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기행 8
뮌헨이 벌써 내게 집이 되었단 말인가
흐뭇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시간과 안전을 고려해서 카프카 성과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카프카 묘지를 일정에서 제외하자 남은 건 카프카 동상과 바츨라프 광장 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카를교를 건너 시내를 향해 걸었다. 천문 시계탑을 왼쪽으로 끼고 앞만 보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꺽으면 카프카 동상이었다. 멀지 않은 거리라서 지도 하나만 들고도 찾기가 쉬웠다.
오후가 되니 날씨가 더욱 뜨거워졌다. 동상 앞에 오래 서 있기가 힘들었다. 카프카의 동상 앞은 작은 골목이 다섯 개나 만나는 오거리 공터.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꽤 운치 있는 로터리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아까운 그늘 아래 다리를 쉴 만한 벤치 하나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혀가며 벤치에 앉아 카프카를 감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월의 선물로는 최고 아닌가.
바츨라프 광장의 넓은 길을 걸어 내려와 카페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공사중인 프라하 국립 박물관 앞에서 왼쪽으로 꺽으면 프라하 중앙역. 뙤약빛 아래 내가 가야 할 프라하 버스 터미널까지 걷고 또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힘들어도 그날만은 혼자 택시를 타고 싶지 않았다. 한번의 불운이 또다른 불운을 몰고 올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였다. 중간쯤에서 남은 동전도 써버릴 겸 스타벅스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가슴 속이 시원했다. 찜찜함은 없었다.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는 거지. 그렇게 여행지에서 배워 가며 여물어 가는 거지. 나이 많다고 별 수 있나. 하나씩 하나씩 익혀 나가는 수밖에. 남은 길은 훨씬 나았다. 나는 무사히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은 예상보다 길었다. 올 때와는 달랐다. 운전사 맘대로 세 번씩이나 휴식을 했고, 쉬는 시간도 제멋대로였다. 중간 지점인 레겐스부르크 시내를 관통하며 승객을 내리고 태우느라 밤 10시였던 도착 예정 시간이 1시간이나 늦춰졌다. 놀라운 건 어느 누구도 대놓고 불평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는 것.
뮌헨 시내로 들어오자 가슴이 뭉클했다.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 아, 뮌헨이 벌써 내게 집이 되었나. 흐뭇했다가 금세 씁쓸해졌다. 한국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 반년밖에 안 된 뮌헨이 벌써 집처럼 여겨지면 어쩌나. 처음이라서? 황당한 일을 겪은 뒤라서? 글쎄,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나는 다음 여행을 꿈꾼다. 카프카 다음은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