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May 08. 2019

부헨벡 7번지에서 다시 만나리

시어머니의 말씀이 시가 되었다


'나는 이쪽 골목에서 당신은 저쪽 골목에서 걸어와 부헨벡 Buchenweg 7번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요즘 나의 하루는 직장맘 수준으로 바쁘다. 단순한 일과였는데 알바  아버지 방문과 알바 후 시어머니 방문을 끼워 넣었더니 어제는  쓸 시간도, 린다와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 린다에게는 양해를 구했다. 조만간 우리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문제는 글쓰기였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그건 좀 과장이고 실제로는 자다가 깨는 정도. 어젯밤이 그랬다.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가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 쓰다가 만 글 때문에.


어제는 저녁 8시쯤 집에 돌아왔다. 시어머니와 함께 있던 시간은 피곤하지 않았다. 머니 보조기를 밀며 놀던 아이가 보조기에 양팔을 걸치고 엎어지는 시늉을  때까지는. 아이가 말했다. 조기가 필요한 사람은 자기라고. 그리고 돌직구를 날렸다. 집에는 도대체 언제 가는 거냐고. 머니의 웃음 폭탄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이의 시험날. 바쁠 때는 왜 바쁜 일만 생기는지. 테스트의 이름은 VERA-3 (독일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3학년)인데, PISA(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이거야말로 평소 실력이 중요하겠다. 학생보다는 담임샘과 학교가 신경이 쓰이는 테스트겠고. 독일어 읽기와 듣기 그리고 수학 테스트가 이번 주부터 사흘 동안 치러질 예정이다. 아이는 읽기보다 듣기가 어렵단다. 문을 한 번만 들려주고 답안지는 나중에 나누어주니까 그 사이 들은 걸 까먹는다나. 딸아, 그러니까 시험이지! 어젯밤 아이는 내게 말했다. 자기 전에 안아 주고 말해달라고 했다. 걱정 말라고, 시험 못 쳐도 괜찮다고, 사랑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엄마 목소리가 진심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피곤한 밤에 같은 대사를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그렇다. 언제나 사랑이 문제다. 아이의 말을 들으니 신기하게도 시험 걱정이 덜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뵙느라 읽기 연습을   게 뭐가 대수인가. 오늘 아침에 나는  얼마부지런을 떨었나. 덕분에 뮌헨의 우리 집에서 뮌헨의 외곽 도시 슈탄베르크의 아버지 병원까지 1시간 만에 주파했다. 월요일에 비하면 2배의 빠르기였다. 전날 시어머니의 당부가 날개가 되어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아무것도 드시는 것을 걱정하셨다. 내가 옆에 있으면 나를 봐서라도 빵 한쪽이라도 드시지 않겠느냐는 것. 말씀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마멜라데를 바른 빵 반쪽을 맛있게 드시고 며느리의 체면을 세워주셨다.


오늘은 어제보다 좋아 보이셨다. 간밤에 잠도 좀 주무셨단다. 병실에 들어서자 어제처럼 시어머니와 통화 중이셨다. 어제저녁 어머니가 전화로 아버지께 하신 말씀은 시였다. '우리는 4주간 따로 지내지만 반드시 부헨벡 Buchenweg에서 만날 거예요. 나는 이쪽 골목에서 당신은 저쪽 골목에서 걸어와 부헨벡 Buchenweg 7번지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요'. 이런 게 시가 아니면 뭔가. 오늘 아침 아버지는 내가 작별 인사를 드리려 하자 왼손을 들어 당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친절을 잊지 않으마.


내일 아침엔 그 친절을 계란 하나로 갚으시라고 해야겠다. 빵 반쪽에 계란 하나어머니도 안심하실 것이다. 오늘 아침 나도 뜻이 있어 계란을 6개나 삶았다. 남편 두 개, 나 두 개, 그리고 아침을 거르기 일쑤인 아이에게도 두 개. 아이에겐 삶은 계란 두 개만 먹으면 시험 문제가 술술 풀릴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계란을 두 개나 먹고 배 불러 죽겠다던 아이가 무거운 학교 가방을 어깨에 메며 불쑥 물었다. 


-엄마! 계란 안에 시험 문제가 들어 있어?

-그럼! 계란 하나에 문제가 50개씩 들어 있지!

-내가 안 배운 문제가 나와도 ''가 알아?

-당연하지!


아이는 안심하고 학교로 갔다. 이럴 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삶은 계란은 사랑이라고. 삶의 지혜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늙는다는 것은 미안한 일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