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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8. 2023

드디어 퇴원!

2023년도를 돌아보며 좋았던 날들을 회상하다

퇴원하는 날!


드디어 퇴원이다. 금요일까지 하루 더 있어도 된다는 할아버지 의사 샘의 배려를 사양하고 하루 일찍 집으로 간다. 병실이 갑갑해서 계속 창문을 열어두고 출입문도 조금 열어두고 있어야 해서 갈 때가 왔구나 싶었다. 병실 답답해서 시원한 바깥바람이 그리웠다. 그래도 하루 더? 아니. 그만하면 충분했다. 난 이만 집으로 간다. 잘 있어라 완화 병동아. 난 가야 한다. 가고 싶다.  집으로.


퇴원을 앞두고 2023년도를 돌아보았다. 라도 잘한 건 없을까. 하나라도 건질 건 없을까. 한 해가 다 엉망이기만 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하반기에 불운이 겹쳐 비록 두 번이나 수술을 하긴 했어도 좋은 날도 많았다. 봄에는 클래식 공연을 많이 보고, 등산도 자주 갔다. 초록의 싱그러운 산, 바람, 공기가 그때의 나를 살 것을 기억다. 히 첫 수술 후에 있었던 11월 윤찬 뮌헨 공연은 로 꼽 수 있!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2023년도의 하이라이트는 여름날의 한국이었다. 돌아보면 너무 무더워서 서늘한 카페에 오래 머물렀고, 차고 단 밭빙수도 자주 먹었, 베이커리에서 단 빵도 먹었다. 다음에 가면 먹거리에 신경을 써야지.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카디건과 얇은 무릎 담요 같은 것도 챙겨 다녀야지. 따뜻한 음료를 더 자주 마시고, 달고 찬 건 되도록 안 먹. 물론 나의 최애 솥밥은 더 자주 먹어야지. 누룽지와 함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뮌헨 한글학교에서 했던 문학 특강도 2023년도의 큰 성과 중 하나다. 상반기 때는 특강 일수가 많았고, 하반기 때는 딸아이 반인 수박반에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했다. 9월에 <햄릿>과 <오셀로> 2강을 마치고, 10월에 첫 수술을 하는 바람에 연이어 청소년 반에서도 할 예정이었던 4대 비극 강의는 취소했다. 수술 후 11월에 항암을 시작하며 수박반에서 나머지 2강인 <리어왕>과 <맥베스> 마무리했다. 단편에 비해 다소 복잡한 스토리와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수업 전에 보드에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역할을 적어놓았다. 과연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가 먹혀들까 나 역시 반신반의했는데 하는 내내 즐거웠다. 이게 세계문학이지! 단편을 떠나 세계문학의 정수인 셰익스피어를 강의할 수 있어  보람 있고 강의 때마다 가슴이 뛰고 벅찼다. 아이들도 즐거웠다면 금상첨화인데.



침대에 누우면 마주보이는 벽걸이형 TV는 한 번도 켜보지 않았다.


이 글은 2023년도에 특별히 감사하기 위해 쓴다. 만약에 한국에서 첫 번째 통증이 시작되기라도 했다면 어쩔뻔했나. 죽도록 참거나 참다 참다 병원 갔겠지. 거기서 수술이라도 해야 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스님의 49재도 못 가고, 우리 아이의 4년 만의 한국 방문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나 역시 뜨거운 태양 아래 서울에서 부산에서 친구들과 그토록 즐거운 시간을 갖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걱정만 안기고 민폐만 끼치다 부랴부랴 귀국해야 했을지도. 한국에서 무탈하게 버텨몸에게도 감사.


