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90대 남매는 무슨 일로 싸울까?

시아버지의 91세 생신 때 소파 때문에

by 뮌헨의 마리


우리 남편과 남동생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할머니가 눈 쌓인 골목길을 걸어 가실 때 나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택시까지 모시고 가서 남자들이 돌아섰지만 나는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손으로 키스를 보내 드렸더니 똑같이 화답하시던 할머니. 자식이 있어도 없어도 외로워 보이는 독일의 노인들.


사람이 90이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공자 아니면 노자? 소크라테스나 스피노자쯤?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했으니. 글쎄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정답은 노! 딱 지금 모습 그대로가 답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타고난 천성이나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기에.


일요일은 남편의 친어머니가 재혼하신 분인 시아버지의 만 91세 생신이었다. 이 분이 꽤 특이하신 분인데 별자리가 염소자리와 물병자리의 경계 지점인 분이다. 조만간 분석해 봐야겠다. 자부심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베를린 출신이다.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케네디 아닌가.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 Ich bin ein Berliner!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라는 짤막한 '커밍아웃'으로 연설에 능한 케네디까지 살짝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열렬했다는 베를리너들의 환호.


치과 의사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스웨덴에서 몇 년간 일하셨다. 왜냐고 여쭈었더니 전후에 모든 게 파괴되어 개업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스웨덴에서 낮에는 인턴으로 일하고 밤에는 오페라 극장에서 알바를 하셨단다. 그의 오페라 사랑이 족보가 없는 게 아니다. 대대로 치과 의사였던 집안에서 자란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크겠지만. 유일한 단점은 매사에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것.


독일에는 만 50세 이후로는 5년 단위로 생일을 크게 자축하는 분위기다. 시댁 식구들을 보니 그렇다. 작년에는 시아버지의 생신에 맞추어 한 달 정도 일정을 앞당겨 독일에 왔다. 그러니 우리에겐 시아버지 생신날이 독일 입성 기념일인 셈이다. 그때는 호텔에서 1박을 하며 파티를 했는데 손님은 총 40명 정도. 시부모님 쪽 절반, 자녀들 절반. 시부모님 손님들은 거의 8,90대셨다. 자주 뵙지는 못하나 대부분 낯익은 분들이었다.



올해는 집에서 시아버지의 친한 친구인 의사 부부만 초대하셨다. 시아버지의 큰 딸 가족과 우리 가족과 시누이 바바라까지 총 12명. 다이닝룸으로 부족해 다이닝룸 앞에 작은 식탁을 놓았다. 4가지 케이크는 주문하셨단다. 9가지 케이크를 구워내시던 시어머니의 솜씨를 보지 않아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지신 시아버지를 돌보시며 생신 준비라니. 올해까지만 집에서 하시겠다는 어머니 말씀에 '잘 생각하셨어요! 너무 힘드세요.' 반색하는 한국 며느리.


올해의 손님은 단연 시아버지의 누님 로즈마리. 시아버지보다 몇 살 위시니 만 93세쯤 되셨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스틱을 짚으셔야 하지만 남매분이 정신이 맑으셔서 만나기만 하면 다투신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얼마 전에 시아버지께서 멋진 1인용 소파를 구입하셨다. 북유럽 어디 제품이라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이름 그대로 안락했고 앉은 채 방향을 돌릴 수도 있었다. 주문한 지 석 달 만에 왔다는 1인용 소파의 가격이 무려 3,000유로.


하나뿐인 누님의 한 마디가 발단이 되었다. 좋아 보이는구나. 그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누님께서 점잖게 한 말씀하셨다. 얘, 이거 나랑 똑같은 거야. 그렇게 비싸지 않아. 난 2,000에 샀는데. 남동생이 발끈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나는 오래전에 산 거잖아. 이건 따끈따끈한 신제품이고. 3,000이라고!. 누님의 소신. 그게 그렇게 비쌀 리가 없대도 그러네. 어느 한쪽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자녀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절레절레할 때 상황을 단칼에 평정하신 건 시어머니. 둘 다 그만해!!!



여장부 타입인 로즈마리의 남편 프란츠를 기억한다. 연구소 같은 데서 일하던 분이었는데 자상한 할아버지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쓸쓸했다. 로즈마리의 두 딸 중 하나는 멀리 살고, 뮌헨에 사는 큰 딸이 금요일에 들러 장을 봐준단다. 오 마이 갓! 그럼 1주일에 6일은 혼자? 헤어질 때 로즈마리가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애 데리고 한 번 놀러 오렴. 그녀의 손을 잡고 두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드렸다.


우리 남편과 남동생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할머니가 눈 쌓인 골목길을 걸어 가실 때 나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택시까지 모시고 가서 남자들은 돌아섰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실 때도 시간이 걸렸고, 안전 벨트를 매시는 데는 더 시간이 걸려 택시 기사와 내가 번갈아 도와드려야 했다. 지팡이와 핸드백을 챙겨드리고 나서야 택시가 출발했고, 출발 직전에 내가 양손으로 키스를 보내 드렸더니 똑같이 화답하시던 할머니. 자식이 있어도 없어도 부자든 가난하든 외로워 보이는 독일의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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