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글쓰기
"나는 믿어. 팔을 들어 올리면
결국 날게 된다는 걸."
만 50세가 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계기는 올해 독일로 오면서였다. 남편이 독일 사람이라는 이유도 컸다. 독일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질문이 많다는 것인데 어떨 땐 지나쳐서 피곤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럴 때다. 어제는 남편이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독일 중부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하루 전에 느긋하게 출발하면 좋으련만 새벽 세 시가 뭔가. 전날 밤 출발을 못한 이유는 아이에게 해리 포터를 읽어주기 위해서라나. 개학이 낼모레인데 밤 10시까지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었다.
새벽에 남편이 일어난 기척에 나도 잠이 깼다. 몇 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 해서 출출하지 않을까. 계란 몇 개를 반숙으로 삶았다. 그 새벽에 남편의 질문이 어어졌다. 오늘은 아이와 무엇을 할 계획이냐. 지금 쓰는 글은 친구들이 잘 읽고 있나. 다음 글은 어떤 내용을 쓸 생각이냐. 하나같이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묻는다. 그 새벽에. 독일에 오기 전에도 그랬다. 독일로 가면 무엇을 할 생각인지 지치지도 않고 물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살련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독일 배우자에겐 이심전심은 안 통한다. 조리 있는 말과 합당한 설명이 중요하다. 그때마다 나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겠노라 큰소리 탕탕 치던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 동경에서 남편과 2년간 같이 살았다. 기다려도 먼저 결혼하자는 말은 없고,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것 말고 다른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일하던 동경으로 날아갔다. 한쪽이 미적대면 다른 한쪽이라도 담판을 내야 하지 않는가. 2년 동안 동경에서 독일어 기초도 배우고 영어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그리고 독일에 가서 결혼을 했다. 끈기가 성공을 불러오는 사례를 몸소 보여준 셈이었다. 불행히도 글쓰기에서는 그런 노력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올해 독일로 오면서도 남편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글을 쓰겠다는 내 대답에 썩 공감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긴 같은 말을 한두 번 들었어야지. 이 여자에게 글쓰기는 방패냐 창이냐. 나라도 신뢰가 안 가게 생겼다. 그 세월이 장장 20년이라면. 처음 반년 간을 매일 글을 쓰는데도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기인지 수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편지를 쓰는 것인지. 너무 사적인 글은 글이라고 보기 힘들다. 차라리 블로그라면 모를까. 시댁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갑자기 글이라니. 책이라니. 지금까지 그런 일로 소동을 피운 사람이 양쪽 집안에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겠다.
내가 글을 쓰기로 한 건 그것 말고 달리 하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나는 50대가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때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젊을 때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크리스티안 노스럽. 미국의 여자 산부인과 의사. 의식이 몸을 만들고, 폐경기는 삶을 재조명하게 만들고, 심지어 삶의 진정한 지혜는 폐경기에 찾아온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책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30대와 40대에 연달아 읽고 생각했다. 여자 나이 50도 희망이 있구나! 무슨 생각으로 10년도 전에 아직 오지도 않은 50대와 폐경기를 생각했을까.
그럼에도 그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50이 되는 순간 딱 한 가지를 골라야 할 때가 오자 책 읽고 글쓰기가 내 체질에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 쓰는 게 귀찮고 게을러진 탓도 한몫했다. 언니가 걷는 요가의 길, 상해에서 한 때 꿈꾸던 서예도 글쓰기에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나의 게으름. 더 결정적인 건 서울에서 만 3년간 세계문학을 읽고 배우던 시간이었다. 고전에 등을 돌리고 살았던 지난 시절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나이 마흔 중반에 만난 세계문학은 친숙함 자체였다. 작품도 작가도 이해가 되었다. 문학을 남은 반생의 반려자로 삼아 의지해도 되겠다 싶었다. 40대와 50대를 건너가는 친구들과 함께 세계문학 읽기와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려니 내가 먼저 읽고 쓸 수밖에.
"나는 믿어. 팔을 들어 올리면 결국 날게 된다는 걸."
이렇게 멋진 말을 한 사람은 앤 페트리 Ann Petry라는 작가였다. 할머니가 된 작가는 이런 말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어디에 앉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그냥 어디든 앉아서 쓰는 거야."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 William Styron은 말했다.
"글쓰기란 원래 즐거운 지옥."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
내일은 친구가 수술을 받는 날이다. 나는 믿는다. 정직하게 50년을 살아온 내 친구가,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시어머니를 돌보고,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직장일과 가정일을 병행하며 제대로 된 휴식 한 번 없이 살아온 내 친구가, 아파트를 사고 대출금을 갚고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죽도록 애쓰며 살아온 내 친구가, 반칙과 변칙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해 자기 몸으로 부딪혀 온 지난 세월처럼 담담하고 당당하게 그 시간을 맞이하고 이겨내고 돌아올 것을 믿는다.
다시 돌아온 내 친구가 가슴속에 오래 묵혀 두고 숨겨온 문학에 대한 열망과 순연한 감성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돌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누구나 혼자다. 가족도 친구도 언젠가는 놓아야 할 때가 오겠지. 그 시간이 조금 빨라도 괜찮다는 거다. 혼자라는 것, 외롭다는 것, 자나 깨나 고독이 늘 곁에 머무는 것. 그것이 중년의 시간 아닌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책과 글이 친구가 된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 그럴 때 인생이 조금 견디기 쉬워질지 누가 아는가.
오스카네 발코니에서 다 말라가던 화초들. 우리 집 발코니에서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시들어가던 화분 속의 꽃. 얼마 전에는 인터넷을 통해 백 년만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고구마 꽃을 본 적도 있다. 매일매일 물을 주자 파릇파릇 되살아나던 오스카네 패랭이꽃, 딸기꽃. 죽은 줄로만 알고 내버려두었던 화분에서 빨갛게 피어나던 다알리아 한 송이. 우리 여자들이 그렇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족을 돌보듯, 아이들과 조카들을 돌보듯 자기 자신을 돌본다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넘어도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보기도 좋고 향기도 좋은 꽃과 함께. 꽃말이 "행운"이라는 고구마 꽃처럼, 그렇게 행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