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산책하다가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 책방에 들렀다. 그날의 득템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올봄에 완독할 내 목록 중 첫 번째다.
독일의 벼룩시장은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아이들은 벼룩시장과 함께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그만큼 가까이 있다. 학교는 물론이고, 봄이면 동네별로 벼룩시장이 열린다. 교과서는 학년별로 대물림되는지 이전 사용한 학생들의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아이도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프라우엔 호프 슈트라세의 중고숍 중 하나인 중고 엘피판과 시디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 거리만 해도 그런 숍이 몇 개나 있는데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고가 앤티크 숍이나 중고숍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빅투알리엔 마켓 옆의 전통 의상 가게인 던들숍도 문을 닫았다.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우아한 가게로 윈도쇼핑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던 곳이었다.
반가운 건 중고 서점들도 많다는 것. 물론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관심 가는 책은 많지만 뜻대로 읽어내지는 못한다. 중고 서점들 역시 아직까지 버티는 게 신기하다. 얼마 전 알렉스 카츠 전시회를 다녀올 때 작년에 아이와 몇 번 들렀던 대학가 중고 서점이 문을 닫고 다른 가게로 바뀐 것을 보았을 때의 쓸쓸함이라니. 어쩌겠는가. 중고 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것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시내를 산책하다가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 책방에 들렀다. 기부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책값이 말도 못 하게 싸고 상태도 좋다. 그날의 득템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책인데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지만 읽거나 사지는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6)>도 강의만 듣고 함께 읽기에 동참하지는 못했는데 올봄에는 완독 할 생각이다. 그 사이 한국에는 다음 편인 소돔과 고모라도 번역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올여름 귀국하면 들고 올 책의 목록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중고 서점에 들른 건 아이의 책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초등 4학년 정도가 읽을 만한 시리즈로 용감하고 똑똑하고 호기심 많은 여학생 셋이 벌이는 좌충우돌 추리물이다. 독일 아이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모양이었다. 제목은 <셋(삼총사/세 친구) Die drei!!!> 제목에 느낌표가 들어간 이유가 있다. 원래 이 시리즈는 초등 저학년용으로 남자아이 셋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인데 다음과 같이 제목에 물음표 세 개가 찍혀 있다. <셋 Die Drei???>.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두 시리즈물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내가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이날 독일의 합리성이 빛을 발했다. 똑같은 책 두 권의 가격이 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한 권은 2유로, 다른 한 권은 4.5유로. 대부분의 책이 2유로 전후임을 감안하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값을 계산하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 여쭈니 2.5유로로 깎아주셨다. 또 다른 책(1.50유로)은 몇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고 심지어 공짜였다. 이날 가장 비쌌던 책은 단연 프루스트! 보통 책값의 세 배에 달하는 7.50유로. 그러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