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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물들인 한 마디

그리운 동료들

by 뮌헨의 마리


"글 잘 보고 있다. 공짜로 보는 게 미안할 정도..."



부산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있다. 내 나이 20대였다. 밀레니엄 직전까지 햇수로 10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 그중 일을 그만두기 직전에 4년 정도 함께 일했던 여직원들과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다. 총 일곱 명 나와 M언니가 외국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5명은 계속 같은 직장에 근무 중이다. 10년 동안 외국에 살면서 간혹 연락이 닿거나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얼굴을 보기는 했는데, 정작 8년 동안 한국에 살 때는 몇 번 보지 못했다. 원래 그렇다.


"글 잘 보고 있다. 공짜로 보는 게 미안할 정도..."


7월부터 브런치를 시작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부끄러워야 한다.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했다. 언제까지 혼자서 수기만 쓰고 있을 것인가. 내 기억에 모두가 책과 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위의 말은 특히 책을 좋아하던 J언니의 멘트였다. 이 정도면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서울에서 3년간 문학 수업을 들을 때 언니들 생각이 자주 났다. 그 후로 간혹 독서 테마를 꺼내면 다들 노안 때문에 책을 멀리한 지 오래라 했다. 그중 백미는 다시 J언니의 한 마디.


"난 요즘 책은 냄비 받침으로만 쓰며 살아."



저 정도면 솔직함의 최대치겠다. 가식도 겉치레도 쏙 뺀 진국 언니. 다른 언니들도 좋다. 성격도 취미도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내 친구 S. 일곱 명 중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인데 언제 봐도 언니 같이 넉넉하고 편안하다. 한두 달 전의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일곱 명이 동시에 톡을 한 적이 있었다. 나야 톡이 일상이지만, M언니는 혼자서 정신을 차리리 못했다. 카록 방 수다가 너무 빨라 대화를 따라잡질 못한 것이다. 외국에 너무 오래 살면 그렇게 된다. 그날이 마침 친구 S의 생이었다. 폭풍 수다가 끝난 카톡방 클로징을 부지런한 S가 자기 페북에 올린 글로 마무리했다.


20년지기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늘 끝은 우리가 언제 다시 완전체로 만나냐는 것이다. 젊을 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을 때는 젊음이 없기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뮌헨과 도시 V에 있는 친구와 언니에게 내년에는 꼭 만나자고 기약하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나이는 먹되 늙지는 말자고 했다.


늘 부지런하고 바지런했던 S의 생일날, 그녀는 무척이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페북 첫 문장이 '오늘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피곤에 절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다.'을까. 애 셋을 키우며 직장맘으로 살았으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저런 며느리 하나 들어오면 안 봐도 집안이 흥한다. 내가 20년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이 모두들 열심히도 살았구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성실한 태도로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옛 동료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지는 말아야지. 그 세월이 어느새 20년이라니. 그럼 나는 최소 20년은 계속 이렇게 써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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