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외숙모님 2
"부활절 선물을 현관문 앞에 두고 왔답니다."
4월이 되도록 탄테 헬가를 만나지 못했다. 반가웠던 건 나뿐이었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자 이해가 되었다. 언니와 형부의 외숙모가 어떻게 내 외숙모가 될 수 있나. 그분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또 얼마나 놀라셨을까.
형부를 통해 언니의 동생이 뮌헨으로 이사 간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계셨다. 목소리가 똑같아서 금방 동생이라고 생각도 하셨단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오래 살아오신 분이 아닌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대뜸 집안으로 들이기가 꺼려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화를 끊기 전에 내가 오는지 아니면 본인이 우리 집으로 오시는지 한번 더 확인하셨던 거구나.
눈치도 없이 나는 당연히 내 쪽에서 찾아뵙겠다고 했고, 탄테 헬가는 주소만 듣고도 우리 집이 어딘지 훤하게 아셨다. 케이크를 사들고 탄테 헬가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탄테 헬가와 함께 한 시간은 유쾌했다. 우리는 언니와 형부 얘기, 언니의 시부모님과 작년에 세상을 떠난 형부의 형 얘기 등 함께 나눌 이야기가 제법 많았고, 나중에는 두 분의 사랑 이야기까지 들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프라우 보르도니의 얼굴에서도 경계심이 점점 옅어지는 걸 보고 궁금한 걸 또 여쭈어보았다. 앞으로 종종 찾아뵈어도 되겠냐는 내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탄테 헬가가 살짝 난색을 표하며 2월에 다시 휴가를 떠나신다고, 다녀오면 다시 연락하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셨다.
부활절 날 아침이었다. 독일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은 주말에 차례로 찾아뵙기로 했다. 파파는 일하러 가고 아이는 심심해했다. 둘이서 걸어서 시내까지 산책을 나갔다. 아이가 목이 마르고 화장실도 급하다 해서 스타벅스에 들렀다. 그때 폰이 울렸다. 뜻밖에도 탄테 헬가였다. 오랜만이었다.
"부활절이라 알리시아에게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서 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현관 앞에 두고 왔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삼 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우리를 잊은 줄 알았다. 지금 곧 갈 테니 다시 오시라 하니 낼모레 곧 부활절 휴가를 가신다고 준비로 바쁘시단다. 아이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미리 연락을 안 하셨다고.
부활절 휴가 때 알리시아가 탄테 헬가께 엽서를 썼다.
"헬가 외숙모님께
지난번 부활절 선물 정말 감사했어요. 저희 집에 꼭 한 번 놀러 오세요. 외숙모님을 초대하고 싶어요.
알리시아 올림."
탄테 헬가는 5월에 분홍 베고니아를 들고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우리 집에 오신 걸 기뻐하셨다. 현관 입구에 놓인 우리 결혼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셨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정돈된 집을 본 후에야 이상한 사람을 만난 게 아니란 걸 아시고 안심이 되셨던 게 아닐까. 사교 생활이 점점 줄어들고 병원 출입이 잦아지는 나이라 이웃인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소한 외출에도 즐거우셨는지도.
탄테 헬가를 다시 본 것은 얼마 전 지하철로 가던 길에서였다. 그 사이 허리 수술을 받으셨단다.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하셨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하시며 허리의 벨트를 보여주셨다. 의자에 앉아도 될 만큼 회복이 되면 다시 차 한 잔을 하자고 약속하고 우리는 길에서 헤어졌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연락하시라 하니 장보기와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도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