추의 단맛과 생강의 매운맛이 톡톡 튀지 않고 커피의 크림처럼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친구가 나박김치를 들고 온다고 해서 기다리던 목요일 오후. 친구가 들고 온 건 나박김치뿐만이 아니었다. 배추김치와 닭죽까지.
우리 슈퍼 사장님도 성탄절 선물이라고 배 한 박스씩을 직원들에게 주셨다. 지금은 쉬고 있는 나한테도 주셨다. 지난 주말엔 송년회 겸 직원 회식 자리에도 불러주셔서 엄청 배부르게 먹고 왔는데. 슈퍼의 점심 코너를 담당하시는 J언니는 김치와 불고기와 콩나물을 챙겨주시고. 이런 귀한 것들을 매일 얻어먹고 살고 있다. 기운을 안 내려야 안 낼 도리가 없다. 비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허리도 아픈 채로 항암을 하고 있지만 고마운 삶이다. 2023년도 한 달이 남았다. 12월도 힘차게 가보자고 결심하는 11월의 마지막 날에 뮌헨에는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