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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Sep 13. 2018

로젠 가르텐의 장미 산책

뮌헨의 산책


9월이 장미의 시즌일 리가 있나. 그런데 아니라면 저 꽃들의 향연은 대체 뭐란 말인가.



9월이 장미의 시즌일 리가 있나. 그러니 내가 무방비 상태로 장미정원인 로젠가르텐 Rosengarten으로 따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세상도 아니라면서 눈부신 꽃들의 향연은 대체 뭐란 말인가. 대부분의 장미들은 빛나는 시절을 마감하는 중이었다. 줄기나 잎은 말할 것도 없고 꽃잎들도 윤기를 잃고 가시들마저 예리함을 덜었다. 속절없이 한 잎 한 잎 떨어져 가는 꽃송이들. 화창했던 젊은 날대한 미련을 어쩌지 못하고 꽃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용납 못하여 통째로 바래져가는 꽃들 더러 다.


그런데 보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꽃피워내는 저 뒷북. 결코 과하지도 추하지도 않은 열정. 한창일 때처럼 화려할 리야 있겠나. 햇살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바람이 다른데. 그럼에도 변명도 없이 뒤늦게 주어진 과제를 묵묵히 수행 정진하는 모습. 꽃 피우는 것  다른 일을 알지 못하여 피어나는 어여쁜 꽃 중생들. 그렇다.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춥다 덥다 좋다 나쁘다 비교도 없이 잣대도 없이.

 제 시즌에 꽃답게 다녀간 청춘들. 시월까지는 어림도 없어 피우지도 못하고 잘려나갈 막차탄 인생들. 저들에겐 그런 계산마저 필요가 없는 법. 그러니 저토록 찬란할 밖에. 한 번뿐인 인생 그게 언제든 모든 것을 걸어 보았겠지. 한 번 꽃 피워 보았겠지.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좀 늦었어도 때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어깨 힘도 목에 힘이 빠져도 고왔다. 그래서 어쩌면 더 눈물겨운 중년의 꽃잔치.  



알리시아의 반 친구이자 동네 친구인 율리아나 할머니는 헝가리 분이다. 뮌헨에 사신 지 40년째란다. 율리아나 엄마가 만 1살에 뮌헨으로 왔다니 그만하면 뮌헨 사람이라 해도 되겠다. 엄마가 일을 하고 있 율리아나와 남동생 제이슨을 돌보는 건 주로 할머니 몫이다. 여기나 저기나 할머니들이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나.


오늘은 할머니께서 학교가 마치자 아이들을 데리고 로가르텐으로 산책을 가자 하신다. 아직까지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장미정원을 찬찬히 구경 내게도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할머니의 독일어는 악센트가 강했다. 그래도 알아듣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막 독일에 온 동양 여자가 이 어려운 어를 어떻게 배우고 익힐지 걱정이신 모양이다. 할머니는 옛날에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셨단다.  


장미정원에는 출입구가 다섯 군데나 있다고 했다. 맑은 시냇물도 있고 물가엔 어디나 철제 의자가 놓여 있었다. 맨발로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물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거나 했다. 저런 피서법도 있었구나. 드넓은 잔디밭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10분만 장미들 보고 돌아올게!"


그 10분에 할머니의 즐거움과 내 기쁨이 10분씩 더해져 30분이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별 일 없이 잘 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머니의 작은 아파트에도 들렀다. 5층짜리 아파트의 3층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셔도 아직 괜찮으신 모양이었다. 한눈에 봐도 다정한 할머니 집이었다. 현관부터 거실까지 하나뿐인 딸의 어릴 적 사진과 어린 손주들의 장난감들.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의 손길이 더 분주해졌다.


물과 과일과 저녁 무렵인 그 시간에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검은 빵을 썰어 치즈를 바르고 유명하다는 헝가리산 살라미를 큼직하게 썰어왔다. 저녁으로 삼아도 될 만큼 넉넉하고 푸짐했다. 정작 아이들은 할머니가 내놓으신 초콜릿에 더 바삐 손이 오갔지만. 집을 나올 때는 현관 앞에 얌전히 놓인 쓰레기봉투와 빈 와인병을 챙겨 들고 내려왔다.


우리 집 앞에 도착하자 내일 학교에서 다시 만날 텐데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두 아이의 손을 할머니와 내가 하나씩 잡고 헤어졌다. 우리는 금요일 오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이번에는 이자르 강변을 따라 조금 더 멀리 가보자 하셨다. 뮌헨에 와서 부쩍 할머니 친구들이 많아진 기분이다. 율리아나 할머니에게 볼수록 정이 드니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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