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기행 1
나에게는 해묵은 숙제가 있다. 헤세 기행 완성하기. 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독일어 책 읽기 도전은 작년 유월 카프카와 헤세 기행이 계기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해묵은 숙제가 있다. 헤세 기행 완성하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글로 남기지 않는 여행은 여행의 완성이 아니라는 강박 비슷한 게 생겼다. 언제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난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이 컸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올해 시작한 독일어 문학 읽기의 시작은 까뮈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독일어 책 도전은 작년 유월 카프카와 헤세 기행이 계기였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더라. 둘 다 입문용으로 적합한 작가는 아니라고. 물론 그 말이 맞았다. 그런데 솔직히 쉬운 문학책이 어디 있나. 어린이용 발췌본이 아닌 한 말이다. 그것이 독일어로 고전 읽기라는 새로운 세계에 한 발을 내디딘 지금의 내 결론이다. 딱 한 가지 나만의 분류가 있기는 하다. 분량 말이다. 긴 것과 짧은 것. 당연히 중단편이 내가 선호하는 책들이다. 장편은 언제쯤? 2~3년 안에 도전해 볼 작정이다.
아, 그러고 보니 또 기억난다. 작년 이맘때쯤 겁도 없이 손에 들었다가 내 양손과 무릎과 의지를 단번에 꺾어 놓은 책들. 작년 3월 초에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독일 작가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였다. 한국 번역본으로도 재미있게 읽었고, 분량도 맞춤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문고본이라고 만만히 봤다가 큰 코 다친 케이스. 내게 호프만은 독일어 문장이 그렇게나 길 수 있다는 걸 뼈에 새기도록 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문장을 따라가다가 앞의 뜻은 까맣게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갱년기 탓은 아니고.
그리고 또 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플로베르의 애정 하는 작품 <마담 보바리>. 호프만을 글자만 따라 읽은 후 3월 말에 중고책으로 산 책. 단순히 책이 너무 멋있어서 무조건 시도해봤다. 페이지만 넘겨봤다는 뜻이다. 총 330페이지 중 30페이지 남짓 따라 읽다가 덮었다. 그러니 내가 읽을 첫 장편은 마담 보바리여야 하겠지?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있다. 마담 보바리 때문에 새어머니께 핀잔을 들었기 때문. 그 봄에 흘린 눈물에는 유난히 심했던 독일의 꽃가루와 함께 저간의 사정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봄이다. 할 일이 많다는 건 반갑고도 고마운 일. 1년 정도 죽은 듯이, 없는 듯이 지냈더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올해엔 일하는 시간도 차츰 늘려가고, 밀린 헤세 여행기도 이 봄에 마무리해야겠다. 독일어에 대한 무한 애정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나를 기다리는 작가가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살아 있음은 경이로운 축복이다.
또 하나. 나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서도 고백해야겠다. 양아버지가 소장하고 계시는 엄청난 고전 작품들에 대해서. 시어머니의 세 자녀와 양아버지의 두 딸과 그들의 배우자를 포함해도 언젠가 미래에 그 책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터이므로. 남편의 형님에게 30% 정도의 가능성이 점쳐지긴 하지만.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소장하시던 책들도 꽤 된다. 독일에 사는 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되겠다.
어제는 오랜만에 마리엔 플라츠의 후겐두벨 서점에 들렀더니 아래 사진처럼 매혹적인 표지의 고전 작품들이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바람이 잔뜩 들고 말았다. 내친김에 봄꽃놀이 가는 기분으로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샀다. 린다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사고 싶던 책이었다. 첫 월급을 타면 기념으로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갈매기>를 포함 나머지 세 권을 사겠노라 결심한다. 요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새 책으로!!! 그나저나 올 유월엔 어디로 문학 기행을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