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뮌헨의 야외 공원에는 운동을 하는 소규모 그룹들이 여기 저기 생겨난다. 4월에 시작해서 9월 말이나 10월 초까지 계속 되는 야외 운동은 비가 잦고 기온이 하강하는 10월부터 다음해 봄까지 쉰다고 한다. 내가 야외 피트니스 그룹을 찾은 건 집 앞에 붙은 벽보 덕분이었다. 마침 우리집에서 가까운 잔디 공원에서 열린다고 해서 반갑기도 했다. 가격도 착했다. 10회권이 70유로. 뮌헨의 악명 높은 월세를 고려하면 고마울 정도였다. 운동 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독일 사람들은 운동이든 취미든 어학이든 주1회가 기본이다. 우리처럼 치열하고 가열차게 하는 건 없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을 하거나, 매일 한두 시간씩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몇 킬로씩 달리는 건 운동이 아니라 일상처럼 보인다. 우리 시어머니는 젊을 때 테니스를 치셨다. 수영과 스키는 당연히 기본. 재혼 후 슈탄베르크의 호숫가에 정원이 있는 집을 고르신 것도 수영을 즐기시기 위해서였다. 그 집에서 양아버지와 지금까지 30년을 사시면서 매일 아침 6시에 호수로 수영을 다니신다. 물론 겨울은 빼고. 유월부터 구월까지. 스키는 70대 중반까지 타시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하셨다.
독일 사람들이라고 다 스키를 잘 타는 건 아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스키를 가는 사람들은 주로 알프스가 가까운 남쪽 사람들이다. 대부분 오스트리아나 북부 이태리인 티롤 지방이나 멀게는 스위스 등지로 간다. 새어머니는 해마다 스위스의 상트 모리츠로 스키 여행을 가셨는데 우리 역시 시어머니의 초대로 10년을 넘게 따라다녔다. 스키 여행은 우리가 독일로 오기 전 작년까지 계속되다가 독일로 온 올해부터 못 갔다. 시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새어머니도 70 중반을 넘기시면서 스키를 그만두셨기 때문이다.
남편의 삼남매들도 뮌헨에서 자랐기에 스키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엑티브한 남편은 우리 나이로 세 살 때 시어머니의 두 다리 사이에서 스키를 시작한 이후 미국에 살면서 스노보드를 섭렵한 첫 세대다. 본인 말을 빌리자면 스노보드계의 대부를 넘어 할아버지 세대란다. 20대 후반에 만난 나에게 야심차게 스노보드를 가르치려 들다가 내가 하도 넘어지는 바람에 엉덩이에 멍만 남기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스키 성적도 그저 그렇다. 그나마 성공한 건 수영 정도. 남편의 다사 다난한 포기의 역사는 20년 가까이 전방위로 계속되어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피트니스 그룹의 강사 이름은 클레멘스. 내 남편의 이름과 같았다. 첫날 그의 이름을 듣고 무척 신기했다. 남편을 만난 지 20년도 넘었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왔으니 말인데 남편의 누나 바바라가 은근 자기 이름에 불만이 많다는 건 독일에 와서 처음 알았다. 요지는 이렇다. 오빠 이름은 크리스토프. 남동생은 클레멘스. 다 괜찮다는 거다. 서류상 셋 다 더블 네임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바라 카롤리나였다. 그런데 하필 자기 할머니가 카롤리나보다 당신 마음에 더 든다며 바바라를 앞자리에 놓으셨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수긍이 갔다. 바바라와 카롤리나의 어감 차이는 멋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컸으니까. 그 이후 아이와 나는 심심하면 고모의 이름을 카롤리나로 바꿔부르며 놀려먹곤 한다.
클레멘스는 헬스 클럽의 피트니스 전문 강사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낯빛과 눈빛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반년 가까이 그의 야외 수업을 듣다 보니 인격도 꽤 젊잖은 데다 유머 코드까지 있는지 이를 악물고 힘든 동작을 쓰리 세트로 반복하던 회원들 사이에서 간간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런 때면 나처럼 재빨리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나 알면서도 참고 있던 사람들마저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되고 결과적으로 복근의 힘이 빠져 동작이 무너지곤 했다. 그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연령의 독일 아주머니 한 분은 그가 입만 열면 하도 웃어대는 바람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못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군기가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날이면 그의 입에서 '제군들!'이란 호명이 제법 근엄하게 흘러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 말의 효과는 단 한 사람만 빼고 먹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그에게 타투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은 것은 지난 주 수업이 끝난 후였다. 그는 양팔과 목 전체에 타투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리에는 없었다. 잘 생긴 얼굴과 군살 없는 몸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봐도 40대 이하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곳에서 타투는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여름철이면 젊거나 나이가 지긋하거나 중년 남성들과 여성들에게서도 다양한 신체 부위에 온갖 모양의 타투를 볼 수 있었다. 평소 타투에 관심이 없던 내가 그의 타투에서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손등이었다. 손등 타투는 처음이었다. 타투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이 내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손등을 찍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 이유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이 강사에게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의 손등에 흑심이 있을 뿐.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매번 몸풀기가 시작될 무렵 수업에 합류하던 내가 어제는 10분이나 일찍 갔다. 그는 일찌감치 와서 큰 비치 타올을 잔디 위에 펼쳐놓고 앉아있었다. 말없이 사진만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면서 타투를 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노라는 내 말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꼭 그걸 해 볼 필요는 없지요."
어쩐지 그의 말 속에서 어떤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타투를 했느냐고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그의 타투에 선입견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던 것 뿐이다. 그의 신체의 일부를 구경거리가 아닌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았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9월의 저녁은 일찍 찾아왔다. 예전 같으면 1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헉헉 대다가 마칠 때쯤이면 넓은 공원을 빽빽하게 둘러싼 나무들 사이로 제 몸을 다 숨기지 못한 석양이 황금빛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시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새 가을이 찾아 온 모양이었다. 마음은 여전한데 나무들 뒷편에 포복해 있던 어둠은 우리들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우리의 몸을 왈칵 덮치며 계절을 실감하게 했다. 이 정도면 열심히 한 것도 같았다. 이제는 휴식이 찾아와도 좋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