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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Sep 27. 2018

커피를 보내드릴게요

멀리서 온 소식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재미고 소소한 행복이니까요."


뮌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있다. 아주 멀리서 온 사람이었다. 그녀가 20년을 살고 있다는 곳은 커피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처음 내 브런치 글에 달린 그녀의 댓글을 보고 나는 반가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글만 보고 차 한 잔 하자고, 밥 한 번 먹자고 하는데 반갑지 않겠는가. 그것도 뮌헨에서.


우리는 총 세 번을 만났다. 한 번은 카페 이탈리에서.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곳으로 그녀가 직접 찾아왔다. 꼭 커피를 사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서 사양도 않고 카푸치노와 크라상을 얻어먹었다. 또 한 번은 우리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차릴 것도 변변찮은 소박한 한 끼였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어야 한다. 그런 기회는 늘 오는 게 아니니까.


두 번째 만남에 우리 집으로 와서 밥을 먹자고 했을 때 그녀가 사양하지 않아서 좋았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초대한 터라 그녀 역시 깊이 생각 않고 응해 주길 바랐다. 그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이자르 강변을 걸어 시내까지 산책을 했다. 뮌헨 대학에서 공부할 그녀 아들의 냄비를 살 요량으로 그녀와 함께 주방 도구를 보러 다니는 일도 즐거웠다. 나 혼자서는 결코 다닐 일이 없는 동선이었다.


날 날씨는 더웠다. 뮌헨이 왜 이렇게 덥냐고 처음 만나던 날 그녀가 말했다. 냄비를 산 후 우리는 빅투알리엔 마켓의 도넛 카페에 앉아 더위도 식힐 겸 커피를 마셨다. 유명하다는 빵도 먹어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직장에 다니는 큰 딸에 이어 둘째인 아들까지 대학에 입학했으니 한국에 잠시 가서 몇 개월간 듣고 싶었던 문화센터 강의도 듣고, 꿈꾸던 첼로도 배워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그날 들었다.



그날 우리는 뮌헨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도 잊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의 꿈을 묻고 들어주고 지지해 주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카페를 나올 때 그녀가 카페의 빵을 골고루 담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괜찮다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설탕을 듬뿍 바른 식지도 않은 빵들을 아이는 학교 앞 길가에 선 채로 두 개나 먹어치웠다. 따끈해서 맛있다고. 배도 고팠다고.


세 번째로 만난 곳은 내가 좋아하는 대학가 브런치 빵집 카페였다. 그녀는 내게 꼭 점심을 사고 싶어 했다. 대학가 근처의 회전 스시집에서. 독일에서 스시집을 가 본 적이 별로 없던 내게 그녀는 정해진 가격에 맘껏 먹어도 된다며 실컷 먹으라고 몇 번을 말했다. 스시 마니아도 아니면서 그날만은 최선을 다해 먹었다. 스시 사이를 달리는 과일 접시도 숱하게 비웠다. 음식 때문만도 아니게 기분 좋게 배는 부르고 마음도 불렀다. 

그녀는 옥토버 페스트가 시작되던 날 뮌헨을 떠났다. 그날까지 뮌헨의 날씨는 여전히 그녀에게 더웠을 게 틀림없다. 사흘 후 그녀에게서 소식이 왔다. 집에 잘 도착했다고. 오후만 되면 시차 때문에 비실비실 졸고 있다고. 뮌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돌아보면 꿈만 같다고. 그녀가 떠난 다음 주에 곧바로 뮌헨의 기온이 2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을 알고는 두고두고 애석해했다. 무슨 이런 조화가 다 있냐면서. 그러면서 커피를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커피 포트 사신 기념으로 커피를 보낼게요. 부담스러워하진 마시고요.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재미고 소소한 행복이니까요."


그녀의 호의를 나는 단번에 받았다. 이제는 남의 기분이든 선물이든 칭찬이든 뭐든지 덥석 잘 받는 사람이 된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그녀가 보내주는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녀의 마음과 그녀가 사는 서늘한 곳의 원두가 블렌딩 된 우정이 바다를 건너오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왜 마다하겠는가. 먼 곳에서 반가운 소식과 함께 커피 향 묻은 마음까지 보내주는 사람이 있어 가는 9월이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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