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시아버지의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시며 잘 지내시라고, 곧 만나자고, 양쪽 볼과 콧등과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추실 때. 아아, 인생이란 얼마나 많은 변수의 연속인가!
시아버지가 입원하신 슈탄베르크 병원 Krankenhaus Stanberg 입구
5월 1일 노동절. 독일은 휴일이었다.5월 답지 않게 날씨도 스산한데 시부모님들은 뭘 하시나. 아침을 먹고 셋이 식탁에 앉아 남편의 친어머니와 새어머니 양쪽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무척 착한 며느리가 아닌가 오해하실 분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착한 며느리가 좋은가 나쁜가. 어디까지가 착한가. 왜 착해야 하나. 그런 논의들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착하기로 작정하는 것도, 그 반대도 각자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일 테니까.
그날은 시어머니와 재혼 후 40년 가까이 살아오신 시아버지가 쓰러지신 날이었다. 우리가 전화를 드린 것은 오전 10시 30분경.새벽에 이유 없이 몇 번이나 토하시고 어지럽다고하셨단다. 다리가 떨려서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셨다고. 두고 보겠다 하시더니 2시간 뒤에는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모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시아버지의 딸과 손녀와 점심 식사를 하시기로 한 날. 산부인과 의사인 시아버지의 딸이 온다는 것을 알고는 안심이 되었다.
시아버지를 방문한 것은 병원에 계신 지 사흘째.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내가 놀란 건 시아버지의 상태가 생각보다 호전되지 않아서였다. 사흘 내내 어지럼증이 여전하시고, 정신은 명료하신데 평소와 달리 말씀을 잘 못하셨다. 음식을 못 드셔서 기력이 없으셨던 것이다. 사흘 동안 이어진 검사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입원은 자동 연장되었다. 그제야 진작 찾아뵙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병원에서 하루 이틀 계시면 아무 일 없이 쾌차하실 줄 알았다.지난 20년간 입원하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시아버지가 입원하신 슈탄베르크 병원
일요일 아침. 슈탄베르크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아버지 병원에 들렀다가 뮌헨으로 향했다. 그날은 시어머니의 고관절 수술을 위해 뮌헨의 병원에 입원하기로 예약된 날이었다.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진행되었어야 했다. 어머니께서 뮌헨에서 수술을 받으신다. 1주일 동안 뮌헨의 병원에 계신다. 나머지 3주 동안 오스트리아 재활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하신다. 시아버지는 재활원에먼저 가셔서 시어머니를 기다리신다. 두 분이 함께 계시다가 3주 후 나란히 귀가하신다. 아아, 인생이란 얼마나 많은 변수의 연속인가! 시어머니 만 82세. 시아버지 만 91세. 두 분만큼 건강하시고 금실 좋은 부부를 여태껏 보지 못했건만.
다행히 일요일 아침 병원에 도착하니 시아버지의 상태가 좋아 보이셨다. 우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국의 작은 딸과 통화를 하고 계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붙고 안색에도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우리와도 평소처럼 1시간 가까이 담소를 나누셨다. 시어머니의 막내아들인 내 남편에게 자기 아내를 뮌헨 병원까지 동행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실 정도였으니. 저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다 싶었다. 평소의 시아버지다운 멘트에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것도 잠시 곧 작별의 시간이었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의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시며 잘 지내시라고, 곧 만나자고, 양쪽 볼과 콧등과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추실 때.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시아버지를 부르실 때. 시아버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팰 때. 시어머니가 문가에서 시아버지를 돌아보시며 울음을 터뜨리실 때. 시아버지가 안경을 벗어 손에 드신 채 말없이 시어머니를 바라보실 때. 시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하며 내가 떨구던 눈물은 시아버지 대신 내가 흘려드린 것일 뿐.시어머니를 병실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오는 5월 5일 일요일 오후 뮌헨에는 진눈깨비가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