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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7. 2018

밥 한번 먹자 차 한잔 하자 그리고 전화할게

그리운 모국어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런 말들과 함께  불쑥 떠오르는 생각. 나는 시인처럼 여기에 뼈를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독일은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출근과 등교로 바쁜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 오늘은 해가 뜰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짙은 안개를 뚫고서. 마음은 늘 아닐 것이다로 기울어지는 시각. 모처럼의 주말은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아 뒤죽박죽이었다. 한국의 송년회 소식. 그리운 이들이 모인다는 소식. 그들을 떠나온 지 열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꾸만 동쪽으로 멀고 먼 동쪽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이라니.


독일에서 맞는 첫겨울. 그리운 사람들 없이 견뎌야 하는 첫 연말. 처음은 무엇이든 두려운 법.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번 겨울을 두려워한 이유. 밥 한번 먹자, 차 한잔 하자, 그리고 전화할게.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던 그런 말들을 들을 수 없다는 쓸쓸함. 이것이 향수가 아니면 뭔가. 나도 안다. 이런 삶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럼에도 그리운 모국어들과 함께 불쑥 떠오르는 생각. 나는 시인처럼 여기에 뼈를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토요일 저녁을 함께 했던 희와 윤 덕분에 가까스로 추락하지는 않았다. 대책없는 징징거림을 무던하게 받아주던 두 사람. 그러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구나. 상대방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던 레스토랑을 나와 몹시도 추운 밤길을 걷던 시간. 차가운 공기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과정을 비껴갈 수가 있나. 받아들이고 지나가야지. 안갯속을 지나듯. 희가 준비해온 연말 선물. 솜씨 좋게 직접 만든 주머니 속에 든 작은 것들이 전하는 따듯함. 첫겨울이 원래 그렇다고. 첫 연말이 정점이라고. 자기는 지금도 그렇다고. 긴 겨울이 끝날 때까지 같이 힘내자는 윤의 말이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자 마음을 달래기가 수월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그 적도, 나도 둘 다 '나'라면? 그렇다면 싸울 일이 뭐가 있나. 달래 가며 가야지. 우울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감정을 흘리고 다니면 어쩌나. 그런 건 몇십 년을 봐주던 사람들 앞에서나 하는 것. 일요일 저녁에는 편두통으로 전날 못 나온 Y까지 시내로 나와 차를 마셨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때까지 함께 하리란 보장도 없고. 매 순간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다. 징징거리지만 말고!     


집 앞 길목에 한쪽에만 나뭇잎을 달고 한사코 그쪽으로만 기우는 나무들이 있다. 저러다 길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까지 가 닿는 게 아닐까 싶은. 거기에 대체 뭐가 있다고! 저 마음 나도 알지. 그럴 때가 있다. 마음이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때가. 그것이 무엇인지 나무에게 묻지는 않겠다. 언젠가는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 어느 쪽도 괜찮다. 한 번뿐인 인생.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지만,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보겠다는 윤의 등을 힘차게 떠민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나.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이다.


이틀 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뿐인데 이 정도라니. 마음의 쑥대밭. 김장철에 쑥쑥 뽑혀 구멍 숭숭하고 마른 이파리들 아무렇게나 구르는 무 배추밭 같은. 그럼에도 내가 믿는 건 당신들이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너무 잘 살고 있대도 서운들 하시겠지. 이 정도는 어지러워야 예의지. 일요일 은 포근했다. 저녁 8시가 되자 마리엔 플라츠의 시청 앞 성탄마켓은 하나씩 둘씩 문을 닫았다. 마켓의 불빛은 다시 켜지겠지. 겨울은 깊어가겠지. 나도 점점 익숙해지겠지. 고요하고 차분한 연말에도. 책과 글에 기대어 살아갈 새로운 한 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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