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시려고?

남편의 새아버지 오토

by 뮌헨의 마리


네가 문학을 알아?



"그래서, 요즘 넌 뭘 한다고?"

'글을 쓰고 있다' 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언제나처럼. 다음 질문에서 톤이 올라가겠지. 금시초문인 것처럼.

"뭐, 글? 무슨 글을 쓰는데?"


'여러 가지'를 쓴다고 말한다. 내 글쓰기의 갈래를 시아버지에게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 것은 그날 내 컨디션이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때문에. 그게 실수였다. 한 마디로 안 하던 짓을 한 것이다. 질문의 요지는 그깟 글은 써서 어디다 써먹냐. 도대체 돈이 되는 짓이냐. 그런 뜻이었는데. 말이야 맞는 말씀이다. '책'을 쓰겠다고 답한다. 책? 대체 뭘로? 무슨 이야기를? 네가? 대놓고 이렇게야 못하시니 곧 전방위 질문으로 날아올 것이다.

똑같은 것을 만날 때마다 묻는 그의 이름은 오토. 시어머니가 마흔에 재혼해서 40년을 함께 살고 있는 분. 올해 1월에 만으로 구십이 되신 분이다. 오토와 나의 관계는 한 마디로 가깝고도 먼 관계. 혹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 왕자 햄릿과 덴마크의 왕이자 그의 숙부인 클로디우스처럼.

질문은 계속된다. 조금 더 시니컬 해진 어조로. 문학에 대해서라면 나름 할 말이 많은 사람. 네가 문학을 알아? 노년 히스테리가 갱년기 증상과 맞먹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 노인이라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가끔 젊은 사람 못지않게 날카로운 검을 날리기도 하니까.


"글은 뭘로 쓰냐? 독일어로?"


'아니'라고 대꾸한다. 나는 내 모국어를 사랑한다고. 턱없이 부족한 저의 독일어 실력을 잘 아시지 않냐고, 공손히 덧붙인다. 그럼, 알고 말고. 신사 중의 신사인 그가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뱉을 리는 없다. 흡족하게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일 뿐. 알긴 아는구나. 그런 다음 희미하게 그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면 심호흡이 필요한 때.


"그걸 '우리'는 어떻게 읽냐?"


그러게 말이에요. 시아버지를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예의로 던지는 질문에도 대답은 정중해야지. 뭐 읽을 게 있겠냐만. 그가 눈빛과 표정으로 전하는 말도 재빨리 알아들어야지. 행여 내가 행간의 의도를 놓칠까 주의를 기울이실 테니.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셰익스피어의 '끄덕임' 에는 수십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잘 알아들었으니 염려 마시길. 읽으신다 한들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진 않다. 그날따라 그의 질문이 도를 넘은 건 그의 탓이 아니다. 전차군단 독일의 볼을 따박따박 막아내던 우리 축구팀처럼 나 역시 평소와 달리 그의 질문을 넙죽넙죽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날은 평범한 일요일이 아니었다.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대파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일요일. 자존심이 치유되기엔 너무 이른 일요일. 1주일 후에 또 한 번 월드컵 결승을 보아야 하는 일요일. 독일이 빠진 월드컵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지 말란 법도 없다. 독일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은 숙적 프랑스가 결승전에 오르는 일. 한국전 패배보다 8강에 오른 프랑스가 결승에 오를 확률은 더 컸다. 독일 전체가 불안 불안한 이유. 그때까지 남편 빼고 시댁 식구 누구도 내게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작정을 하고 칼을 날린다. 햄릿과 레어티즈와 왕을 한꺼번에 쓰러뜨린 독이 묻은 검처럼.


"아,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시려고? 그러다 너 부자 되는 거 아니냐?"


나는 결심한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레어티즈의 검을 바꿔 든 햄릿처럼. 햄릿이 몰랐다면 나는 알고서. 20년 동안 한 번도 못해본 대꾸를 한다.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최대한 예의 바르게. 날카롭지 않으면 그게 검인가.


"그러지 말란 법이라도 있나요?"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놀라셨나. 이번 라운드는 나의 판정승. 생전 처음으로. 아무려나 승리란 기분 좋은 것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이 독일엔 없나? 쥐도 구석으로 몰면 고양이에게 덤벼든다는 걸 모르시고? 그 연세를 드시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만나면 반갑게 서로의 볼에 인사를 나눈다. 웃으면서. 이런 게 독일식 가족. 나는 이 방식이 꽤 마음에 든다. 다른 가족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참고로 이 글은 2018년 6월에 쓴 글이다. 뮌헨에 온 지 반 년. 시아버지 오토를 안 지 20년 가까이 이런 관계였다. 피곤했다.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분이었다. 2019년 5월 1일. 시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우리는 천지개벽을 한 것마냥 사이좋은 고부 관계가 되었다. 나는 매주 아이를 데리고 시부모님댁을 방문한다. 늘 온화하고 다정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시는 나의 시아버지 오토. 2020년 1월. 만 92세 생신 파티를 마치고 쓰러지셨다. 병원과 자택과 요양원을 거쳐 다시 댁으로 돌아오신 게 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우리 아이와 시누이 바바라와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5총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 암울한 시간을 잘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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