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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Sep 27. 2018

9월의 편지

너무 쉽게 감동하지 말자


"우리를 너무 만족스럽게 하는 건 다 경계해야 한다.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쉽게 감동해선 안 된다."  


가는 9월이 아쉽지 않다고 말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9월의 마지막 주인 목요일. 새벽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조용히 부엌으로 물러나와 찻물을 올려두고 두어 시간 글을 쓰면 될 일. 월요일부터 하루하루를 말린 사과나 무화과를 씹듯 느리게 음미해 왔다. 저토록 고요한 일출. 아직 끝나지 않은 오전과 오후의 햇살. 어디선가 읽은 한 구절.


"우리를 너무 만족스럽게 하는 건 다 경계해야 한다.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쉽게 감동해선 안 된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자 쌀쌀한 새벽 공기가 부엌을 금세 점령했다. 시어머니가 주신 에델바이스 꽃이 수놓인 회색 윗도리를 걸치고 식탁 벤치에 앉아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사방이 고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가만, 쉽게 감동하지 말라는 말은 문학을 두고 하는 소리겠지. 몇 시간 후면 내 베란다 앞을 물들일 핑크빛 새벽 하늘과, 최선을 다해 온 종일 이자르 강변의 산책길에 골고루 내려앉을 햇살과, 심심한 듯 그러나 요란하지는 않게 온 몸으로 퍼지는 차 한 잔에 감동하지 말란 뜻은 아니겠지. 뭐든 맥락과 의도가 중요하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액면 그대로가 다는 아닌 것이다.


어제는 아침 6시에 빵을 사러 나서려다 30분을 더 기다렸다. 밖이 너무 어두워서였다. 지하철 역 앞 빵집에 다녀오는 사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집 1층에 아기가 둘인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창가의 노란 불빛이 다정했다. 그 옆으로 오스카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골목과 그 위의 하늘도 적막한 베일을 벗는 중이었다. 저런 풍경이 아침마다 소리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어제는 소풍을 가는 아이를 평소보다 일찍 학교로 데려다주고 아침 요가를 다녀왔다. 아이의 새학기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지난 주에 요가 수업이 시작된 것도 깜빡하고 있었다. 배차 시간이 긴 버스 대신 U반을 타고 서둘러 걸어갔지만 수업에는 몇 분 늦고 말았다. 이럴 때는 기존 회원이라는 프리미엄이 큰 역할을 한다. 염치 불구하고 벨을 누르자 요가 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셨다. 안 그래도 왜 안 오나 궁금했다며. 그 한 마디가 듣기 좋았다. 여름날 단발이던 선생님의 머리가 어느 새 어깨 위까지 보기 좋게 자라있었다.


소풍길이 피곤했는지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이가 울며 엄마를 불렀다. 아끼던 토끼를 가방에 넣어갔는데 보이지가 않는다며. 이럴 때는 일단 아이를 꼭 껴안고 놀란 마음부터 진정시켜줘야 한다. 물건이란 게 그래.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돼. 사람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야. 그런 말을 아이가 이해할 지. 내일 아침 일찍 가보자. 찾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 만약 못 찾는대도 너무 슬퍼하진 마. 엄마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는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1시간쯤 후에 율리아나 할머니가 우리 집 벨을 누르셨다. 율리아나가 학교에서 아이가 잃어버린 토끼를 찾아들고 온 것이다. 둘은 저녁이 되도록 우리 집에서 함께 놀았다. 인형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아이패드로 무언가를 찾아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수육을 준비했다. 기존 쌈장에 맵지 않게 된장과 물엿을 추가했다. 그런데도 둘 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괜히 나만 남은 걸 다 먹어치워야 했다. 아침에 요가까지 한 날에 다이어트를 망쳤지만 그렇다고 맛까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율리아나 할머니께 들은 유용한 정보 하나. 매주 화요일은 옥토버 페스트 기간 중 어린이 할인이 있는 날이란다. 오, 과연 정보의 여왕이시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벼룩시장도 같이 가자신다. 어제 오전에는 집에서 조카와 아침을 먹고 산책을 가는 길에 형부의 외숙모님 탄테 헬가도 만났다. 허리 수술 하신게 빨리 나아서 그분이 좋아하시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나눌 날이 빨리 오기를. 탄테 헬가에 따르면 옥토버 페스트의 첫 주인 9월은 아직 날씨가 괜찮단다. 그럼 대체 10월 한 주는 어떻다는 뜻일까. 다음 주를 기다려 봐야겠다. 어제는 16도, 오늘은 19도까지 오른단다. 어제도 해가 나니 제법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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