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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4. 2018

커피 머신은 안 된다니까!

퀸, 모카포터 그리고 알테셀라 Arte Sella


"안 돼! 모카포터는 퐁퐁으로 닦으면 끝장이라구!"


사진:www.artesella.it


보헤미안 랩소디를 볼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이 있다. 화가 난 로저가 모포터를 던지려는 순간 존과 브라이언이 한 목소리로 절박하게 외치는 저 대사다. 로저가 작사 작곡한 'I'm in Love with My Car'가 발단이었다. 멤버들이 유치하다며 놀릴 때 로저의 대답은 이랬다. '이건 메타포야!' 사실 이 대목의 압권은 프레디의 점잖은 한 마디가 아닐까. 요즘 내 글은 언제나 기승전'프레디'. '우리가 서로 죽일 수는 있어. 그러면 앨범 작업은 누가 계속 하지?' 밖으로 나간 프레디가 들판을 바라보다가 피우던 담배를 던지고 돌아서던 장면. 보헤미안 랩소디의 탄생을 예고하던 순간이었다.    


나 역시 이 노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오늘 아침 유튜브에서 오피셜 비디오로 보았는데 과연 박력이 넘쳤다. 로저다웠다. 이 노래를 부를 때의 그는 드러머가 아니라 마치 F1 레이서 같았으니까. 톰 레이놀즈라는 미국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곡은 지난 삼십여 년간 나온 곡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위대한 러브송"이라나.* 그런데 실제로 이 곡을 부를 때면 로저가 정말 지옥이라고 했단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게 그만큼 힘들었단 뜻이겠지. 그때마다 악동 프레디가 로저를 돌아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감상을 즐겼다는 후문도 있고.**


...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어.

자동차를 느껴봐. 경주용 롤바를 잡아봐.

그녀에게 말했어. 그녀를 잊을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그렇게 떠났지. 이것이 끝이라고 말하며.

차들은 말대꾸하지 않아. 네 바퀴 달린 친구일 뿐.
...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이태리 북부 알테셀라 Arte Sella. 트렌토 Trento 주 보르고 발수가나 Borgo Valsugana 계곡에 있는 오픈 에어 뮤지엄 Open Air Museum이다. 대자연 속에 오로지 나무나 돌만으로 만든 예술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곳. 언니가 이태리에 살 때라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형부 친구가 알테셀라 담당자로 언니와도 친했는데, 매년 여름마다 외국에서 설치 예술가를 초청해서 숲 속에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스태프로 참가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사진 : 네이버 블로그 <마름모들의 JOYRIDE>


언니의 일은 석 달간 산속에서 예술가들과 지내며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산 아래 주최 측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기념품 숍에는 가끔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표를 팔고, 티셔츠나 엽서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이태리 아주머니도 한 분 있었는데, 집이 아랫동네라 매일 차로 출퇴근을 했다. 언니가 3년 정도 그 일을 할 때, 나 역시 여름마다 언니를 방문하러 알테셀라를 찾았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기차역에 도착하면 누군가가 산 아래로 나를 픽업하러 내려왔다.

당시엔 지금처럼 편의시설이 완공되기 전 초창기라 허름하지만 소박하고 운치 있는 숙소에서 지냈다. 1층엔 부엌과 화장실과 욕실이 있고, 초청 예술가와 우리 숙소는 2층이었다. 나무로 만든 집은 걸을 때마다 삐걱거렸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두꺼운 스웨터를 입어야 했다.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숙소 옆 마구간 공연장에서 한여름밤의 콘서트를 열 때면 아랫동네에서 요리 좀 한다는 셰프들이 단체로 올라와서 음식 준비를 했다. 그럴 때면 언니와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키친팀에 합류했다. 자연 속에서는 사람들이 금방 친구가 되었다.


커피를 뽑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산속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크고 작은 두세 개의 모카포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끓였다. 이태리 사람들 아닌가. 식전에도 마시고 식후에도 마시고 점심 때도 저녁 때도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마셨다. 혼자서도 마시고 여럿이도 마시고. 에스프레소만 마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날 언니와 내가 키친 팀들이 줄줄이 내놓은 모카포트를 개수통에 풍덩 던져 넣자 멤버 하나가 득달같이 우리쪽으로 달려오더니 모카포터를 건져내며 비명 소리를 냈다. "안 돼! 이건 퐁퐁으로 닦으면 끝장이라구!"


그의 친절한 설명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모카포터의 안이고 밖이고, 커피 찌꺼기가 묻은 연결 부분을 불문하고 물로만 씻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도 대충! 왜냐고? 자고로 커피 머신이란 커피 진이 진득하게 배어 있어야 하고, 더러울수록 맛이 난다나. 커피잔을 들고 있던 다른 멤버 중 몇몇이 빙긋 웃으며 우리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하! 역시 원조는 디테일에 강하다. 언니의 알테셀라 일은 삼 년으로 끝났다. 현대적인 편의 시설을 짓기 직전이었다. 새 숙소와 함께 오프닝을 하던 날 형부 친구가 이렇게 전하더란다. 다 있어도 언니가 없는 알테셀라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고.


사진 : 알테셀라 홈페이지 www.artesella.it


*네이버 블로그 <마름모들의 JOYRIDE> by 마름모에서 인용함.

**네이버 카페 <Queen> by 스틸러뷰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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