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까.. 그럼에도 한 가지 만은 말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었던 지금보다 더 진심으로 시아버지를 존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티어제 Thiersee(티어 호수). 뮌헨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목요일에는 아침과 저녁 두 번시아버지를방문했다. 저녁에는 바바라와 아이도 같이 갔다. 시아버지가 병실 옷장에 걸린 외투에서 지갑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아이에게 용돈을 주셨다. 처음이었다. 별안간 할아버지께 용돈을 받은아이는 기분이좋아 보였다.독일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 조부모와 손자들 사이에 현금이 오가는 일이 드물다. 필요할 때는 선물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공부를 잘했을 때 몇 번 친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신 적은 있다. 이때 용돈은 20유로 선.
평일 저녁에 두 번이나 시아버지 병문안을 가며 나와 바바라와 아이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 번은 내가, 한 번은 바바라가 저녁을 샀다. 병원 앞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피자도 맛있고,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스파게티도 맛있었다. 두 번째 날은 메뉴를 바꿔 뜨거운 양파 수프를 먹었고, 방울토마토와 루콜라에 파메산 치즈를 큼직하게 잘라 넣은 샐러드를 먹었다. 대체로 미지근한 수프가 대세인 독일에서 뜨거운 양파 수프는 언제 먹어도 반갑다.하이라이트는 화이트 와인. 얼마나 맛있던지!
금요일 아침 시아버지는 자두 하나에 요구르트와 빵 반쪽도 맛있게 드셨다. 목요일부터는 한결 좋아지셔서 간호사를 부르지도않고내가조금 도와드리자 무사히침대에 누우셨다. 예전보다 눈빛과 표정도 부드러워지셨다. 말 끝마다 고맙다는 말씀도잊지 않으신다. 목요일과 금요일엔 괴테의 시와 베르디의오페라<돈 카를로> 중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를 번갈아낭독하시고 노래하셨다. 친절하게제목도미리 알려주신다. 저런 모습이 그분의 원래 모습이다.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부자라면, 너희들 모두를 크루즈에 초대할 텐데. 매일 저녁 너희 모두와 좋은 추억을 만들 텐데(사실 지금도 충분히 부자신데).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다고 나는 말했다.시아버지도나도진심이었다. 그런 건 감출 수 없다. 부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까.그럴수도 있겠다. 이 세상에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돈이 없어 불행한 일은 얼마나 차고 넘치나.그럼에도 한 가지 만은 말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었던 지금보다 더 진심으로 시아버지를 존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금요일은독일에 온 이후로 가장 바쁜 날이었다. 시아버지를 방문한 뒤 뮌헨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을 남편을 픽업하러 갔다. 남편은 나를 기다리며 한숨 자고 난 후라 멀쩡했다. 점심을 먹고 같이 시어머니를 방문했다. 시어머니의 경과는 좋았다. 다음 날 오전 9시 반에 병원을 출발 재활 클리닉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벼룩시장을 취소하길 잘했다. 마지막 미션은 꽃다발. 일요일이 독일의 어머니 날이기 때문이다. 미션 완료.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토요일엔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시어머니가 옆에, 바바라와 아이와 내가 뒷좌석에 탔다. 트렁크에는 시어머니의 여행가방 두 개, 보조가방이 세 개, 그리고 세면도구가 든 철가방이 하나. 1주일 병원+18일간 재활원에 들어가시는 분이 맞나? 시어머니를 도와 가방의 짐을 재활원 수납장에 정리하며 바바라와 나는 몇 번이나 마주 보며 웃었다. 심지어 드레스와 구두까지! 이게 우리 시부모님 세대의 정서인 듯했다.재활 클리닉이자 휴양소인 Reha Klinik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오스트리아의 티어제 Thiersee 호숫가였다. 시아버지께서 우실 만했다. 혼자 계실 시아버지가 마음에 걸렸지만 따라오길 잘했다!