퇴원을 앞두자 수술을 반복하던 지난 시간들이 꿈 같다. 아무리 인생이 꿈같다고 한들 실감을 못하고 매 순간 아등바등 살기 쉬운데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면 왜 인생이 한낱 꿈인지  다. 가 내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와 어두운 객석에 나와 나를 둘러싼 인물과 배경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무대 위의 시간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기분.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즐겁고 기뻤던 시간들도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손바닥의 양면처럼 그 시간들은 뫼비우스의 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객석에서는 무대 위에서 아했던 사람들도 미워했던 사람들도 감정의 소란 없이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


드디어 집으로 간다. 겨우 보름을 떠나 있었 뿐인데 가슴이 설렌다. 내 집으로 돌아간다. 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퇴원 전날 남편과 아이가 와서 작은 백팩 하나만 남기고 짐을 들고 가주었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친구들과 언니들이 들고 오신 남은 음식을 마저 먹었다. 상할까 봐 남은 음식은 이중 창문 사이에 두었는데 냉장고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었다. 독일의 병실에는 냉장고가 없다. 저장 음식이라든가 밑반찬 같은 개념이 없기에 그런 모양이다. 귀한 음식을 버릴까 봐 신경 써서 마지막 전날까지 알뜰하게 먹었다. 그 귀한 음식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앉고 서고 일어나 걸을 힘을 준 건 아닐까.


심지어 작은 베개 사이즈의 소형 마사지기를 선물하고 간 옛 동료도 있다. 소파형 마사지 기계처럼 울퉁불퉁 돌아며 어디에 갖다 대도 위이잉 소리와 함께 지치는 법 없이 자기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마사지 기계였다. J의 성의에 보답하느라 열심히 받다 몸살 날뻔했. 가장 좋았던 건 퇴원 전날 내 브런치에 들어와 아침마다 날 위해 기도한다며 잘 자요 언니,  미소 띤 얼굴과 귀에 익은 목소리가 절로 오버랩되는 정다운  남기고 간 그리운 동생 연지네 댓글. 벌써 집에 도착이라도 한 듯 내 마음을 포근하고 포실게 만들어주, 2023년도가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던 다정하던 밤인사. 


2023.12.28. 목요일 완화 병동의 아침이 밝았다. 병실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받았다. 아침을 준비해 주신 자원 봉사자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로 오늘 하루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이 아침만 먹으면 집으로 간다. 집에 간다고 끝은 아니다. 다시 시작이고 첫출발이다. 그러나 처음이란 좋은 것이다. 언제나 설레는 것. 곧 처음의 대명사인 새해도 오겠지. 12월도 며칠 안 남은 뮌헨의 날씨는 사흘째 맑음.



완화 병동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 정말 마지막이길..



PS. 화 병동에서 만난 두 물리 치료사에게 배운 동작들도 정리해 놓는다.


<남자 물리 치료사>

1. 서서 종아리 풀기

  -바를 고 한쪽 다리를 뒤로 스트레칭

  -같은 다리 무릎을 굽혀 앞에서 위로 올리기

  -바를 잡고 한쪽 다리를 펴서 옆으로 흔들기

2. 누워서 다리/몸통 스트레칭

  -누워서 다리 펴고 수건에 한 발 올리고 스트레칭

  -양쪽 무릎 세우고 한쪽 발을 다른 쪽 무릎에 올리고 올린 쪽 무릎 아래로 밀기/양손은 세운 다리 허벅지

  -양손으로 밴드를 잡고 아래로 지그시 당기기

3. 퇴원 후 등 스트레칭(초보 플랭크)

  -고양이 자세에서 무릎과 양 팔꿈치를 바닥에 두고

  양 무릎을 조금 더 뒤로 놓서 버티기/배꼽에 힘 주기

4. 퇴원 후 복도 오르내리기(아랫배 힘 주고)

  


<여자 물리 치료사>

(엉덩이 마비 풀기 셀프 마사지 법)

마사지 장갑/마사지 볼/샤워 타월 이용해서 물기 없이 피부를 문지르기. 맨손으로도 가능함.


1. 엉덩이 근육(옆으로 누워서)

복부에 힘을 주고 배꼽을 뒤쪽 아래로 밀어놓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겨 바닥에 놓고 한쪽 무릎을 벌리기

2. 엉덩이 근육(옆으로 누워서)

다리를 펴고 한쪽 다리를 어서 뒤로 밀기

3. 등 근육(앉아서)

밴드를 머리 위쪽에 묶어놓고 두 손으로 밴드를 각각 잡고 아래로 당기기

4. 등 근육(서서)

밴드를 두 발로 밟고 다리를 벌리고 무릎 굽히기

무릎은 스쿼트 수준으로 낮추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조개가 입을 벌렸다 닫듯이 상체만 올렸다 내리기 (자극은 등 아래쪽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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