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최고의 위로는 술탄 호텔 정원에 서 있던 멋진 나무에 핀 핑크빛 꽃들. 현지 이름은 캄보자. 그 이름은 참파꽃.
"매일 전쟁을 치르듯 했던 자카르타 출장에서 단 한 줄의 글도 읽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하지만 그런 내게 최고의 위로는 술탄 호텔 정원에 서 있던 멋진 나무에 핀 핑크빛 꽃들, 현지 이름은 캄보자. 싱가포르에 있을 때 네가 흔히 거리에서 마주쳤을 듯한 꽃들이야. 우리나라의 무궁화처럼, 인도네시아 국화라더라."
내 선생님이 보내주신 자카르타 후기다. 나도 안다, 그 꽃, 이름하여 참파꽃. 얼마나 단아하고 단정하며 기품이 있던지 나 역시 단번에 반한 꽃.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하던가. 저런 꽃을 국화로 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한 나라의 국화가 될 수 있나. 우리 무궁화도 비할 수 없이 품위가 있긴 하지만. 독일에서 자주 보는 꽃들도 예상과 달리 의외로 화려했다. 그렇게 쓰자 절로 웃음이 났다. 그것이 꽃들의 속성 아닌가.
선생님에게 글 한 자 읽을 수 없는 시간의 고통을 짐작해본다. 나 역시 그랬다. 20대부터 가방에 책 두세 권을 예사로 넣어 다녔다. 읽던 책을 다 읽고 난 후 새로 읽을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낭패감. 그것을 무엇에 비할까. 책을 읽다 예사로 지하철 한두 코스를 지나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어린 시절 내내 스무 살이 넘어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 중증 장애를 가진 선생님의 친구는 형제자매를 빼고는 책뿐이었을 테니까.
아이가 몇 살이었던가. 다섯 살이었나. 남편과 아이와 함께 싱가포르에 간 적이 있다. 우리가 살던 곳과 내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던 공원에도 올랐다. 남편과 내가 자주 들르던 정류소 앞의 작은 쇼핑센터는 리모델링이 되어서 낯설었다. 그곳에서 자주 우동과 낙지 스시를 먹었었는데. 물론 아이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는 참파꽃을 좋아했다. 마지막에 묵었던 센토사 비치의 호텔 정원과 수영장 옆에는 유독 참파꽃이 많았다. 저 사진을 보고도 잡아떼긴 어렵겠지?
"수많은 아열대 과일이 있던데 맛은 망고와 몇 종류만 호텔 식당에서 줄곧 먹었어. 두텁고 부드럽고 심심하고 신선한 맛! 아, 발리 땅콩이 특히 맛이 좋다고! 넌 발리 자주 갔으니 잘 알겠지. 잘 익은 호박색 파파야도, 연두색 멜론도 끼니마다 먹었어. 맛있더라."
샘! 발리엔 몇 번 갔지만 땅콩은 못 먹었어요. 저의 사심은 온통 파파야에 가 있었거든요. 아침, 점심, 저녁을 파파야만 먹었답니다. 얼마나 파파야를 사랑했던지 아이와 남편이 놀라더군요. 아니, 내가 파파야 홀릭인 걸 몰랐단 말이야? 제가 더 놀랄 지경이었어요. 그렇게 파파야 노래를 불렀으면 적당히 눈치챌 만도 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