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우선 가정의를 방문해서 초진을 받아야 한다. 그 후 가정의가 추천해 주는 전문의를 방문해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무료 진료가 가능하다.
우리 동네 약국(아포테케)
피부에 문제가 생긴 건 가을부터였다. 양쪽 팔꿈치에 가려운 증상이 있더니 11월이 되자 낫기는커녕 조금씩 심해졌다. 양쪽 팔꿈치 아래로도 가려운 반점이 하나 둘 생겨났다. 딱히 짚히는 건 없었지만 먹는 것과 사는 곳의 물이 달라졌으니 물갈이 혹은 몸갈이 정도로 생각했다. 여름에 야외에서 개미에게 물린 곳도 가려운 증세가 남아있었다.
누군가 말하길 역시 물갈이 같은 거라고 했다. 7년 전쯤 자신도 그런 증세가 몇 달간 계속되다가 자연히 없어졌다고. 피부과에 가도 소용이 없었다며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단다. 또 누구는 환절기라 날씨가 건조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공감했다. 자주 먹지 않던 빵과 치즈와 살라미 종류를 1년 가까이 매일 아침 먹었고, 거기다 가스 물까지 마시고 있으니 몸이 바뀔 만하다 싶었다.
아토피 문제는 시누이 바바라가 전문가였다. 지금은 호전되었지만 팔꿈치에 비슷한 증세가 있는 걸 몇 년 전에 본 기억이 있다. 이후 바바라는 소시지 종류를 거의 먹지 않고, 고기도 가능하면 유기농을 먹었다. 바바라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가는 의사를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피부과는 시내인 오데온스 플라츠에 있었다. 남편은 그게 가능할지 고개를 갸웃했다.
남편의 설명은 이랬다. 독일은 동네에 가정의가 있다. 건강상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우선 가정의를 방문해서 초진을 받아야 한다. 그 후 가정의가 추천해 주는 전문의를 방문해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무료 진료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진료비와 약값을 개인이 부담해야 할 경우도 있단다. 남편이 바바라에게 확인한 결과 가정의의 추천 없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곳이란다. 바바라에게 나와 아이의 예약을 동시에 부탁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발가락에 아토피 증세가 있었다.
피부과는 큰길에서 첫번째 사진 통로 안쪽. 두번째 사진 정면 가운데가 입구다. 세번째 사진은 피부과의 대기실.
피부과는 오데온스 플라츠 광장의 큰길 중심에 있었다. 건물은 깔끔했고 내부는 쾌적했다. 우리가 다니는 동네 가정의와 마찬가지로 접수대에서 건강보험 카드로 접수 신청을 한 후 대기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로라고 인사말을 건넨 후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호출을 기다렸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은 서너 명. 신기한 건 의사가 직접 환자를 부르러 대기실까지 온다는 것.
온순한 인상의 여의사는 편안하고 친절했다. 마른 몸매에 금발 머리를 뒤로 묶고 흰색 티셔츠에 백바지, 그리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온화한 말투와 화장기 없는 얼굴도 소박한 모습에 잘 어울렸다. 괜찮다고 했다. 걱정 말고 자기가 추천하는 크림을 발라보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며. 피부에도 플라시노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아이의 발가락 상태도 경미하다며 아이에게 직접 저녁마다 씻고 바르라며 부드럽게 일렀다.
살면서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만큼 안심이 되는 일도 드물다. 능력 있는 의사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친절한 의사를 만나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외국에서. 이런 얘기도 들었다. 독일에서 한국인 아내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어찌나 쌀쌀맞은지 옆에 있던 한국인 남편이 한 마디 했단다. 참 차가우시네요. 여의사의 대답이 뭐였을까.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이런 뉘앙스. 그래서 어쩌라고요. 이런 의사를 만나면 아픈 건 둘째치고 누구든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겠는가.
피부과 진료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 수순은 우리와 동일하다. 처방전을 들고 아무 약국이나 가면 된다. 무료라는 게 우리와 다를 뿐. 아이 크림은 피부과 앞 약국에서 바로 받았고, 내 크림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며 거기서 할 건지 집 근처 약국에서 할 건지를 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약국에 들러 부탁했다. 약만 주문해 놓고도 벌써 절반은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사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도 스스로 발을 씻은 후 혼자 약을 발랐다. 좋은 의사를 만난 즐거움은 생각보다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