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기행 3
슈투트가르트에서 본 몇 가지 풍경을 가슴에 담은 채 30분 후 내 기차는 헤세를 만나러 슈투트가르트를 떠났다.
오후 4시 뮌헨. 출발부터 늦었다. 전광판에 표시된 기차가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타야 할 기차였다. 해가 길어진 유월임을 감안하더라도 출발 시간으로 이른 시각은 아니었다. 독일의 기차는 연착을 밥 먹듯 한다. 연착도 엄연한 일상이다.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플랫폼에서 출발이 30분이나 지연된다는 전광판을 보던 사람들이 말없이 옆 플랫폼 기차에 올랐다. 저 기차도 슈투트가르트로 가나? 승무원들에게 물으니 맞단다. 결론은? 나도 따라 올랐다.
계획보다 30분 늦게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호텔에 문자를 보냈다. 7시 전까지 체크인 요망이라고 기재된 호텔이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이라 그렇단다. 거주하는 곳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할로! 저는 8시쯤 체크인 가능한데요.' '오케이! 도착 후 전화 주세요.' 이것이 전날 주고받은 이메일이었다. 기차 안에서 다시 문자를 보내자 곧장 답이 왔다. '출발이 지연되어 8시 체크인 불가.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해 봐야 도착 시간 알 수 있음'. '괜찮으니 칼브 도착 시 전화 줄 것'.
슈투트가르트 역에는 30분간 머물렀다. 연결 편 기차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기차를 내려 역사로 걸어갈 때였다. 이웃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안는 한 젊은 외국인 부부를 보았다. 아기는 그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마른 체격으로 보아 동남아 사람들 같았다. 남편이 아내를 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남자의 입맞춤에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절박함. 남자는 작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애별리고.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하는 고통.
기차는 떠나고 없었다. 기차 하나 놓친 게 뭐가 대수랴. 사람은 대체 불가지만 기차는 달라도 같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느긋하게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시간이 남아 역사를 걸었다. 내 앞을 걸어가던 이십 대 무슬림계 청년도 보았다. 축구 선수처럼 돌려 깎은 머리. 찰싹 달라붙은 머리의 윤기. 우람한 체격. 독일 분데스리가 티셔츠. 짙은 청바지. 투박한 신발. 경쾌한 걸음걸이까지. 내 눈길을 끈 것은 그가 들고 있던 꽃다발. 다발 속의 꽃은 보이지 않았다. 샛노란 포장지가 꽃들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저 속을 모르나. 젊음이란 그런 것. 촌스럽기 그지없는 포장지마저 찬란하게 만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본 몇 가지 풍경을 가슴에 담은 채 30분 후 내 기차는 헤세를 만나러 슈투트가르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