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면 미용실이 언제나 고민이다. 한국 미용실이 있으면 다행인데 없을 때가 문제. 오래전 독일 마르부르크에 살 때는 워낙 작은 도시라 한국 미용실은 기대도 안 했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독일인 젊은 여자 미용사를 만나 편하게 머리를 맡겼다. 매직이나 스트레이트를 하지 않고도 3년을 지낼 수 있었던 건 내 미용사 덕분.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가 내 반 곱슬머리를 탓하지 않고 모발도 건강하고 숱도 많으니 얼마나 좋냐며 늘 칭찬해주며 손질하기 쉽게 잘라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싱가포르에서는 실력 있는 한국 미용사들을 만나 5년간 머리 걱정 없이 살았다. 한국 미용사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내가 미용실 운이 좋다는 것도. 문제는 뮌헨이었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미용실을 못 찾아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 미용실도 있을 줄 알았다. 1월에 한국에서 매직을 하고 왔기에 여름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여름이 지나자 머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문제는 가격이 너무 세다는 것. 우리로 치면 길이만 조금 자르고 정리하는 수준인데 바바라가 알려준 미용실은 기본이 50유로. 그 가격에는 머리 감기와 자르기 그리고 드라이 요금이 포함된 세트 가격이었다. 요가 선생님께 소개받은 미용사는 63유로. 노아 엄마가 옆집 한국 사람에게 물어서 알려준 일본 미용실은 70유로. 거기에 각각 팁까지 고려하면 망설이게 되는 요금이었다. 할 수 없이 가격은 포기하고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으로 고른 곳이 동네 미용실인 해적 미용실이다. 가격은 48유로(팁 포함 53유로).
화~금(오전 9시반-저녁9시) 토(오전 9시반-오후 5시) 오픈 시간이 놀랍도록 길다. 휴무일이 일&월요일 이틀이라 그런 듯.
내가 봐도 귀신같은 머리를 하고 오전에 미용실을 방문했다. 젊은 여자 미용사 한 명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손님은 딱 1명. 좌석은 세 개. 모든 것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모양이었다. 오후 1시로 예약한 미용사 이름은 파비 Fabi였는데, 오후에 가보니 예상을 뒤엎고 새파란 20대 남자 미용사였다. 오 마이 갓! 오전에 예약을 받던 젊은 여자 미용사인 줄 알았는데. 비쩍 마른 몸매. 청바지엔 벨트 대신 치렁치렁한 실버 체인. 코에는 피어싱까지. 50대 아줌마 머리를 손질하고 있을 비주얼은 분명 아니었다. 재빨리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묘하게 안심을 준 건 파비의 태도였다. 행동도 말투도 조용했다. 주문한 녹차가 나오는데 5분. 샴푸를 해주는데 손길은 또 얼마나 느리고 소프트한 지 성질 급한 한국 여자인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파비, 대충해. 나 바쁘단 말이야!'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묻고 듣고 자르기 시작. 머리를 하는 1시간 동안 파비와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몇 번 자르다 보면 내 머리에 익숙해지지 않겠니. 일단 시범 삼아 해보자'라는 내 말에 조용히 웃기만 하던 파비. 말이 많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머리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곱슬머리 해결은? 내친김에 시내로 나가 간편한 매직기를 하나 사들고 왔다.
놀랍게도 뮌헨에 와서 미용실 한번 가는데 여덟 달이 걸렸다. 스스로 결정 장애가 아닌가 싶을 만큼 오래. 카페든 식당이든 미용실이든 한번 정하면 잘 바꾸지 못하는 성격이라 더 그런 모양이었다. 앞으로 나를 포함 아이와 조카 머리까지 파비가 책임질 것 같은 예감. 미용실을 정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그래서 이런 우스개 말이 있나 보다. 새로운 곳에 갔을 때 여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장소가 마음에 드는 미용실과 점집이라나. 점집은 있을 리도 없고 생각도 없으니, 유일한 걱정거리였던 미용실 문제를 뚝딱 해결한 어제는 말 그대로 운수 좋은 날. 마음도 머리도 얼마나 시원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