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 근처 공공 어린이 도서관을 찾았다. 얼마나 오래 찾았는지! 서고가 널찍널찍해서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 안까지 오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심지어 여기저기 세워두어도 복잡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보드게임도 많고, 아기들과 엄마들이 놀 수 있는 공간까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이용 에니메이션 비디오와 책이나 노래 시디도 많았는데, 가장 좋은 건 한번에 대여 개수가 토탈 20개까지 가능하다는 것. 반납 기간은 책이 4주, 보드게임과 비디오와 시디는 2주. 당연히 연장도 가능하단다.
독일에 오자마자 아이와 도서관을 가고 싶었지만 집 근처에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 리스트를 보면서 지도로 꼼꼼하게 확인해 보지 않아서 집에서 가까운 곳이 어딘지, 어느 도서관이 어린이 도서가 많은지도 알기 어려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도 아이도 도서관 타입이 아니라 책방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독일에 오면서 비율을 반반쯤으로 조정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도서관을 친숙하게 드나드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집 근처 도서관에 대해서는 베트남 친구 투이에게 들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딱 한 구간이었다. 도서관 입구가 지하철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편했다. 날이 좋으면 걷거나 자전거로 다녀도 되겠다. 투이네와 같이 방문했던 첫날엔 투이네가 돌아간 후에도 아이와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서 놀았다. 아이는 숙제도 하고 엄마와 메모리 게임도 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어떤 책이 있나 흥분해서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날 우리는 보드게임 1개를 포함 디비디와 시디 등 총 16개를 대여했다. 들고 올 때 너무 무거워 다음부터는 조금씩 빌리기로 했다.
아이와 처음 들른 뮌헨의 어린이 도서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대출 카드를 만들어 주는 담당자였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했다. 지나치게 과한 친절 말고 정말로 마음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친절 말이다. 젊은 아가씨였는데, 편견인지는 몰라도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더 친절하고 착한 것 같다. 도서는 2층에서 고르고 1층에 대여용 자동 기계가 있었다. 대출 때 기계에 오류가 생겨 1층과 2층 담당자에게 번갈아 문의를 했다. 1,2층 담당자는 중년 독일 여성들로 바뀌어 있었는데 그들 역시 친절했다. 이 도서관이 더욱 좋아질 것 같은 예감.
생각보다 도서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한 명당 스무 권씩 빌려가면 서가에 꽂힌 책이 적을 수도 있겠다. 이 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고, 독서가든 Lesegarten이라는 야외 정원도 있었다. 내년 봄과 여름이 기대된다. 1층의 도서 대여 기계 수는 2대, 입구에는 공휴일과 늦은 시간에도 반납이 가능한 기계가 2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도서관 안에 별도 카페는 없고, 1층 정보물 잡지 코너에 독일에서 보기 힘든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가격은 균일 70센트. 아이는 핫초코를 나는 매번 다양하게 시음해 봤는데 맛있었다. 특이한 건 1회용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머그컵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 머그컵이 놓인 아래 수납장이 식기 세척기였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과,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북클럽 모임도 있었다. 다양한 언어로 자국의 책을 낭독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터키어, 이태리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가 있었고 한국어는 없었다. 이 부근에는 한국 사람이 별로 안 산다는 뜻일까? 한번 물어봐야겠다.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도 충분했다. 1층 출입구는 자동문, 1층과 2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2층의 화장실은 휠체어 겸용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 이진이와 함께 갔다. 우리 문학모임 멤버 중 희의 큰딸인데, 동생이 있어서인지 원래 아이의 성정이 고와서인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늘 수줍은 듯한 미소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 알리시아와 동갑이라 둘이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사심 가득한 도서관 나들이였다. 한 달에 한 번 정토회에 나가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알리시아를 이진이 자매와 놀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좋은 친구 한 명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P.S. 그날 저녁 도서관에 가니까 지난번 이진이와 함께 퀴즈 맞추기 추첨통에 넣은 게 알리시아만 당첨되었다. (이진아, 미안해! 선물은 직접 고르라고 했는데 아이는 골라도 참 희안한 걸 고르더라. 내 참, 책도 많던데!) 집으로 돌아올 땐 12월 퀴즈도 들고 왔다. 11월 추첨 인원은 총 18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