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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03. 2018

케세라세라, 프리다 칼로여

본에서 만난 프리다 칼로


독일에 온 지 열 달 동안 내 애를 태운 남자의 이름은 아우구스트 막케.


본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프리다 칼로를 만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만나려 한 건 그녀가 아니었기에. 인연이 없는 건 아닌데 좀처럼 만나 지지 않는 사람처럼 독일에 온 지 열 달 동안 내 애를 태운 남자의 이름은 아우구스트 막케. 그를 한 번 보려고 벼르고 벼르다 타이밍이 썩 좋지도 않은데 무작정 상경하는 시골 여자처럼 장거리 버스를 탔다. 꼭 한 번 보고야 말리라. 왜 이렇게 안 만나 지는 거야. 안 만나주는 남자의 집을 쳐들어가는 기분으로 그의 전시관을 찾았다. 설마 본까지 가서 못 만나 지야 않겠지. 내심 득의양양하게.


막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올해 초 독일에 오자마자 독일의 남쪽 호수 보덴제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강렬하게 막케의 그림에 끌리게 했을까. 한 마디로 부드러운 그 색채가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부드러운 연둣빛 바람이 내 머릿결을, 어깨와 등을 쓸어주는 기분이었다. 여름까지 계속된 전시회를 결국 놓쳤다. 게을러서. 여름방학 때 한 번 갈 법했는데 왜 못 갔을까. 예전에 본을 몇 번이나 가면서 왜 그때는 막케를 몰랐을까. 매사에 부지런하지 못해 여러모로 손해 막심인 사람이 나다. 작정하고 덤빈다고 꼭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미리 깨달았어야 했는데. 안개부터 그랬다. 그날 뮌헨을 떠날 때부터, 다음날 새벽 버스를 타고 본으로 갈 때도 어디든 안개가 따라다녔다.


가는 곳마다 안개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말이나 되나. 그 안개가 내게 말까지 걸어오다니. "움직이지 말고 멈춰 서. 나를 지나가게 해. 내가 너를 지나가게. 네가 지나가지 말고." 안갯속을 지나는 법을 아나. 정답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도 쉬지 말고. 눈도 깜빡이지 말고. 움직일수록 오리무중. 뭔가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실타래가 엉키고 설키듯. 출구가 없는 미로 속을 헤매듯. 내가 그랬다. 본에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장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서 U반을 타고 내리자 내게 남은 건 단 두 시간. 백 번 양보해서 딱 30분만 봐도 좋다는 심정으로 갔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두 시간 후에야 오픈이었다. 작은 도시는 전시관 오픈도 다는 걸 내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전에 발견한 것이 카페 프리다였다. U반역에서 막케 전시관으로 가는 길을 걷다가 골목을 돌기 직전이었다. 저 카페에 들어가 볼 시간 있으려나. 다행히 있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서 얼어버렸다. 흉내만 낸 짝퉁이 아니었다. 진짜 프리다 카페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막케를 만나러 왔다가 프리다를 만나다니!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바람 맞고 저간의 사정 다 이해하는 정다운 단짝을 만난 기분이었다. 추스르기 어려울 만큼 흩어진 마음부터 수습해야 했다. 되는 게 없구나, 막케여. 그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프리다여. 카페 곳곳에 점점이 박힌 붉은 장미와 프리다 앞의 주홍빛 장미와 노란 촛불이 나를 위로했다. 푸른빛 창문과 안쪽 홀의 초록빛 바닥도. 그 와중에도 크루아상은 얼마나 맛있던지! 막케는 접어두고 두 시간 동안 온 마음을 아낌없이 프리다에게 주고 돌아왔다.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장거리 버스 터미널 옆 아트 뮤지엄에서 막케 전시가 열리고 있었던 것. 그 길을 두 시간 전에 얼마나 급히 지나쳐 왔던가. 빛의 속도로 말이다.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야 비로소 보였다. U반을 타고 이쪽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 길만 건너면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미술관 벽면을 가득 채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눈에 익었다. 막케 전시관으로 갈 때는 당연히 안 보이는 방향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이렇게도 되는 일이 없나, 무정한 막케여. 진작 그 포스터를 보았더라면 막케 전시관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프리다는 못 만났겠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한다? 뭘 어떻게 하나. 얌전히 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뭘 더 하려고 설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눈을 감고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케 세라 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나를 죽게도 살게도 하는 막케여, 프리다여..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세라

잘 될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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