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양희 언니의 편지

by 뮌헨의 마리


"매일의 일상을 성실히 사는 것이 가장 숭고하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생각이 들어."


양희 언니가 또 한국을 떠났다. 단톡방에서 친구 M이 한 말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형국이다. 지난 번에는 치앙마이더니, 이번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가 고향인 지인이 잠시 다니러 가는 길에 동행한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두 주 동안 핀란드와 마드리드도 다녀왔다. 저 정도면 대단한 에너자이저다. 그럼에도 나는 나대로 언니에게 삐쳤다. 도대체 뮌헨엔 올 거야 말 거야?언제 올 거냐구!

그러자 언니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그림들과 함께 핀란드의 카모메 식당과 마드리드 산구미엘 시장에서의 단상을 소상하게 적어보냈다. 그것도 긴 문장으로. 평소의 언니답지 않았다. 사실은 내 압력도 조금 들어있었다. 단번에 언니를 용서했다. 일상의 숭고함, 언니의 그 빛나는 사유를 공유한다. 언니에게 나는 벌써 작가다. 기쁘고도 무거운 타이틀이다. 갈 길이 멀지만 노력해 보겠다. 나 역시 언니 꿈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알아주기를.



(핀란드에서)
마치 동화 속 같아. 하늘이 너무 예쁘고 사람들은 왜 그리 큰지. 카모메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일본인들이 많이 오더라. 영화랑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 오니기리는 맛있었는데 라면은 거의 못 먹었어. 북유럽은 또다른 느낌이야. 너는 잘 지내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네. 역시 너야. 조만간 너의 꿈을 이루어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을 상상하니 행복해지네. 물론 지금도 작가이지만. 오늘 상트로 돌아가서 다시 마드리드로 갔다가 한국으로 갈거야. 간간이 소식 전할게.



(마드리드에서)

오늘은 산미구엘 시장에 왔어. 한국에 있는 재래시장 느낌은 전혀 없고 일종의 먹자 골목이라고 해야 할까. 본인들이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자리에 앉거나 서서 먹는 방식이야. 각기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심각하지 않고 떠들고 웃고 거기다 맥주, 와인, 샹그리아를 곁들이면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네. 글도 사람에게 많은 감동과 희망, 슬픔 등을 주지만 음식이 주는 힘 또한 만만치 않네. 옆에 앉은 노부부에게 사진을 부탁드리고 같이 찍었어. 낯선 사람과 스스럼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유와 거리낌 없는 것 또한 여행과 음식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어!


알 수 없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새로움, 도전, 시행착오 등이 있겠지. 앞으로 남은 인생 또한 그러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좀 더 용감해졌다는 것과 사람이 귀하다는 것. 앞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고, 모든 일의 선택에 있어 우선 순위가 뭔지 차츰차츰 선명해질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드네. 매일이 같은 일상이어서 사는 게 별 게 있겠나 싶고,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보지만 매일의 일상을 성실히 사는 것이 가장 숭고하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생각이 들어.


오늘은 혼자만의 마드리드 여행을 하기로 했어. 두려움도 있지만 간만의 자유로움이 설레임으로 다가왔어. 가 보지 못한 골목 여행을 할 생각이야. 그 전에 점심을 먹기로 하고 마드리드 한식당에 와서 라면과 해물전을 시켜서 기다리는 중이야. 마드리드에 오니 유독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보이네. 노부부들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거나, 버스에서 늙은 아내가 넘어질세라 손을 잡아주고 자리에 먼저 앉게 하는 모습. 오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해 온 노부부들이 서로를 알뜰히 챙기는 모습에 사랑이란 오랜 세월로 인해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구나 싶어 고개가 숙여져.


언니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역시 사람이고 사랑이었다. 언니의 음식은 그 사랑의 산물이었고. 나 역시 그 사랑을 열심히 먹고 살아온 사람 중 하나다. 인생 전반전을 지나 후반전을 준비하는 언니의 앞길에 그릇마다 접시마다 수북할 사랑의 레시피를 기대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과 나의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