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Nov 05. 2018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갔다.



퀸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를 보러 갔다. 토요일 저녁 8시였다. 뮌헨의 영화관 안에는 중년을 넘긴 커플들이 유독 많았다. 젊은 시절 퀸의 팬들이었으리라. 스크린 앞의 서너 줄을 빼고는 만석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독일 사람들이라 이해는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다들 따라 쳤겠지. 영화가 끝나도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옆사람들과 덕담이라도 나눠야 일어서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같은 공간에서 퀸의 영화를 함께 본 것뿐인데 라이브 콘서트라도 온 것처럼 친밀함이 좌석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반대편으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영화관을 나오니 밤 10시 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만에 남편을 폭풍 칭찬했다. 물론 영화는 내가 골랐지만. 내 취향이 아닌 영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화가 난다. 남편의 배려는 배려고, 영화는 영화다. 소위 결혼 생활 20년 정도 '짬밥'이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눈치가 생기기 마련. 요즘 애들 표현대로 센스가 1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아내에게 영화 선택권을 주겠지. 집안의 평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 퀸의 영화가 개봉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설마 뮌헨에도 상영이 시작된 줄은 몰랐다. 단번에 퀸의 영화를 찍었다. 남편이 놀랄 정도로 잽싸게. 내 취향의 영화를 고르는 데는 촉이 빠른 편. 예전에 보았던 음악 소재 영화 중 <비긴 어게인>은 담백해서 좋았고, <라라랜드>와 <위플래쉬>는 살짝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시간은 단연 퀸과 함께 흘렀다. 그의 카리스마. 그의 열정. 그의 예술. 한 마디로 천재였고, 위대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런데 마음이 이토록 아픈 건? 그의 외로움과 섬세함이 뼛속까지 느껴져서. 프레디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 라미 말렉을 칭찬해주고 싶은 대목이다. 사람이 너무 뛰어나도 그렇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가 쉽지 않겠지. 그의 진짜 문제는 뒤늦게 발견한 성 정체성이었지만. 나쁜 사람이 꼬이는 것도 빼어난 이들의 특성 중 하나. 영화를 보고 나자 45세라는 나이에 그를 잃은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겠다. 



뭐든지 끝장을 내버리지 않는 태도도 프레디와 그의 평생의 연인이자 나중엔 친구였던 메리에게 배웠다.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친구로 남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히어로가 떨치고 일어설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메리에게 고마운 이유다. 연인이 아니면 어떤가. 함께 살지 않으면 어떤가. 좋은 친구는 쉽게 얻을 수 없다. 가장 소중한 충고는 그런 사람에게 들을 확률이 높고. 프레디와 메리처럼. 스포일러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빗속에서, 눈물로 메리를 축복해주던 프레디의 태도는 아름답다 못해 숭고했다. (영화다운 씬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인가. 당연히 자기 일에 몰두할 때다. 처음 등장할 때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프레디가 점점 빛이 나던 순간은 무대 위에 올랐을 때였다. 우리 역시 그렇다. 프레디처럼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 나만의 무대에서 나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것도 내가 나 자신 비추작고 따뜻한 둥근 빛을 자각할 때. 그 순간이 우리를 살게 하고, 그 순간을 위해 살게 될 때가 올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남들이 뭐라 느끼든, 한 발 또 한 발. 그런 순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되겠지. 자기가 만든 노래를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던 순간 그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영화의 엔딩을 빼먹지는 말아야지. 엔딩 크레디트는 <The Show Must Go On>. 반주 시작부터 말 그대로 울 뻔했다. 프레디의 마지막 노래이자, 그의 삶을 집약한 외침이자 절규였기에. 세기의 보컬인 그도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었겠지. 인생도, 사랑도. 나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고민 중일 때였다. 글도 그중의 하나였다. 더 나은 글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내가 그런 인물이 아닌데 위대한 글이 나오랴. 다만 이대로 글쓰기를 계속 붙들고 갈 수만 있기를. 영감에 대한 기대는 예전에 접었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미련도 내다 버린 지 오래. 그러자 남는 건 매일 글을 쓰겠다는 각오였다. 그 소박한 소망이 마음에 들었다. 때려치울까 보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였다. 퀸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대미를 장식한 Live Aid는 직접 감상하시라.


    

p.s. 다음 날 남편이 주말에 새 할머니 댁에 묵은 아이를 데리러 간 사이에 혼자 퀸의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왔다. 내 옆자리에는 70대 부부가 앉아 있었다. 보기 좋았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들이 입고 온 외투와 부인의 핸드백을 내 좌석에 놓아둘 수 있게 비어있는 옆자리로 한 칸 옮겨 앉았다. 짧은 인사말이 평화롭게 오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시작될 때 노부부가 일어서서 나간 후에도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감동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고, 저녁 7시에 캄캄해진 거리로 나온 후에도, 다음 날 짧은 방학이 끝나고 아이와 등교하는 이른 아침에도 쇼는 끝나지 않았다. 퀸의 노래가 영원하듯, 내 글쓰기도 멈추지 않으리라. 그것이 내가  프레디에게 배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조카의 가족들, 뮌헨에 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