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빠져 죽지 않기> 이현우, 교유서가
'마키아벨리에게 배우는 독서'. 로쟈의 세 번째 서평집 <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다가 마음이 솔깃해진 곳은 마키아벨리 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안 사실 하나. 마키아벨리가 위대한 독서가였다는 것. 이럴 때 책 읽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된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오전의 영화 앞에서도 타협 불가. (뮌헨의 영화 상영은 대부분 늦은 오후부터다. 독일은 조조가 없나? 대형 상영관에서도 드물게 수요일 오후 1시에 상영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같은 영화의 오전 상영 스케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였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일 영화관의 영화는 모두 더빙이다.)
위대한 정치사상가라는 타이틀에 견주면 사소하지만 그는 위대한 독서가이기도 했다. 1513년 마흔네 살에 쓴 한 편지에서 그는 저녁에 귀가하여 서재로 들어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문가에 그날 입었던 진흙과 진창으로 더럽혀진 옷을 벗어두고, 위풍당당한 궁정풍의 옷을 입지." 마키아벨리에게 서재는 고대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고대 궁전이다.
'위풍당당한 궁정풍의 옷'이라니! 이 대목에서 그에게 반해버렸다. 어쩜 이리 멋지지, 이 사람! 그 마인드 말이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대가들과 만찬을 나누며 그들과 같은 수준의 고담준론을 나누기 위한 '드레스 코드'라나. '대가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그들의 대답을 경청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독서'라니. '이 과정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준다'고. 당연하지! 나라도 그랬겠다. 그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서의 비결 중 하나. 자신이 그들과 어울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이 넘치는 '자뻑'을 보라! 500년 전의 그에게서 느껴지는 급 친밀감. 이쯤 되면 나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그의 이름이 혈육처럼 반갑게 들린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20대 때였다. 1990년 봄부터 밀레니엄 직전까지 부산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1년간의 일본 파견과 4년 동안의 동아시안게임 파견을 빼면 순수하게 공무원으로 근무한 이력은 5년 정도. 일 자체는 재미도 의욕도 없었지만 괜찮은 동료들과 책 덕분에 10년 가까이 견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당시에 내가 읽던 책은 대하소설류와 자기 계발서의 범주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지만, 어찌 됐건 책의 테두리 안에서 논 셈이니까. 그리고 뮌헨으로 오기 3년 전 자기 계발서를 깡그리 정리하고 순수문학으로 투항한 경우다.
그때는 주 5일제가 아니어서 토요일에도 근무를 했다. 심지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과 휴일엔 당직 제도까지 있었다. 순번은 돌아가면서 정했고, 남자 직원들이 숙직을, 여자 직원들이 일직을 섰으니 나름 공평하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근무하던 부산 진구청은 현재 청사로 이전하기 전이었다. 서면 로터리 근처 부전시장 옆. 청사가 좁고 복닥거려 정신이 없었지만 첫 발령지 역시 같은 건물 1층 건축과 민원 창구여서 시장 바닥 같은 복잡함도 낯설지 않았다. 서면 로터리에서 구청까지 걸어가던 길도 좋았다. 양쪽에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차와 사람과 노점상으로 번잡하던 곳. 그 길엔 유난히 서예 도구를 파는 화방이 많았고, 영광도서도 가까웠다.
건설과에서 일할 때였다. 건축과로 시작해서 다시 근무한 곳이 건설과이니 그쪽 세계의 남자들에게 익숙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독일 남편이 인문학도가 아니라 엔지니어인 것도. 상사나 동료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나면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가 혼자 책을 읽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퇴근 후에도 책만 읽었다. 그 시간이 나를 견디게 했다. 무엇을 견뎠는지는 모르겠다. 무료함? 시간? 막막함? 어느 가을날 토요일 오후 당직을 서는데 같은 과에 근무하던 총각 여럿 중 한 명이 퇴근을 망설이며 물었다. 혼자서 괜찮겠냐고.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들어 보이며 혼자 아닌데! 라고 하자, 설레설레 고개를 젓다가 웃으며 퇴근했다.
다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좋았겠다. 집 안에 자신만의 고대 궁전이 있어서.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우리에겐 거대한 도서관과 방대한 대형서점과 무시무시한 인터넷 서점까지 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마키아벨리처럼 '저자들에 대한 상당한 존경심'에 걸맞은 '자부심' 하나면 충분하겠다. 그 정도야 뭐가 어렵다고. 말이 나온 김에, 도서관에 대한 달콤한 두 정의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같은 책의 마키아벨리 편에서 정확히 20쪽 뒤에 나온다.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피난처'라고 한 사람은 헨리 베일리란다. 그럼 '이곳에서라면 근심을 잊을 수 있고 영혼도 쉼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 사람과 책 제목은? 궁금한 분은 직접 이 책을 펼쳐보시기 바란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그곳에 머무르는 4시간 동안 나는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고,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나 역시 그렇다. 음악도 좋고 영화도 좋지만, 책을 읽는 시간보다 좋은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 몰입의 시간. 어제 오후가 그랬다. 요즘 뮌헨에는 1주일에 한두 번 반짝 해가 나온다. 내가 카페에서 오전 글쓰기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던 어제 오후처럼.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걸어두고 책을 들고 햇살이 들어오는 방으로 건너갔다. 손님용 침대를 해가 들어오는 벽 쪽으로 돌려놓고 소파로 쓰니 딱 좋았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편을 한번 더 읽었다. 햇살이 책장과 손등과 얼굴에 닿는 느낌이 그만이었다.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따라 하자면, 햇살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나를 잊고, 당신을 잊고, 온갖 근심 걱정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