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왜 글을 매일 쓰나? 어떻게 매일 쓰나?
9월 한글학교에서 노아맘을 만나 두 번째 커피를 마실 때였다. 노아맘이 물었다. 왜 글을 매일 써야 하냐고. 좋은 질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매일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으니까. 왜 매일 쓰나? 그래야 잘 쓰게 되니까. 당연하지 않나.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노력 없이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뭐든 자꾸 연습해야 는다. 이런 것과 비슷하다. 노아맘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쓸고 닦아 먼지 하나 없는 그녀의 집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얼마나 깨끗하고 깔끔한지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그녀의 주방. 그 정도 경지면 일상도 예술이 되겠다.
내가 글을 쓰는 것도 그와 같다. 며칠만 방치해도 노아맘의 식탁 위에, 마루 위에, 야외 테이블 위에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나 역시 하루나 이틀만 쉬어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문장이 매끄럽게 안 풀릴까 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매일의 글쓰기는 일명 기름 칠하기라고 불러도 되겠다. 살면서 가장 반가웠던 재회가 레아마리맘이었다면 가장 놀라웠던 건 노아맘이었는데, 이렇게 불쑥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레아마리맘은 아이가 둘인데도 새로운 일까지 도전한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고, 요즘 노아맘은 매일 독일어를 배우느라 녹초가 되었다. 두 사람 다 힘내시길.
주말에 서울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아이들이 서로 보고 싶어 해서 엄마들은 잠시 얼굴만 보았다. 친구가 말했다. 어떻게 매일 글을 쓰냐고. 내가 말했다. 어떻게 애 둘을 키우냐고. 친구도 나도 부산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다. 20대에 만나 40대에 서울에서 재회했다. 친구도 아이가 늦어 초등생인 딸 둘을 키우는데, 우리 아이가 가운데라 셋이 모이면 세 자매 같다. 솔직히 매일 글 쓰는 게 아이 하나 더 키우는 것보다야 낫겠지. 매일 글 쓰는 게 맞벌이보다야 쉽겠지. 육아와 가사와 맞벌이와 집안 대소사 챙기기에 비하면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무슨 대수겠는가.
여름에 양희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언니도 나도 서로에게 똑같은 고백을 했다. 지난 삶이 그리 착실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았다고.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기대며 너무 오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삶을 방치했다고 할까. 오십이 되어 스스로 성적표를 매겨보니 고작 오십 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앞으로의 삶을 향해서 매일매일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다.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고민은 있었던 모양이다. '앞으로의 삶'이란 제목으로 시까지 써놓은 걸 보면. 싱가포르에 있을 때였다. 그러나 실천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후회는 없다. 후회하고 있을 시간도 없으니까. 지나간 일도, 다가올 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할 뿐이다. 그 이치를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매일 글을 쓰려면 보이는 대로 사진도 많이 찍어두는 편이다. 특히 음식을 주문해 놓고 내가 깜빡하고 수저부터 들면 요즘은 남편과 아이가 사진부터 안 찍느냐고 먼저 알려준다. 협력자가 많은 것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삶*
친구가 보내준 소포 안에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앞으로의 삶이 들어 있었다
제법 묵직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