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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05. 2018

조카의 가족들, 뮌헨에 오다

나의 '오촌' 언니


'오촌' 언니가 뮌헨에 왔다.


며칠 전 오촌 언니가 뮌헨에 왔다. 내 조카의 엄마다. 형부와 큰 조카도 같이 왔다. 언니와 나는 고향에서 앞뒷집에 살았다. 세 살 터울로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서로의 어린 시절과, 내밀한 집안 사정을 포함 그렇고 그런 처지까지 뻔히 아는 사이였다. 시골살이란 게 고만고만하다. 찾아보면 사연 없는 집 없고.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어서도 언니와는 흉허물이 없고 서로의 아이들까지 사이좋게 지낸다.


형부와 언니 사이는 또 얼마나 좋은지. 잉꼬부부란 언니네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당연히 두 딸도 자타가 공인하는 딸바보 아빠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자라서 성격이 한정 없이 밝다. 언니 나이로 보면 갱년기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도 시원찮을 텐데, 그 흔한 불면증도 우울증도 없단다. 형부 말이 누우면 3초라나. 고개를 베개에 대고 딱 3초 만에 잠이 든다고. 복 받았다. 언니도, 가족들도. 신경 줄이 얼마나 튼튼하면 그럴까. 딱히 일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만 보기도 어렵겠다.


조카의 음식 솜씨도 다분히 언니를 닮아서일 게다. 더 소상히 따지자면 언니의 엄마 덕분이다. 조카는 할머니와 친이모와 엄마 셋의 영향을 다 물려받았다고 봐야겠다. 세 사람 다 예사 솜씨가 아니기 때문. 거기다 얼마나 부지런하고 바지런하고 알뜰살뜰하기까지 한 지. 같은 시골 출신인데 우리 자매와 오촌 언니 자매는 닮은 점이 없다. 같은 고향 앞뒷집에서 자란 감성 맞나 싶을 정도로. 누구나 각자 자기 별에서 오는 게 맞는 모양이다.



첫날은 프랑크푸르트로 입국해서 뮌헨까지 오느라 밤늦게 도착했다. 다음날은 독일의 공휴일. 아침에 남편이 베이커리에서 독일 빵을 골고루 맛보셔야 한다며 평소에 우리가 먹지도 않는 호밀빵들을 잔뜩 사들고 왔다. 그 성의에 부응하느라 형부가 노력을 많이 보태신 덕분에 그 많은 빵을 다 먹는 기염을 토했다. 저녁에는 빅투알리엔 마켓 한쪽에 실내 분위기가 아늑해서 내가 좋아하는 호프 브로이 Der Pschorr에 갔다. 발음이 어려워 남들과 약속 장소로 정하기에는 애로가 있겠다.


호프 브로이에서는 맥주를 종류별로 시켰다. 그날은 다크 맥주가 내 입맛에 맞았다. 모두들 배가 고프지 않아서 독일 돈가스 슈니츨 큰 것과 돼지고기 학센 큰 것과 남편이 좋아하는 굴라쉬 수프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조카들은 학센에 딸려 나온 감자 크누들을 크게 반기지는 않았지만 언니와 형부는 나처럼 좋아했다. 어린 날 집에서 직접 반죽해서 감자랑 호박 썰어 넣고 끓이던 쫄깃한 수제비 맛이 나는 크누들을 왜 안 좋아할까. 이런 게 세대 차이라는 게 아닐까. 맛이란 추억과 찹쌀떡처럼 붙어있는 것이므로.


다음날은 조카가 어학 학교에 다녀오는 동안 집 근처 잔디 공원과 이자르 강변으로 언니네와 산책을 갔다. 날씨는 흐렸지만 단풍은 빛을 바라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조카까지 불러서 가족사진을 많이 많이 찍어주었다. 이런 한가한 산책,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이 두고두고 언니와 형부에게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주말에 언니네는 가족끼리 당일치기로 퓌센을 다녀오고, 다음 날엔 프라하를 2박 3일 다녀올 예정이다. 열흘 동안 뮌헨에 머물면서 네 식구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p.s. 눈 밝은 친구가 알려준 대로, 언니에게 물어보니 우리 사이는 육촌이란다. 오 마이 갓! 육촌이 뭐람. 울고 싶었다. 그 단어가 남 같이 느껴져서. 누가 뭐래도 오촌에서 1도 양보하지 않겠다. 계산법이 좀 틀린다고 죽을 일도 아니잖아. 멋대로 우겨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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