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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7. 2023

새해를 맞이하는 암환자의 자세

새 가발을 산다! 글도 계속 쓰고

내 입원실 창문의 별은 크리스마스 장식.



사람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무기력증에 빠 십상이다. 두 번의 수술로 연타를 맞은 내가 그랬다. 수술 후 보름 가까이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냈다. 첫 수술 때는 그 와중에도 부지런히 브런치에 글 올리고 시간 맞춰 복도 걷고 매사에 열심이었다.  생각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다 싶어서. 그건 아이라는 존재만이 줄 수 있는 다. 이번에는 그 절반쯤만 애를 썼다. 한 번 보여준 전례가 있어서 아이는 이 상황에 금방 익숙는 듯했고 두 번째도 엄마가 잘할 거라 굳게 믿주었다. 그 덕분에 아이가 오지 않는 시간에는 부지런을 떨지 않았다. 예상치 못 크고 갑작스러운 한 방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 나는 어진 김에 는 쪽을 택했다.


폰에 데이터가 있을 때는 넷플릭스도 보고, 싱어게인 3에서 좋아하는 무명 가수의 노래를 유튜브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덩이 비는 완화 병동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는 없었다. 마비는 순전히 나 자신에게 달린 문제 같았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물리 치료사가 알려준 동작을 수시로 반복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다행인 건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다는 것. 기서 뭘 더 바라겠나. 마비까지 온 건 내 잘못도 크다. 통증을 그렇게 오래 참고 지체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병원도 그렇다. 우는 환자에게 떡 하나 더 준다. 참고 기다리는 미덕은 가정에서나 필요하다. 나마 마비 때문에 병원에 오래 입원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대체 어떤 느낌이냐고? 일단 얼얼하다. 내 피부가 내 피부 같지가 않다. 을 주어도 느낌이 없.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겠지.


완화 병동으로 넘어온 후로 누군 병문안을 오면 가발을 쓰고 밝은 모습으로 맞이하려 노력다. 들에게 중환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 무엇보다 듬성하고  머리칼을 보면 우울해다. 런 걸 미연에 방지하라고 가발이 있는 거다. 쓰는 것과 안 쓰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 외모도 그렇지만 기분도 그렇다. 우리가 다 기분으로 죽고 사는 거 아닌가. 아니시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대단한 대가 고수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지 않다. 햄릿이 공언한 대로 우리는 약한 존재들 아닌가. 그는 여자에게만 콕 집어서 그 타이틀을 갖다붙였지만 그때와는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리는 너나 없이 약한 존재일 뿐.



완화 병동에서 이틀 정도 열이 올랐다. 38.3도까지 지켜보던 의료진이 38.7도가 되자 약을 주었다. 열은 마음의 감기였다. 무기력과 사기 저하를 따스하게 감싸주던 소금 전등.



발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수술 후 외과 병동에서 중증 환자 모드로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완화 병동에서 만나고는 크게 달라진 모습에 놀라워했다. 가발을 쓰면 없던 생기 생기나 보다. 그게 가발의 효과다. 이런 마법의 카드를 일부러 안 쓸 이유가 있나. 그래서 결심했지. 새해에 가발을 하나 더 사기로. 남편과 아이에게 나를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대신 퇴원하면 돈 보태서 새 가발을 하나 더 사고 싶다고. 안다, 비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가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거의 1,000유로 가까이 했던 것 같다. 건강보험에서 40% 정도 지원을 받았. 핸드 메이드라 비싸다나. 그때도 핸드 메이드가 아닌 건 훨씬 저렴했다. 가짜면 어떤가. 가발은 가발이고 기분일 뿐. 퇴원하면 딸과 함께 가발 가게에 가보기로 약속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이게 가발의 존재 이유다. (만약 가발이 너무 비싸면 지금 쓰고 있는 가발을 미용실에 들고 가서 스타일을 바꿔달라고 할 생각이다. 플랜 B는 항상 중요하다.)


들리는 바로는 내년이 날삼재라는데 좋다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대체로 '평온한 항암'을 기도한다. 수술이나 전이처럼 드라마틱한 거 말고. 통증이나 마비 같은 무시무시한 것도 말고. 사람이 극한 상황을 겪다 보면 웬만한 건 평온해 보인다는 장점 있다. 어쩌다 별일 없이 항암만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는지. 이러다 항암이 제일 쉬웠어요, 같은 망언을 날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년 봄에 무사히 잘 마친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되겠지.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이번에 병원에 있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회의도 살짝 들다 말았는데, 글은 써서 뭐 하나 싶다가 그아니지, 하며 계속 써야겠다고 마음을 되돌린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바람은 올가을 두 번의 수술을 겪으며 버렸다. 그런 거 없이도 사는 데 지장 없다. 꿈을 이루어야만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최선을 다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실수도 많고 후회도 많지만 그러니까 인간이지. 부끄러움과 회한을 무릅쓰고라도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 심은 숭고하다. 것이 중요하다. 왜냐고? 그게 태어난 자들의 의무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포기보다 더 어 때도 있 때문. 누군들 죽고 싶 때가 나. 죽어라 버티기. 침내 살아남기. 두 번의 수술을 버틴 나의 새해 미션이다.


아니, 글쓰기를 포기하면 안 되겠다에서 너무 멀리 다. 내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가 치매 예방에 좋단다. 그러니 포기할 이유가 있나.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작가가 되고 꿈을 이루고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 그런 결과물과 타이틀은 있어도 좋고 어도 괜찮다. 생판 안 하던 짓을 해보자는 것도 아니, 몇 년간 쭉 해오던 걸 계속하자는 거니까 힘도 안 들지, 치매 예방에도 좋다 계속 안 할 이유가 없다. 즘 계산법으로 치면 가성비 갑이다. 돈도 안 들고 시간과 노력만 조금 들이면 된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으니 구독자 수와 라이킷과 댓글과 조회수도 신경을 끌 수 있다. 다만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글쓰기를 바랄 뿐. 게 참 어렵다. 결국 다른 예술 분야처럼 글쓰기도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는 게 관건인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자기기만 아니면 자아도취겠지. 거야말로 약도 없는 심각한 병이. 핵심을 비켜서지 않고 끝까지 문을 고 갈 수 있다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고 치매 예방도 되겠지. 이렇게 치매 예방에 신경이 쓰이는 건 암도 치매도 하루아침에 오는 게 아닌 것 같아서다. 미리미리 예방이 중요하다. 닥치면 늦은 감이 다. 고생도 심하다. 몸도 마음도. 나도 남도. 러니 론은 렇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 때 조심하고, 나처럼 닥친 사람은 힘 내서 자.



병실 창 밖은 정신과 병동. 내가 있는 완화 병동과 함께 가장 오래된 병원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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