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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15. 2023

백혈구 수치가 간당간당했다

항암 2주 차

나의 항암날 도시락. 바나나/사과/키위처럼 탈모 방지를 위한 엽산도 풍부하게.



항암 전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다른 연락이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다음날 항암을 하러 병원에 깄더니 백혈구 수치가 간당간당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피검사 준비. 복부에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호중구 주사도 받 1시간 후에 항암을 시작했다. 이해할 수 있다. 1차 항암 후 나흘이나 제대로 못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잘 먹어야지. 장조림 한 소고기에 국물이 자작해야 하는데 국물이 없어 국물을 조금 만들어서 그 위에 끼얹고 항암 다음날부터 열심히 먹어봐야겠다.


어느 독자님으로부터 항암 때 머리가 안 빠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들었다. 신기했다. 항암 때는 예외 없이 머리가 다 빠진다고 들어서. 도 2년 전 첫 항암 때 머리의 절반 이상이 빠져서 가발을 썼다. 정답은 엽산이라고 한다. 임신 초기에 많이 먹어야 하는 게 엽산인 건 알았지만 항암 치료 중 탈모에 도움이 되는 줄은 처음 알았다. 바나나/사과/키위/딸기 등 과일과 초록색 채소에 많다고. 어쨌거나 몸에도 좋은 것들이니 항암 당일 도시락으로 싸들고 다니며 먹야겠다. 독자님의 친구분이 그 방법으로 항암 때 머리카락을 사수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가슴 꼭꼭 새기.


친절하고 세심하게 참고 도서까지 알려주셨다. 영국 교수이자 과학자인 제인 플랜트의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제인 플랜트, 윤출판, 2015.04). <Your Life in Your Hands :Understanding, Preventing, and Overcoming Breast Cancer> (당신의 삶은 당신 손에 달려 있다: 유방암의 이해, 예방 및 극복) 그 책이다. 한국어판 제목에서 말하는 우유는 유제품을 포함하는 의미 해석하면 되겠다.


구독자 님이 추천해 주신 죽 종류는 일본식 <미소 된장 야채죽>이었다. 일본 미소 된장은 맑고 심심해서 저염식을 해야 하는 항암 사흘 죽단식과도 잘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일본 미소 된장을 사놓은 걸 어떻게 아. 그나저나 집에 사놓은 일본 낫또도 있는데 어떻게 먹을지 비법을 모르겠다. 이래저래 먹어 봤는데 쉽게 질려서 다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길 바란다. 이번에 다시 한번 느낀 건 병은 자랑할 것. 놀라운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중 어느 것이 나와 궁합이 맞을지 모르니 몸과 마음과 귀를 열어두기만 하면 될 듯.



일본 미소 된장과 항암 사흘 단식 후 먹을 무생채(위). 죽 단식 중에 먹어 버린 매콤 어묵 꼬마 김밥(아래).
항암이 끝나면 집으로 걸어가는 병원 뒤편 숲길.



2차 항암은 총 4시간이 걸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피로해서 항암을 받으며 3시간쯤 잤다. 트람과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오자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또 1시간을 잤다. 늦게 마쳐서 안 그래도 피곤한데 내 손으로 점심까지 차려 먹으려니 조금 울컥했다. 주부가 암이면 그런 거 어떡하나. 항암 하러 가면서도 식구들 점심을 준비해 놓고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나만 생각하라지만 현실과는 갭이 있는 법. 다행히 남편과 아이가 저녁을 알아서 해결해 주어서 저녁 8시까지 침대에서 쉬었다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백혈구를 생각해서라도 끼니를 거르면 안 될 것 같았다. 2차 항암 할 때 제주에 사시는 브런치 작가 영끌치유 님의 글을 읽었는데 작가님이 댓글로 누룽지 죽을 추천 해 주셨다. 영양도 맛도 만점이라고. 한국슈퍼에서도 팔았던 것 같다. 물어봐야지.


전날에는 아이와 K드라마 보았다. 매주 항암을 하는데 18차를 하려면 최소 5개월 각오해야 한다. 가장 반가운 건 항암이 끝나면 봄도 온다는 것. 당연히 K드라마도 즐거운 게 최고겠다. 즐거운 K드라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김과장>이다. 어찌나 즐거운지 보고 나서도 주인공의 허술한 허당기에 실실 웃음이 나고 그게 또 이상한 매력을 발휘해서 힘을 솟게 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K드라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매운 어묵 꼬마 김밥> 그토록 먹고 싶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그것도 항암 전날에. 항암 사흘 죽단식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졌다. 잡곡밥을 아주 아주 얇게 펴 냉장고에 남아 있던 매운 어묵 조림을 꺼내서 꼬마 김밥만들었다. 꼬마 김밥은 아이와 반반 나눠먹었다. 꼭꼭 씹어. 체하지 말라고.


전날에 감자랑 배추 넣고 청국 된장국 끓여두었다. 청국 가루 한 스푼과 된장 한 스푼을 넣고 심심하게. 심심한 무나물과 죽과 함께 먹으니 먹기 좋았다. 죽은 아침에 끓보리차나 옥수수차에 보리 잡곡밥을 한두 스푼 넣고 중불에서 10분. 그러면 금방 훌륭한 죽이 된다. 항암 사흘 단식을 시작하던 날에 무생채도 만들어 두었다. 고춧가루는 유튜브에서 시키는 대로 한 스푼만 넣었는데 색이 붉었다. 대신 소금은 아주 조금. 설탕이나 매실 엑기스나 올리고당물엿을 사용하지 않고 귤고 싶었는데 귤도 없어서 오렌지로 즙을 다. 항암 끝나면 청국 된장국에 된장을 반 스푼 더 넣고 이고 채 듬뿍 넣고 큰 양푼에 비벼 숟가락에 크게 떠서 입 안 가득 넣고 어보고 싶다. 계란 프라이도 듬뿍 얹어서! 암 환자가 먹고 싶은 생각뿐이다. 것도 나쁘지 않다. 먹고 싶은 게 없는 게 탈이지. 다만 속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할 텐데.  도와주겠지?


이건 여담인데, 집에 저울이 고장 나서 한국 다녀와서 몸무게를 못 재봤다. 그런데 병원에 갈 때마다 몸무게를 적어내야 한다. 1차 항암 때는 한국에서 관리해 온 몸무게를 대신 적었다. 설마 그 정도는 유지하고 있겠지 싶어서. 2차 항암 전에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실제 몸무게를 알고 싶어서 항암실 안 저울에 신발만 벗어놓고 몸무게를 재 봤다. 이런!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왔는데도 3킬로가 빠져있었다. 술 후에 빠진 게 아닐까 싶다. 피검사를 하고 집에 오니 남편이 또 작은 저울을 사놨네. 옳거니, 다시 올라가 봤다. 그래도 마이너스 3킬로. 앞으로 항암 기간에도 살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 항암사흘죽단식 때문에. 나머지 나흘 동안 얼마나 보충하느냐가 관건이겠다. 해 보지 뭐! 갑자기 생각나네, 이 가사.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옛날 새내기 대학생 때 데모할 때처럼 한 팔을 올리고 주먹도 불끈 쥐고.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나는 노래 할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2차 항암날 저녁 8시에 무나물과 청국 된장국과 잡곡밥을 끓인 죽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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