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미안한 일인가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말들

by 뮌헨의 마리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용기를 내게 했다. 정말로 죄송했다. 한 번도 그분을 존경한 적이 없었다.



월요일에는 병원에 계신 시아버지를 방문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아이가 등교할서둘러 나왔건만 슈탄베르크 병원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이었다. 남편이 알려준 대로 뮌헨 외곽까지 가는 One day 티켓을 사느라 줄을 길게 서야 했고, 카드나 50유로 지폐 사용이 안 되는 바람에 물을 사고 잔돈을 바꾸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S반을 반대 방향으로 탔다가 내리는 바람에 30분이 더 걸렸다. 화요일 아침에는 S반 말고 레기오날 기차를 타고 9시 전에 도착했다.


첫날 아버지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그날은 뮌헨의 병원에 입원하신 시어머니의 수술 날이었다. 나는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말을 주의 깊게 듣던 아버지가 자주 웃으셨다. 무슨 말 끝에 그동안 좋은 며느리가 못되어서 죄송했노라 사과드리자 무슨 소리냐며 손을 내저으셨다. 평소라면 입 밖에도 못 꺼냈을 말이었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용기를 내게 했다. 정말로 죄송했다. 그분을 한 번도 존경한 적이 없었다.


내게 시아버지는 베를린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의사 집안 출신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본인도 의사였고 큰딸도 의사였다. 문학과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피곤했다. 나치게 달변인 것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 분이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병원에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니 얼마나 힘드시겠나. 언제였던가. 자기 아내에게 줄 꽃다발도 안 사들고 빈손으로 왔다고 우리에게 호통을 치시던 분이 말이다.



월요일 저녁에는 시누이 바바라 차로 아이와 함께 다시 병원에 갔다. 우리가 도착하자 무슨 검사인가를 위해 담당자가 시아버지를 침대에 누운 채로 어디론가 밀고 가버리는 바람에 1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 이후 시아버지가 무척 피곤해 보이셔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화요일 아침에는 상태가 더욱 좋지 못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으신 것 같았다. 왜 아니겠는가. 뭐라도 드셔야 기운이 나실 텐데.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시던 식탁도, 어머니도 곁에 없으니. 그제야 알았다. 그 연세의 한 달이란 우리의 1년과도 맞먹는 세월이라는 것을.


화요일 오후에는 남편과 아이와 시어머니 병원을 방문했다. 고관절 수술 다음날이었다. 바바라는 회사일이 끝난 후 나중에 왔다. 시어머니는 용감하셨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특수 보조기에 기대어 혼자서 화장실까지 다녀오셨다. 브라보! 저녁까지 있는 동안 시아버지의 두 딸들이 차례로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마지막으로 시아버지와 통화하시는 것까지 듣고 왔다. 놀랍게도 아버지가 아침에 내가 다녀간 것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하셔서 수화기 너머 시어머니 병실을 웃음바다로 만드셨다. 정말로 기억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어제 아침 나는 시아버지에게 많은 말을 건네지 못했다. 시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 보여줄 법한 침묵 속에 앉아 계셨다. 시어머니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간밤에는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우리는 말없이 창밖의 정원을 내다보았다. 오랜만에 해가 나왔고, 정원의 잔디 위로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언제까지 병원에 계실 예정인지,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가시는지, 친딸은 언제 오는지 여쭈자 모르겠다며 미안하다 하셨다. 그게 왜 미안하실 일인가. 그리고 잠이 드셨다. 병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늙는다는 것 프다는 것이 왜 미안할 일인가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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