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정원에 바람이 불었다
후겐두벨 서점 북카페
뮌헨에서 내가 자주 가는 곳은
후겐두벨 서점 북카페다.
뮌헨에서 내가 자주 찾아가는 곳은 후겐두벨 북카페다. 후겐두벨 서점은 뮌헨 안에 지점이 몇 군데나 있지만 나는 시내에 있는 두 곳을 즐겨 찾았다. 아이 학교와 집에서도 멀지 않기 때문이다. 뮌헨 투어의 시작과 끝인 중앙역 근처 카를 광장과 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에 하나씩 있는 후겐두벨. 그중에서 내가 좋아한 곳은 한여름 야외 정원이 있는 카를 광장 후겐두벨 북카페였다.
작년 여름은 독일로 오는 것을 두고 고민하던 때였다. 뒤늦게 자기 일을 시작해보고 싶어 하던 남편은 회사와 문제가 생겨 곤혹을 치렀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시작한 일도 생각만큼 술술 풀리지 않아 이중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마음을 정해야 할 때였다.
다시 독일로 간다. 남편을 생각하거나 아이 공부를 생각하거나 하다 못해 독일의 시부모님과 아이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마지막 기회라는 건 환히 알겠는데 내가 문제였다. 한국을 떠난 독일에서의 삶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지난여름에도 뮌헨에 와 있던 나는 남편과 아이와 후겐두벨에 왔었다. 20년 가까이 뮌헨의 시누이 집을 오가면서도 여기에 야외 정원이 있다는 건 왜 몰랐을까. 놀랍고 기뻤다. 그때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 생활을 접고 쫓기듯 독일로 떠나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나이 오십에 실패라니. 그것이 실패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음을 추스른 것은 반년 동안 글쓰기를 한 후였다.
1년 전 이곳 야외 정원에 앉아 결심했다. 뮌헨으로 와야지. 여기서 글을 시작해야지.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정원이었다. 거기서라면 어떻게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물들에 둘러싸여 밖에서는 있는 줄도 모르는 비밀의 정원.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그날처럼 한창이었다.
그때처럼 바람도 불어왔다. 눈을 감아도 떠도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용기를 주었다. 살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바라나. 오랜 세월 용케 험한 일 피해 왔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어쩌겠는가.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한쪽으로 몸을 돌려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릴 밖에.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저 바람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연처럼.
힘들 때 찾아와 마음을 내려놓던 장소가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었다. 뮌헨에 와서는 자주 찾지 않았다. 추웠던 3월 어느 날 홀로 들러 실내 카페에서 야외 정원을 바라보며 뜨거운 민트 차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던 시간이었다. 남편은 쉬는 날이 없었고, 내 글쓰기는 지지부진했다. 쓰면 뭐 하나. 안 쓰면 또 어쩌고.
시크릿을 믿던 날이 있었다. 시크릿 베이비를 만들겠다고 마흔 넘어 매달리던 때도 있었으니까. 운 좋게 성공도 했다. 세계문학에 발을 들인 것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믿는 대로,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인생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게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도. 남은 시간의 곳간을 내 글로 차곡차곡 채워보고 싶어 졌다.
성실한 삶. 한 발 한 발 내딛는 삶. 어린 시절 납작한 돌멩이를 엄지와 검지로 튕겨가며 땅바닥에서 제 영토를 넓혀가던 놀이처럼 착실하게 글을 쓰는 삶. 직접 읽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못하는 문학책처럼 게으름 부리지 않고, 벼락치기로 숙제하듯 급하게 해치우지 않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쓰는 글쓰기를.
그것만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오십 년을 로또 바라듯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 내려주기만 바라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는 삶의 태도를 글쓰기로 바꿔보고 싶은 것이다. 오십이란 나이도, 나의 현재에도 불만이 없는 이유다.
오늘은 칠월 칠석. 이날이 되면 뜨거움이 가라앉을 줄 알고 있었다. 오작교 그늘에 가려, 까치 까마귀들 눈물 콧물에 힘 입어, 한여름 열기가 물러날 때도 되지 않았나. 이 날엔 나도 의심 없이 한국에 가 있을 줄 알았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가서 겸손함을 배울 것인가.
사월에 쓴 시를 여기에 옮긴다.
사월
목련도 개나리도 벚꽃마저 다 진 사월이었네
초원을 달리다 문자를 받았네 당첨입니다 그 무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었지 꼭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그 숲으로 못 돌아갈 거예요
다시 문자를 받았네 오늘이 그날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래 바로 그날이었어 샤갈의 밤하늘을 푸른 꽃다발을
안고 날았지 검푸른 숲의 문 닫히기 전에 뛰고 또 뛰었지
그날 숲으로 돌아간 심장 하나 여태 돌아오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