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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23. 2023

다시 백혈구가 모자라서

항암 3주 차

3차 항암.



3차 항암을 다. 전날 피검사를 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또 모자란다고 혈구 수치를 올려주는 호중구 주사를 맞았다. 니 이럴 수가. 1차 항암 을 뿐인데 2차, 3차 계속 백혈구 수치가 모자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난주 사흘  단식 2주 차 때는 첫 주에 비해 속이 아프거나 지는 않았다. 많이 먹으려고 애도 썼다. 다만 주중에 두 번이나 윤찬 공연을 보러 간다고 들떠서 산책을 부지런히 나가지는 못했다. 이것 패착의 원인 중 하나일까. 뭐든지 잘 먹고 화도 잘하고 산책도 열심히 하고 잘 쉬어야 하는데.


피검사를 하고 돌아온 월요일. 남편과 죽 단식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논했다. 항암 사흘 죽 단식법은 항암의 효과를 최대치로 높이고 부작용을 크게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내 경우엔 항암 부작용 별없는 편이라서 부작용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항암의 효과를 높이는데 주목하고 시작한 지 2주.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백혈구 수치 저하를 불러왔다. 몸무게 초반 -3킬로에서 -5킬로가 되었다. 60킬로대를 사수하다가 50킬로대로 몸무게의 앞자리 바뀌다. 고 싶은 게 많아서 죽 단식이 어려 때다. 흘 동안인데도 먹고 싶은 걸 참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암센터 담당 의사 샘도 많이 놀라는 것 같았다. 항암이 원인이 아니라 수술 이후부터 빠진 거라고 변명을 했지만 이러다 사흘 죽단식 때마다 500g씩만 빠진다고 가정해도 50킬로 초반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었다. 안 될 말이다. 암 환자에게 몸무게는 피 같은 것.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고지 같은. 심 끝에 죽 단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월요일 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다음날 다시 피검사 결과켜보기로 했다. 친구가 준 사골국을 팔팔 끓여서 레아마리 맘이 가져다준 장조림 먹었다. 장조림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저녁에는 감자와 배춧잎과 돼지목살을 넣고 간편 감자탕 끓다. 이른 저녁을 먹고 먹방과 K드라마를 는데 갑자기 어묵탕이 생각나서 끓여 먹기도 했다. 항암 아침 다시 피검사를 했다. 결과 좋았다.



항암을 할 때는 과일과 채소를, 항암 후 산책을 하며 귀가할 때는 돈가스를 잘라 넣은 슈니츨 바게트를 먹었다.



3차 항암날에는 아침 8시 30분 병원 도착. 피검사. 결과 기다림. 오래 걸다. 피검사 결과 오케이. 10시부터 항암 시작. 12시 30분 끝남. 부지런히 서 링거를 체크해 주시고 끝나면 바로바로 갈아주신 친절한 간호사 덕분에 일찍 끝남(호랑이 간호사님 가까스로 피함. 마음 엄청 편했음). 초반에는 안 피곤하다가 중간부터 잤. 자고 나  개. 3차 때는 항암약 둘 중 파클리탁셀 하나만 맞았. 이유는 모르겠고. 4차나 5차가 되면 다시 둘 다 맞을 것 같다. 2년 전에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머리칼도 확 빠고. 항암을 하는 동안 집에서 준비해 간 채소 과일 도시락을 배부르게 먹었다.


병원을 나와 프랑스 카페차를 마시며 호흡 고르고 3차 항암 이후 플랜도 수정해야 했다. <항암사흘죽단식>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의 불만도 없다. 죽단식을 마치고 1차 항암을 는데 하나도 안 피곤했으니까. 예전에도 그런 적은 없었다. 한 마디로 어메이징 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백혈구 수치에 대해서 간과한 게 함정이었다. 백혈구 수치는 내 면역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른 사람들은 어떻게 백혈구 수치를 유지하면서 항암사흘단식을 했던 걸까. 궁금하다. 난 일단  단식 노선에서 후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카페를 나올 때 슈니츨이 든 바게트를 사서 먹으며 걸었다.


카페에서 쉬고 나자 산책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까지는 니까 산책길 끝에서 U반을 타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차고 신선한 공기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지난주에 많이 못 걸은 것도 만회할 겸. 산책길로 접어들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11월에 우산은 필수 아이템이다. 독일 사람들처럼 큰 비 아니라고 무시했다가 가랑비에 젖어보라. 기분마저 축축해진다. 이런 계절엔 몸과 마음 보송보송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산책길에 낙엽은 쌓이고 나무들은 맨 몸으로 서 있다. 좋건 싫건 수시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11월. 그래서 11월 좋다. 가능하면 매일 산책을 기로 다짐하며 돌아 3차 항암날. 산책을 하고 돌아오자 그날 오후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이와 K드라마를 보고 평소 자는 시간에 자러 갔다. 러면 됐지, 여기서 뭘 더 바라나.



항암 후 걸은 산책길.



3차 항암을 한 월요일 이후 지금까지 잘 먹고 있다. 먹고 싶은 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설탕과 유제품만 주의하면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해 먹거나 내가 했는데 맛이 없으면 두 번 돌아보지 않고 버린다. 경험에 의하면 맛없는 걸 아깝다고 억지로 먹으면 입맛을 버다. 은 음식을 이틀 이상 먹어도 질고. 애 가진 임산부처럼 오늘 먹고 싶다가도 내일이면 쳐다보기 싫은 음식도 있다. 수시로 먹고 싶은 게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할 때가 많다. 나도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뭘 먹고 싶어 할지를 몰라서.


신기하게도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건 누룽지였다. 내가 직접 린 걸로 누룽지 죽도 끓여보았다. 언제 먹어도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프라이팬에 누룽지를 눌리는 것조차 귀찮을 땐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밥을 한 주걱 떠서 냄비 바닥에 고르게 펴고 약한 불에 두었다 밥이 누룽지처럼 바닥에 눌어붙으면 옥수수차를 붓고 끓여 먹기도 했다. 간편해서 좋았다. 된장찌개도 입맛을 살려주었다. 독일 슈퍼에서 파는 작고 매운 고추를 두어 개 잘라 넣으니 톡 쏘는 매운맛이 일품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겐 파스타를 해주거나 남편을 위해 독일식 감자수프를 준비하기도 했다. 여기식으로 치킨 스톡으로 간을 맞춘. 내 입맛에 꼭 맞지는 않지만 남편에게도 간장 베이스가 아닌 수프가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항암을 하고 돌아온 날은 남편이 저녁을 하지 말라고 배려해 주었다. 쉬라고. 내 밥만 차려먹고 계속 쉴 수 있다. 그 배려 고다. 항암 다음날도 피곤하지 않아서 그날 이후 산책 두 시간씩 고 있다. 상 기온이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지 오래지만 걷다 보면 운 줄도 모른다. 칠 동안 노력한 결과 오늘 아침 몸무게 앞자리가 다시 6으로 돌아왔다.  무게의 회복 탄력성이 이렇게 좋았던가 놀랐다. 어렵게 되찾은 몸무게를 안 잃는 게 앞으로의 미션이다. 2주간 시도해 보았던 <항암사흘죽단식>도 좋은 경험이었고.



레아마리 맘의 장조림과 누룽지. 한국슈퍼 J언니가 사다 주신 누룽지(위). 내가 만든 누룽지와 친구가 만들어준 사골(가운데). 내가 끓인 감자탕/어묵탕/된장찌개(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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