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이탈리에서 갈매기를 보았다

Cafe Eataly

by 뮌헨의 마리


아침 8시 카페 이탈리로 출근한다



아침 8시 카페 이탈리 Eataly로 출근한다. 마리엔 광장에서 대각선으로 빅투알리엔 시장 끝. 천정이 높고 엑스포 부스처럼 거대한 토털 이태리 마켓이다. 한 마디로 이태리에 관한 모든 것을 파는 곳. 식재료를 파는 미니 슈퍼. 파스타 요리와 이태리 여행서를 파는 책방. 레스토랑과 바와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지하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와인숍도 있다.
바리스타들은 매일 바뀌었다. 그들 모두를 아는 사람은 나뿐 . 결석 없이 석 달쯤 지나면 그렇게 된다. 누가 섬세하고 실크 같은 카푸치노를 뽑아내고, 누가 거품만 잔뜩 올린 성의 없는 카푸치노를 만들어 주는 지도.


그날은 두 명의 중년 바리스타 대신 내 취향인 체구 듬직한 청년 바리스타가 등장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무엇보다 등판과 허리둘레가 막상막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보았던 바오밥 나무 같았다. 당연히 근육질은 아니다. 일명 드럼통 체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넉넉한 체격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인가. 남편도 점점 드럼통이 되어가는 마당에.
매일 아침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주문한다. 서너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니 카푸치노 한 잔으로는 약하기도 하고 크루아상도 맛있기에. 주문을 받던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 몸도 키도 앳된 이태리 여자다. 4유로 60센트라서 5유로를 내고 받은 20센트 동전 두 개 중 하나를 짤랑 소리가 나게 팁 유리잔에 던져 넣었다.


팁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석 달째부터다. 아무리 셀프라지만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 사이에 잔돈을 싹 챙겨 돌아서기가 쉽지 않다. 중년 바리스타 중 한 명이 나에게 붙이는 호칭도 팁을 부른다. 첫 달은 정중하게 마담격인 '시뇨라'. 둘째 달엔 친근하게 아가씨로 '시뇨리나'. 최근에는 뷰티로 격상한 '벨라'로. 이 정도면 최상의 립서비스다.
'카푸치노, 벨라! (자, 여기 당신의 카푸치노가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분.)' 따라붙는 호칭은 양념처럼 거들뿐 임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나는 미소로 보답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이태리 남자들. 이 정도면 사랑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아침의 바리스타는 바쁘다. 매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태리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몰려오는 시간.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하라고? 독일의 아침이 황제의 밥상이라면 이태리는 모닝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빵 하나가 밥이다. 주문한 순서대로 착착 커피를 내리는 듬직한 나의 바리스타. 몸놀림이 예상보다 빠른 것도 마음에 든다. 드디어 내 차례.
먼저 에스프레소를 뽑고 밀크 통을 탁탁 내리친 후 멋진 하트 무늬 하나가 탄생하고 있었다. 그 순간 계산을 보던 초짜 아가씨가 바리스타의 뒤쪽을 지나다 돌아서는 바리스타와 부딪힌다. 내 카푸치노! 잔이 출렁거린다. 커피가 쏟아진다. 다행히 발씩 뒤로 물러난 덕분에 누구도 뜨거운 커피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내가 주목한 건 그 순간의 태도. 절반쯤 남은 커피잔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으며 여자에게 말한다. '니엔떼, 니엔떼! (괜찮아, 괜찮아!)' 그 어조에 짜증은 묻어나지 않았다. 얼굴엔 미소까지. 뜨거운 커피에 데였는지 한 을 공중에 흔든 뒤 다시 기계 쪽으로 돌아선다. 여자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키친타월을 둘둘 말아 커피 머신의 얼룩과 바닥을 닦는다. 저게 웃을 일? 우리 같으면 혼나도 한참 혼날 일이다. 저런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영국에서 어학 연수를 할 때였다. 스페인, 남미 친구들과 파리에 갔다. 에펠탑 근처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울 때였다. 바게트를 주문한 스페인 친구에게 판매원이 무례한 말을 한 모양이었다. 얼굴이 빨개져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스페인 친구 엘리가 보여준 제스처를 기억한다. 두 손바닥을 내밀며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 끝. 그게 다야? 억울하지도 않고? 내게는 질문의 시작이었다.


카페 이탈리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건 4월 초였다. 아침마다 출근하던 스타벅스를 두서너 달 만에 졸업한 건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 작심하고 두어 편을 퇴고해서 보냈다가 혹평을 면치 못했다. 충천했던 사기는 바닥을 쳤지만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6월 J언니가 브런치 앱을 링크해서 보냈다. 제목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다." 프라하에 홀로 문학기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절치부심 끝에 칠월이 오자마자 브런치에 가입했다.
카페 이탈리의 글쓰기 밥상에서 칠월 한 달간 스물 몇 편의 글을 올렸다. 어떤 날엔 카페에서 벨라 차오 Bella Ciao를 들었다. 노래가 카페와 잘 어울렸다. 올려다본 칠월의 하늘이 파랬다. 한국에서 유월에 갈매기를 본 기억이 났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 카페 이탈리에 앉아 그날의 갈매기를 보았다. 다시 살아나 힘차게 창공을 나는 갈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