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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05. 2024

입춘이 왔다 병원에 있었다

퇴원 대신 완화병동으로

복숭앗빛, 어디선가 들었는데 이것이 2024년도 색이라고 한다. 복숭아 대신으로 먹은 건 감과 파파야와 망고!


이틀 전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집으로 퇴원을 하기로 한 이었다. 놀랍게도 전날에는 잠도 잘 잤다. 처음 먹어보는 수면제 졸피뎀도 효과 만점이었다. 전날 저녁 9시에 그대로 잠이 들었고, 자정살짝 잠이 길래 수면제를 먹었다. 면제 덕분인지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잠을 잤다. 기뻤다. 얼마 만의 숙면인가. 병원에 와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나는 퇴원을 못했다.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4시간 동안 오전 내내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 느껴보허리 통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없고, 누워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통증. 온몸에 진땀과 비명을 부르고 눈물불러오던 통증. 내가 병원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집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 상상  않다. (생각해 보면 부처님의 가피다.. 신은 정말 있으신가 보다. 통증이 있던 그날 내가 병원에 있었고, 의사가 그 상황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그 전날 내가 하도 생생하게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걸 보았던 의사는 처음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나 역시도 설명이 불가했다. 겪어보니 통증이란 게 그랬다. 예고도 없고 불시에 도착는 걸 난들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화산이 폭발하듯 나미급으로 들이닥쳤는데.


아침부터 경과를 지켜보던 의사는 마침내 한두 시간 후부터 협조적이 되었다. 설마 내가 퇴원하기 싫어서 꾀병이라도 부린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걸 꾸며댈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통증이란 게 과연 꾸밀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란 연기일 뿐. 거짓으로 죽음 같은 통증을 흉내 낼 수 있다고? 아니. 불가능하다. 비명이야 지를 수 있겠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까지도 어쩌면.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직접 겪지 않고는 도저히 흉내조차  없는 통증도 있는 것 같았다. 의사가 믿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안 믿어주면  말인가. 힘없는 환자가. 만큼 하룻밤새 내 변화가 드라마틱했다는 뜻이겠지. 의사도 믿기 힘들 만큼.




금요일 오후 되자 알약으로 먹던 모르핀 약을 수액으로 맞았다. 항암 포트에 주사기를 연결해서. 오후에도 통증이 추가로 왔다 갔다 했다. 그때마다 진통제 강도를 높였는지 토요일 아침이 되자 약에 취한 것처럼 자꾸 잠이 오고 피곤했다. 말 잘 나오지 않고 머리 몽롱했다. 래도 기뻤다. 통증이 없는 세상. 내게 이 세상은 그 둘로 갈라진 것 같았다. 왜 문학에 이런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영혼을 판다는 말.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그 무엇. 그게 내겐 '통증'이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지쳐 떨어졌다. 전날 온종일 통증과 맞서느라 아니 통증을 견디느라 몸과 마음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통증과 싸우지 말라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그럴 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건 당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싸우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상대가 안 되는데. 바위덩이 대 계란 한 알의 싸움인데. 토요일 저녁 무렵 아이가 왔을 때 마음이 약해졌다. 시누이도 같이 왔는데 시누이 앞이란 것도 잊고 자꾸 눈물이 났다. 그날 퇴원을 앞둔 의사가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수면제의 힘을 빌렸대도 그날 밤을 통째로 잠들기는 힘들었것이다. 환자를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역시 의사의 한 마디다.


"프라우 오, 다시 집으로 퇴원하시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다음 주에 완화병동 Palliativ Station에 자리가 나는 즉시 그쪽으로 옮겨드리도록 할 테니 아무 염려 마시고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금요일과 토요일은 무섭게 지나갔고 일요일은 평온이 찾아왔다. 입춘이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새해 첫날. 새해 맞기가 왜 이리 힘든가. 아무 일도 안 일어면 좋겠지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사람 일이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불안도 좋지 않다. 하지만 내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 것 같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언젠가 끝이 온다고 해도 괜찮을 매일을, 매 시간을, 매 순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계속 생각해 보겠다. 하루도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이해를 돕기 위해  등(척추) 수술에 대해서도 좀 더 정리 놓다.


1) 2023.10 첫 수술

척추에 붙은 종양을 떼어냈다. 뼈전이 때문에 종양이 자라 신경을 눌러 통증이 컸던 것이었다.

2) 2023.12 두 번째 수술

수술한 지 7주 만에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수액이 흘러나와 신경을 눌렀다. 수술 후 9주 만에 재수술을 다. 수술 직전 엉덩이와 허벅지 쪽 마비도 조금 진행되었다.

3) 2024.1 세 번째 수술

4주 만에 다시 통증이 시작. 주사 바늘로 수액을 60ml 빼내는 시술을 했으나 그날 밤 다시 통증 시작. 5주 만에 3차 수술. 복하니 다시 종양이 자라 있었다고 함. 의사는 종양을 떼냈으니 통증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수술 후 첫 통증은 이틀 만에 다시 찾아왔다.


수술 후 피주머니에 연결된 관이 너무 꽉 끼어 피가 안 나오다가 나흘 만에 발견하고 조절 후 250ml 피가 나오고 다음날 호스가 빠져버렸다. 수액 압박으로 추측되는 통증 다시 시작. 현재는 모르핀 진통제로 견디고 있.


(시라도 마비가 또 올까 두려워 신경외과 쪽 협진 문의하려고 한다. 신경외과 쪽에서 술 말고 외부에서 수액을 빼는 시술은 없는지 궁금하다. 수술을 진행한 외과 쪽에서는 감염의 우려 때문에 고려를 안 하는 것 같.)




PS. 그 와중에 갑자기 사진을 한 장 찍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은 났는지 모르겠다. 일단 입추날 오전에 햇볕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고, 오후에 아이도 올 거라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는 아이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안달을 했을 텐데, 이날만은 내 사진을 꼭 한 장 찍어두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오기 전에도 혼자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표정이 어색했다. 드디어 아이가 오고 아이가 내 옆에 서자 안심이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엄마 미소가 나왔다. 엄마의 셀카 완성은 아이의 존재구나. 입춘날 셀카 찍기 완성!


입춘, 봄이 온 날! 병원에서 오래된 가발을 꺼내 쓰고 셀카를 찍었다. 아이가 옆에 서 있으면 비록 셀카라도 안 어색하게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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