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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2. 2018

잘 가, 고래상어야

고래상어를 구한 사람들


이종범 선장과 선원들은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를 살려준 뒤 고래상어가 무사히 바다로 돌아가자 가슴이 설레었다. 쿵쾅쿵쾅 가슴도 뛰었다고.

사진 출처:네이버

오래전 남편과 독일 친구와 셋이 모잠비크로 고래상어 Whaleshark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던 남편과 독일 친구는 한 마디로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엑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나와는 다른 인류다. 둘이 상하이에서 일할 때는 독일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독일식 옛날 오토바이를 타고 몽골의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그때 함께 가지 않은 걸 둘은 지금까지 아쉬워 하지만, 나 나대로 그 여행에 동참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만약 따라갔더라면 온 몸에 멍이 들고 독한 사막 모기로 성한 곳이 없었 것 같았.


싱가포르에 살 때 셋이 떠난 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거쳐 지프로 모잠비크로 가는 여행이었다. 거기서 고래상어를 만난다는 계획. 먼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희망봉을 돌아보고 사파리를 했다. 석양빛을 받으며 건달처럼 걸어가던 하이에나 세 마리가 인상적이었던 사파리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모잠비크로 가는 길에서였다. 지나는 마을마다 얼마나 가난하던지. 거기서 아프리카의 민낯을 보았다. 문제는 고개를 돌릴 곳이 없었다는 것. 생각해 보라. 우린 비싼 돈 들여 고래상어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따라나선 걸 후회했다. 모잠비크에서는 리조트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궁색한 숙소에 머물렀다. 인근 마을의 아낙과 그의 아들인 소년이 맨발로 와서 매일 청소를 해 주던 곳.


고래상어와는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란 내게 공포였다. 언젠가 스노클링을 하다가 바닷속 절벽 너머 깊고 검은 심연을 마주한 이후부터. 둘을 바닷속으로 보내고 소년과 아낙을 따라 숙소에서 멀지 않은 그들의 마을을 방문했다. 집은 갈대와 비슷한 재료로 원형으로 얼기설기 세웠고 입구에 천막 같은 발을 친 곳이었다. 소년을 따라 차마  집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마을만 한바퀴 둘러보다 돌아왔다. 거기서 온 가족이 밥을 먹고 잠을 잔다고 했다. 전기가 없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고. 오가는 길은 진창이었고, 흙탕물을 건너온 샌들은 아무리 씻어도 흙물이 빠지지 않았다.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직도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고래상어보다 더 묵직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고래상어가 다시 생각난 건 이번 가을이었다. 지난 9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몸길이 13m가 넘는 대형 고래상어가 그물에 걸렸다.* 이종범 선장과 선원들은 멸종 위기종인 이 고래상어를 그물에서 빼내 바다로 돌려보냈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수억 원에 달해 모른 척 폐사하는 것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장은 말했다. 살아있는 걸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평생 먹고살게 해 준 고마운 바다를 위한 일이었다고. 

이 세상에 몇 마리 남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고래상어는 따뜻한 바다에서 작은 새우와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생물이다.* 사람이 다가와도 나란히 수영할 정도로 온순한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바다 동물로 적색 멸종 위기종. 배 길이만 한 고래상어가 그물에 걸렸을 때 선장과 선원들은 대번에 알았다.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아가미가 불완전해 헤엄을 쳐야만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을 비롯 선원들의 마음이 급해진 이유. 30분 이상 사투 끝에 마침내 고래상어가 그물을 빠져나가자 선장과 선원들이 인사를 했다.


 "잘 가라, 고래상어야."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작년 8월에도 같은 곳에서 6m짜리 고래상어를 풀어준 적이 있다고. 세상에! 살면서 두 번씩이나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를 풀어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평생 고래상어를 보지도 못한 사람도 많을 텐데. 고래상어가 바다로 돌아간 후 가슴이 설레었다고 30대의 젊은 선장은 말했다. 쿵쾅쿵쾅 가슴도 뛰었다고.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 나서 그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이 또 있을까. 돈의 유혹이 펄펄 살아있는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두 마리 고래상어가 천수를 누렸으면 좋겠다.

 선장의 결단에 동의하고 적극 도운 선원들 역시 한 명 한 명 이름으로 호명되어야 할 것 같다. 고귀한 영혼을 가진 바다 사나이들. 그들의 모습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앗, <모비딕>을 빼먹을 뻔했다! 한겨울에 왜 갑자기 고래상어냐고? 그러게 말이다. 차가운 계절이 시작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눈비가 흩뿌려서? 자고 일어나니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아이와 학교로 가다가 알았다. 겨울이 따듯한 건 하얀 눈 때문. 바다가 따듯한 건 순하디 순한 고래상어 때문.


사진 출처:네이버


*2018.10.14일 자 인터넷 기사와 사진을 재인용함.

 (Jtbc 오선민 기자 : '그물에 걸린 13m 초대형 고래상어, 선원들 사투 끝에..')


**2018.7.23일 자 서울신문 참조.

(고래상어 : Whaleshark. 바다의 '온순한 신사'로 불리는 고래상어는 몸길이가 최대 18m까지 자라며 130세까지 살 수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어류 중 가장 큰 종으로 무게는 20t까지 나갈 수 있다. 갑각류나 오징어, 플랑크톤을 먹는다. 몸집이 거대한 반면 성격이 온순해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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