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 때 필요한 것들

독일 생활의 필수품 세 가지

by 뮌헨의 마리


독일은 비가 자주 온다. 우산을 챙길까. 방수복이 나을까. 독일에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미술 특강을 갈 때 명시된 개인 준비물은 작업용 앞치마와 도시락 그리고 물병이었다. 학교에서 견학이나 야외 활동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활동하기 편한 옷이나 신발, 충분한 도시락, 그리고 물병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아이에게 비옷 대신 방수 쟈켓을 입히고 간 첫날 지하철을 타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수 쟈켓을 입고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품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평소에도 우산 없이 방수 쟈켓에 달린 모자만 쓰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우엔 비가 오는 날 비옷, 장화, 우산이 세트인 경우도 많이 보았다. 다만 장화는 신고 벗기 번거롭고 종일 비가 내리는 경우도 드물어 우리 집은 생략하는 쪽이다.


내가 보기에 독일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은 방수 쟈켓, 자전거 그리고 커피 같다. 얼핏 생각하면 커피 대신 맥주일 것 같은데, 맥주는 와인과 지분을 거의 반반으로 나누는 반면 커피는 대체 불가 지존이기에. 연세가 70-90대이신 양쪽 시부모님만 봐도 그렇다. 부모님들 댁에는 각각 소형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데 새어머니의 경우엔 하루에 블랙커피를 2-3회 드신다.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진 않을까? 한 번 여쭤 본 적이 있는데 딱히 커피 탓이라고 생각진 않으셨다. 친아버지 역시 살아계실 때 늘 블랙커피를 즐기셨다. 친어머니와 양아버지의 경우는 매일 아침은 홍차, 오전에는 블랙커피, 오후엔 에스프레소 순이다.


뮌헨에서 나의 새로운 이웃이 된 형부의 외숙모님 탄테 헬가만 봐도 패턴이 비슷한 것 같. 오후에 외숙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블랙커피를 드셨는데 부엌에 아주 작은 커피 머신이 놓여있었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는 남편과 내가 집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미리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데워서 드렸다. 오후에도 커피를 드시니 아침이나 오전에도 당연히 드시겠지. 더구나 에스프레소의 본가인 이태리 분과 사셨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아이러니는 이태리 형부는 한국에서 무엇을 마실까. 정답은 맥심의 믹스 커피. 우리 남편도 한 때는 그것만 마셨다. 그게 그렇게 맛있다나.



시누이 바바라는 소형 모카 포터에 직접 에스프레소를 끓여 마신다. 회사에도 탕비실에 커피 머신이 있어 하루에 3~4잔은 마시는 것 같다. 40세 이전 내가 본 바바라의 3대 중독은 커피, 와이트 와인 그리고 담배였다. 50대 중반인 그녀는 마흔이 되던 해에 담배를 끊었는데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 후 그녀의 담배 자리는 유기농이 차지했다. 당시 바바라의 금연 선언은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던 양쪽 부모님 네 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바라의 화이트 와인과 커피 사랑은 여전하지만 마시는 양과 횟수는 그때에 비해 훨씬 줄었다. 대신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영국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빈도가 늘어난 것은 기억할 만한 변화다.


독일에서 의외의 필수품은 자전거다. 집집마다 가족 수만큼 있고 지붕 위에 자전거를 두 대나 세 대 나란히 이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는 일도 흔하다. 특히 봄부터 여름까지는 어디서나 자전거의 물결과 만날 수 있다. 다들 어찌나 잘 타는지 대로에서 자동차들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손과 팔을 좌우로 들어 방향을 표시하며 달리는 자전거를 볼 때면 가히 예술의 경지다. 심지어 양팔을 내리고 타거나 팔짱을 낀 채 타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서울에서 차를 운전하던 나였지만 뮌헨에서 운전하라면 제일 걱정되는 게 트람과 자전거다. 우리한테는 트람이나 자전거와 함께 도로를 사용한다는 감각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깜빡하기 쉬울 것 같기에. 운전자들만 조심할 일이 아니다. 자전거 길은 보통 보행자길 바로 옆에 있기에 늘 앞뒤와 좌우를 살피고 걷는 게 중요하다.


독일 생활 20년 차가 많은 문학모임 독일 고수들에게 3대 필수품이 무엇일까 물어보았다. 여름에는 선글라스, 선크림, 수영복, 돗자리. 겨울에는 보온 물주머니, 아이들 썰매라고 답한 회원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접이 우산만은 가방에 꼭 챙긴다는 회원도 있었고, 다른 회원은 와이파이가 된다는 전제 하에 아이패드, 책상, (보온) 물병. 미취학 아이들의 경우엔 자전거, 방수 옷, 물병이라고 답했다. 나 역시 접이 우산, 물병, 책과 노트북을 꼭 챙기는 편인데 요즘은 무겁기도 하고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도 많아서 종종 우산과 물병은 빼놓고 다니기도 한다. 물은 나가서 하나 사고 노트북 대신 데이터가 충분한 폰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얼마 전 방문했던 노아 집에서는 독일 사람인 노아 아빠만 마신다는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마셔봤는데 맛이 어느 카페 커피보다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구입하고 싶은 건 Y의 집에서 보았던 간편한 전기식 모카 포터. 가장 좋아하는 건 M의 집에서 오설록 녹차를 우려내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온 시원한 8월의 녹차 맛!


노아 아빠가 직접 구매한다는 크레마 가득한 커피 맛은 일품이었다
노아네 커피 머신(좌)과 Y의 전기식 모카 포터(우)

p.s.


이태리 형부에 따르면 에스프레소 원조답게 이태리 커피가 맛있는 이유.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절대 끄는 법이 없어서 그렇단다. 믿거나 말거나. 언니가 형부와 10년을 이태리 북부 볼자노에서 살 때 자주 들러서 내 눈으로 확인한 결과 이태리에는 아침이 없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과 달콤한 크라상 하나면 끝. 유럽에서 아침이 가장 푸짐하고 괜찮은 나라는 단연 독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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