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Dec 28. 2018

도리아 바바라 튜네지아

잘 가요, 도리아


이런 분이 시어머니라면 참 좋겠다 싶었던 사람. 내가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만은 그곳에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리아를 만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남편과 결혼하던 그 해 11월에 시댁 식구들과 가족 여행을 떠났다. 북아프리카의 튜네지아. 튜네지아는 독일말이고, 튀니지라고 부르는 나라였다. 새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세 자녀와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까지 모두 초대하셨는데, 아이라고는 형네 딸아이 하나뿐이었다. 누나 바바라는 지금까지 계속 싱글이고, 우리는 막 결혼했으니까.

시부모님의 친구 한 분도 같이 갔다. 그 사람이 도리아였다. 그 무렵 도리아는 사별을 해서 혼자였다. 그녀가 우리 가족 여행에 동반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리아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인상도 말씨도 성정도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60대를 넘긴 나이였으나 온화한 표정과 단아한 몸매 때문에 그녀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튀니지는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 지중해 바람은 쉼 없이 불어왔고, 사람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했다. 처음 보는 이슬람 문화도 신비로웠다. 강렬한 태양의 흰 빛, 새파란 바다, 그리고 바다를 닮은 하늘색 대문. 그때 사 온 이국적인 문양의 접시들 중 큰 쟁반들은 몇 개의 나라를 오가는 동안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 크리스마스가 오기도 전에 떠나고 없는 도리아처럼.


사진: Club Med


우리는 자주 양손에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 위를 걸었다. 어느 날은 나와 바바라와 도리아 셋이 해변가를 산책했다. 마음이 무척 편했던 기억이 난다. 해는 여전히 눈부셨고, 바람 때문에 자꾸만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야 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가벼운 웃음이 셋 사이를 바삐 오갔다.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 새어머니의 시니컬한 어투에 적응이 되지 않던 시절. 저건 무슨 의미인가. 망연해 있을 적마다 어김없이 내 테이블 앞에 당도해 있던 도리아의 미소.


그 후로도 몇 번 더 가족 행사 때마다 도리아를 만났다. 그녀의 얼굴에도 조금씩 주름이 늘어갔지만 다정한 미소만은 그대로였다. 크리스마스이브 때 시아버지 묘지와 가까운 그녀의 묘지를 찾았다. 암으로 마지막 5년 정도를 투병했다고 한다. 이런 분이 시어머니라면 참 좋겠다 싶었던 사람. 내가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만은 그곳에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도리아가 없는 레겐스부르크는 쓸쓸했다.


그때 그 해변의 산책길에서 도리아가 말했다. 네가 바바라의 자매가 되어 주렴. 내가 이렇게 말한 후였을 것이다. 난 언니가 있어 좋은데 바바라는 여자 형제가 없어서 외로울 것 같다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다. 뮌헨에 온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요즘 나는 바바라가 점점 편해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로 얼마 안 가 친자매처럼 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 옛날 도리아가 예견했던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밥 한번 먹자 차 한잔 하자 그리고 전화할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