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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투알리엔 마켓의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이사벨라와 커피를 마셨다

by 뮌헨의 마리
친구란 공들인 만큼의 시간과 기울인 정성과 비례하는 법인데. 아무나 만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니.


시월의 넷째 주였다. 가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아침 8시에 내 폰이 울릴 리가 없는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카페로 가는 중이었다. 큰길이라 차 소리 때문에 폰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사벨라였다. 율리안나 엄마. 출근길에 차로 율리안나를 학교에 내려 주고 학교 앞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날은 우리도 평소보다 일찍 등교한 날이었다. 빅투알리엔 마켓에 맛있는 카페가 있다며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이사벨라의 말에 의하면 이 카페는 아침에 일찍 문을 연단다. 서서 마셔야 한다는 불편만 감수한다면 괜찮았다. 카페 맞은 편의 빵집도 맛있다고 했다. 뮌헨에서 가장 크고 맛있는 프레첼 빵을 살 수 있다나. 이런 건 현지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정보다. 과장이 없는 이곳 사람들 말이니 맞을 확률이 높겠지. 맛이란 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이사벨라는 우리로 치면 조폐공사 비슷한 곳에서 일한다. 율리안나 할머니께 들은 바로는 그렇다. 출근 시간에 여유가 있는지 그날 이사벨라는 9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떴다. 태국 사람인 남편 지미가 새벽에 급히 태국으로 떠났다는 소식도 그날 들었다. 이틀 전만 해도 지미를 학교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까지 했는데. 태국에 계신 부친이 위독하셔서 보름 예정으로 급히 떠났다고. 지미는 현재 직업학교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실습 중이다. 새벽 5시 반에 나가 온종일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다 했다. 지미가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졸업장과 자격증을 받아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율리안나 가족으로서는 중차대한 시기일 텐 내가 보기엔 느긋하기만 하다. 지미는 이사벨라보다 한참 연하인데, 불교 신자에 채식주의자로 집안에 작은 불단까지 꾸며놓았다.


그날 아침 이사벨라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음 주가 가을 방학이라 애들 데리고 뭐 할 거니. 우리 집으로 보내. 자고 가도 돼. 요즘 학교에서 애들 사이에 이런저런 얘기가 있던데, 너도 들었니? 응, 들었어. 너희 남편은 요즘도 바빠? 응, 늘 그렇지 뭐. 넌 요즘 뭐 해? 난 매일 글 써. 내가 쓴 거 볼래? 이 사진들도 다 니가 찍은 거야? 그래, 그래서 하는 일 없이 바빠. 뭐 그런 얘기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건강 얘기나 먹는 얘기도 빠지지 않는데 그런 얘기는 별로 안 했다. 독일 사람들은 건강해서 그런지 시부모님들을 만나도 건강 문제는 화제에 잘 오르지 않는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보조 식품이나 약 같은 얘기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날 커피는 이사벨라가 샀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얻어마셨다. 아침 겸 크루아상을 먹는다며 내게도 권하는 건 사양했다. 내게는 커피 한 잔으로 충분했다. 그날 이사벨라와 마신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그녀와 심각하지 않은 수다를 떨고 카페를 향해 걸어가며 비로소 깨달았다. 이런 시간이 내게 드물었구나. 생각해 보면 늘 혼자였다. 매일 혼자라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매일 아침 또 혼자네, 하면 어쩔 것인가. 혼자니까 글을 쓰지. 혼자라서 쓸 수 있고. 이런 시간이 소중하고 고마운 줄 모르면 남은 삶을 어떻게 버틸 것인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삶이기에 불평도 불만도 불편도 없다.


다만 그날 아침 나는 고마웠다. 이사벨라의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 없는 초대가. 그러자 갑자기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탈리! 같이 야외 피트니스를 하던 프랑스 친구. 아이가 아직 어려 나와는 만날 일이 없던. 언젠가 내가 우리 동네 버스 정류소 앞 카페 야외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녀가 지나가다 같이 차마신 적이 있다. 헤어지며 자기 폰 번호를 주었는데. 그녀도 친구가 별로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내가 야외 운동을 몇 번 빠지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점점 친구를 사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차나 마시며 수다를 떠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친구란 공들인 만큼의 시간기울인 마음과 비례하는 건 아무나 만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니. 그러니 혼자라 얼마나 다행인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다. 예전에는 두 마리도 세 마리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 나이 들어서 알게 된 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하나면 충분하다. 흔들리지 않을 확신만 있다면.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그렇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mistyrose라는 브런치 작가의 <윤회에 대해 생각하다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어쩌면 이 삶이 지난 생의 내가 바라고 꿈꾸던 삶인지 모르겠'다. 이 말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전생이 있든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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