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부엌 그리고 자전거

완벽한 글쓰기

by 뮌헨의 마리


나이가 들수록 조심하는 것 중 하나가
완벽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하는 것 중 하나가 완벽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상 완벽해지기 쉬운 경향이 있어 더 그렇다. 완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결혼 후에 시작되었다. 시누이 바바라의 꼼꼼함을 목격한 이후였다. 완벽주의가 얼마나 피곤하고 그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괴롭힐 수 있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90킬로 정도 떨어진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에서 결혼하고 3년을 살 때 바바라가 이사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 구하기 힘들다는 뮌헨에서 어렵게 아파트를 구했고 남편은 싱글인 누나의 부엌을 직접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바바라가 사는 뮌헨과는 서울-부산보다 먼 거리인 470킬로. 차로도 5시간 가까이 걸렸다.


모르긴 해도 당시 남편이 구할 수 있는 가장 두꺼운 목재였을 것이다. 튼튼하고 무거운 그 목재로 바바라의 직사각형 부엌에 입구를 빼고 ㄷ자로 부엌 상판을 빼곡하게 두를 예정이었다. 일명 빌트인 부엌. 왼쪽에는 가스와 싱크대 사이에 식기 세척기와 세탁기. 가운데 창가 아랫부분은 비워 두고 오른쪽은 냄비 수납장과 소형 냉장고와 서랍장을 넣을 계획이었다.


첫 작업인 목재를 ㄷ자로 짜넣을 때부터 바바라의 꼼꼼함이 드러나 모서리 부분의 아귀를 맞출 때는 빛을 발했다. 0.01mm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번 수정을 위해서는 고정 조임쇄를 모두 풀고 다시 세팅해야 했다. 더 놀란 건 남편의 인내심이었다. 누나의 치밀함을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따라주었다. 단순 보조였던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기를 한 달. 금요일 밤에 차로 목재소에 주문해 자른 목재를 싣고 뮌헨까지 내려와 일요일 밤에 올라가기를 네 번인가 다섯 번 반복한 후에 부엌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나는 바바라의 욕실 천장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15년 전 페인트가 아직도 그대로다. 신기한 건 페인트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살인적인 월세에 비하면 거의 오르지 않은 착한 월세도, 바바라의 완벽주의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는 것.



최근 바바라의 완벽성이 또 한 번 발휘되는 분야는 알리시아의 자전거를 고르는 일에서였다. 뮌헨에 오자마자 알리시아의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말이 나오더니 최근 아이와 함께 자전거 가게를 들르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오라는 곳으로 나가서 아이와 고모만 자전거 가게로 보내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며 기다렸다. 이번 주 내내 나 역시 불평 없이 협조 중이다.


옛날에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조차 스트레스였는데 잘 견디는 것을 보니 내 인내심도 제법 쓸 만해졌나 보다. 무엇보다 바바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내일도 바바라를 만나기로 했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 하나 사는 데 시간이 좀 걸린 들 어떤가. 아이와 고모가 자전거를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내 글쓰기도 그렇다. 완벽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를 첫 번째 원칙으로 정했다. 잘 쓰는 것보다, 감동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진솔하게 쓰는 일이다. 매일매일 쓰기. 분량이 충분하지 않아도, 감동이 덜해도, 완결성이 떨어져도 일단 완성하는 연습. 성실하게 글감을 찾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 이런 노력이 내 글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도와 부침을 겁내지 않으려 한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질리듯 글도 그렇다고 믿기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때 최고의 작업을 할 수 있다. 일 속에 파묻힌 채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 정말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책상>(질 크레멘츠/위즈덤하우스) 중에서 피터 마티센 Peter Matthiessen의 말에 내가 공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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